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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17)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권력자의 눈초리는 회초리보다 무섭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과 힘이 있게 마련...리더의 시선은 밖으로, 미래로 향해야

▎시선을 모으는 가장 흔한 방법은 남다른 능력이다. 그중에서도 권력의 힘이 가장 강하다. 사자나 호랑이는 무시무시한 능력이 있기에 그들이 사는 생태계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 사진 : ⓒgetty images bank
대기업 협력업체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한 신임 임원이 대기업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했다. 으레 열리는 정기회의라는 말을 듣고 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위 경영자가 직접 참석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규모가 갑자기 커진 것이다. 회의장은 대기업의 임원 40여 명과 협력업체 임원들이 뒤섞여 있어서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앉아 있다 가면 되는 게 아니라 회사를 대표해 온 데다 짤막하게 발표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가장 높은 분이 누구인지 알아야 그를 보면서 발표를 하고, 그가 하는 말을 더 귀 담아 들을 수 있는데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비슷한 옷차림에 그 얼굴이 그 얼굴, 좌석 배치까지 원형이었다. 가장 높은 분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일단 회의를 시작하기 전 자리가 비어 있는 곳, 특히 가장 마지막에 자기 자리에 앉는 사람이 ‘그 분’일 가능성이 크다. 서열이 엄격한 곳일수록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늦게 나타난다. 만약 ‘그 분’이 그런 격식을 따지지 않은 사람이라 미리 와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면 부산스럽고 북적거리는 다른 곳과 달리 조용하고 왕래가 별로 없는 곳을 찾으면 된다. 어디에서나 최고 권력자 근처는 일종의 ‘자기장’이 형성되어 있는 듯 접근이 쉽지 않다. 그 자기장 지역은 권력자가 친히 부르지 않는 이상 함부로 가까이 갈 수 없는 곳인데다, 간다 해도 알아서 신중하게 처신하니 남다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마지막으로, 회의 시작 전이라면 자세히 관찰해야 알게 되지만, 시작되고 나면 누구나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알게 모르게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곳이 ‘그 분’이 있는 자리다. 별 일이 없어도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몰리고, 무슨 소리라도 나면 더더욱 시선이 모이는 곳이 그 날의 중심이고 그가 핵심 인물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시선이란 핵심으로 향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선의 역학은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시선에는 단순히 보는 것 이상의 의미가 들어있어 어느 시선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는지 즉시, 그리고 제대로 모르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날이 수시로 찾아오면서 앞날이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눈치가 없으면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게 조직의 속성이다. 이뿐인가. 시선을 사용하는 법을 모르면 조직의 사다리를 어느 이상 올라갈 수 없다.

시각중추에 의존하는 인간은 후각 상당 부분 포기


▎개코원숭이 무리에서 구성원의 시선은 언제나 우두머리에게로 향한다. / 사진 : ⓒgetty images bank
생명체들은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인지한다. 개미는 앞을 거의 볼 수 없지만 후각이 뛰어나고,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는 시각과 청각으로 먹고 산다. 우리 인간은 뇌의 3분의 1 이상을 시각중추에 투자하는 대신 후각을 상당 부분 포기했다. 이렇게 시각을 흔히 사용하다 보니 우리는 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식 아래의 저 깊숙한 곳, 그러니까 무의식에 자리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작동하는 까닭이다. 인간 행동의 95%가 무의식이라고 하고, 의사소통의 65~80% 정도가 언어 외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연구에 비추어 보면 시선은 언어 이전의 몸짓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도 모르게 표현하는 몸의 언어인 것이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언어를 쓰기 시작한 게 20만년 정도 밖에 안 되었으니 그럴 만하다.

그래서 시선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표현하는 정보 창구다. 예를 들어 거리를 지나다가 나도 모르게 시선이 돌아간다면 그 시선이 닿는 곳엔 어김없이 내가 원하는 것이 있거나 재미 있고 흥미로운 것이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생존에 관련된 중요한 뭔가가 있다. 눈길의 대상이 이성이라면 내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게 멋진 상품이라면 평소 갖고 싶어하던 것일 것이다. 나의 눈길에 내 마음, 나의 관심이 담겨 있는 것이다. 마음이 담겨 있기에 시선은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시선을 통해 내가 원하는 정보를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대부분의 동물 수컷은 짝짓기 철이 되면, 자신이 어떤 수컷보다 멋지고 용감하다는 걸 암컷에게 보이고 싶어한다. 그러려면 일단 눈에 띄어야 하고, 눈에 띄려면 화려해야 한다. 색깔로 경쟁한다면 조금이라도 진하고 휘황찬란하게, 깃털로 경쟁한다면 멋들어지게 쭉 뻗어야 한다. 암컷은 수수한데 수컷이 화려한 이유다. 수컷이 과시행위를 하는 이유는 한 가지. 눈길 가는 곳에 마음이 가기 때문이다. 눈길을 끌어야 마음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마음이 쏠리는 곳으로 눈길이 간다.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를 자꾸 보게 된다. 이 눈길에 뭐가 들어있을까? 말할 것도 없이 뜨거운 마음일 것이다. 언젠가 한 카페에서 30분 이상 서로 말없이 바라보는 연인을 본 적이 있다. 자기들만의 언어로 진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정보를 담고 있기에 시선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유효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조직력으로 살아가는 늑대는 사냥할 때 ‘팀원끼리’ 수시로 눈빛을 교환한다. 소리를 낼 수 없으니 눈빛을 통해 서로 의사를 교환해 순발력 있게 행동을 조정한다. 긴밀한 팀워크로 움직이는 대(對)테러팀도 그렇게 한다. 찰떡 같은 호흡이란 척 하면 착 하는, 눈길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이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의 시선을 피하는 건 반대의 뜻이 된다. 회사 로비에서 아는 팀장이 보이길래 인사를 했는데 쓱 외면하고 지나가 버린다. 지난 번 팀장 회의 때 하도 이상한 소리를 하길래 너무 한다 싶어 한 소리 한 걸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다. 부드러운 시선이 오가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관계의 법칙인데, 시선을 주고 받지 않는다는 건 관계를 맺기 싫다는 뜻이다.

물론 뜨거운 눈길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잠깐 어딘가를 다녀왔는데 상사가 뚫어지게 나를 쳐다 보고 있다면 어떨까? 차가운 표정에 뜨거운 눈길, 이건 위험신호다. 곧 ‘화산 폭발’이 있을 거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도 누군가를 공격하기 직전 이런 시선을 보낸다. ‘내가 지금 너를 정조준하고 있다. 곧 너에게로 가겠다’는 걸 뚫어질 듯한 응시로 표현한다. 일거수일투족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관찰해야 후회 없는 최상의 공격이 되기에 그러는 것이다. 이럴 때 초식동물은 바람처럼 도망을 간다. 그러나 퇴근 시간 전까지는 도망갈 수도 없는 데다 어찌어찌 자리를 뜬다 해도 다음날 제 발로 출근해 그 뜨겁고 격렬한 응시를 또 다시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집단을 이루고 사는 사회적 동물에게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건 약자의 신속한 행동이다. 가능한 한 빠르게 ‘나는 당신을 이길 수 없다. 당신이 승자다. 무조건 항복’이라는 신호를 보내서 공격성을 누그러뜨린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몸을 움츠려 가능한 한 덩치를 작게 하는 것이다. 덩치를 작게 하는 건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보통 동물은 상대와 대결할 때 털을 곤두세우는 등 어떻게 하든지 덩치를 크게 보이려고 한다. ‘나는 이 정도로 크니 빨리 포기해’라는 메시지다. 괜히 싸워서 상처라도 입으면 손해이니 빨리 포기하라는 것인데 그와 반대로 하는 건 ‘내가 졌으니 공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상대의 공격성 누그러뜨리려면 눈높이 낮춰야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 조직의 미래가 달라진다.
이와 함께 눈높이를 낮추면 공격성을 한층 누그러뜨릴 수 있다. 눈높이를 낮춘다는 건 아예 공격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사자나 늑대들은 아예 배를 보이게끔 눕는다. 눈높이를 낮추는 건 물론 가장 약한 급소를 상대의 처분에 맡기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도 비슷하다. 가능한 몸을 움츠린 채 고개를 숙인다.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은 무릎까지 꿇고 고개를 깊숙하게 숙이는 절을 통해 도전할 의사가 없음을, 그러니까 완전 복종을 표시한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싸우던 인조가 47일 만에 나와 청 태종에게 머리를 세 번 조아리고 이를 세 번 반복했던 삼배구고두례(三拜九敲頭禮)가 좋은 예다. 공격을 하려면 공격 지점, 그러니까 상대를 보는 게 필수인데 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어쨌든 상사의 격렬한 응시를 받는다면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행동은 하는 게 좋다. 일단 상사의 불타는 시선을 받아 치거나 외면하는 건 금물. 똑바로 쳐다 보는 건 대들겠다는 것이고, 외면하는 건 ‘당신과 말하기 싫다’는 것이다. 둘 다 화산 폭발을 두 배로 부추긴다. 모든 걸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약간 숙이면서 눈길을 땅에 떨어뜨리는 게 좋다. 그런 후 과시 행위를 말끔히 없앤 다소곳한 태도로 전후 사정을 말해야 한다. 가능하면 약자처럼.

시선에는 많은 정보가 함축돼 있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아는 건 대단히 중요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는 분명 뭔가 있다. 시선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그 뭔가의 영향력과 가치는 높아진다.

왜 그 많은 사람이 TV에 나오려고 안간힘을 쓸까? 대중의 시선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발길을 모으는 백화점과 철도역 같은 곳의 땅값이 비싸지듯 대중의 눈이 쏠린 곳은 그 시대의 핵심이 된다. 선거에서 표심을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은 이런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어떻게든 사람들의 눈이 모인 곳에 나타나려고 한다. 눈에 띄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잊혀진 이름보다 무서운 게 없다. 그래서 악명이라고 떨치려고 애를 쓴다. 악명은 언제든 좋은 걸로 바꿀 수 있지 않는가.

물론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시선을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 시선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시선을 모으는 가장 흔한 방법은 남다른 능력이다. 그중에서도 권력의 힘이 가장 강하다. 사자나 호랑이는 무시무시한 능력이 있기에 그들이 사는 생태계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여 보란 듯 하지 않아도 모든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향한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까닭이다. 이런 원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똑같다. 왜 인사평가철이 되면 우리도 모르게 고분고분해질까?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는 누군가가 호시탐탐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응집력 있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침팬지 사회나 개코원숭이 무리에서 구성원의 시선은 언제나 한 곳으로 향한다. 우두머리다. 권력을 가진 우두머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잘 알수록 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두머리의 심기가 불편할 땐 가능한 행동을 삼가는 건 불문가지. ‘눈총’을 맞거나 ‘눈밖’에 나서 좋을 일이 뭐 있겠는가.

커다란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은 이런 시선의 가치를 잘 알고 있기에 무기처럼 활용한다. 얘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잡담을 하는 등 딴청을 부리면 “그쪽으로 머리를 홱 돌려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만 해도 모든 게 해결된다.”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인 데스몬드 모리스가 동물 사회와 인간 조직에서 모두 관찰한 특징이다. 권력자의 눈초리가 회초리보다 더 무섭다는 얘기다. 이보다 더한 수단, 그러니까 “큰소리를 내야 한다거나 명령을 되풀이 해야 한다면 그의 지위는 그다지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눈총’을 쏘았는데도 상대가 멀쩡하다면 그 지위는 힘이 없다는 뜻이다. 시선의 힘이 그의 힘이다.

이렇듯 리더의 시선은 구성원을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고 더 나아가 조직의 흥망을 좌우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리더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면 누가 신임을 받고 있는지, 어느 부문이 핵심 조직이고, 앞으로 무엇이 그 조직의 핵심 역량이 될지 알 수 있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리더십이란 조직이 가진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고 배치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일인데 여기에도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원리가 적용되는 까닭이다. 아첨을 생존도구로 하는 이들이 ‘눈치 백단’이 되어 살아남는 비결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권력자의 눈이 어디로 향하는지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그 마음을 읽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한다. 눈과 귀가 되고 손과 발이 되는 대신 입 속의 혀가 된다. 도무지 생산적이지 않는 도구가 된다.

리더 바꾸기보다 리더 시선 바꾸기 어려워

그래서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의 시선은 그 조직의 대단히 희귀한 자원이다. 그가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 조직의 미래가 달라진다. 그의 시선에서 조직의 미래가 시작된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 거기에 기회와 위협이 있고,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사사로운 이익이 있고 권력욕이 있다면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 일을 맡기고, 어디에 회사의 자원을 쓰느냐에 조직의 생존이 걸려 있는 일이 많아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 그렇다. 리더의 시선이 내부에 머물러 있거나 과거에 머물러 있을수록 그 조직은 위험해진다. 조직의 위로 올라갈수록 시선은 밖으로, 그리고 미래로 향해야 한다.

요즘 어느 회사에서나 조직의 리더를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조직의 리더를 바꾸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리더가 어디를, 그리고 무엇을 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리더는 보이는 게 아니라 봐야 할 것에 시선을 두어야 한다. 리더를 바꾸는 건 쉬워도 리더의 시선을 바꾸는 건 어렵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413호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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