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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첫 암호화폐 규제 그 후] ‘거래 전면 금지’ 등 빠져 호재로 인식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투기 과열 식히면서 투명성 확보에 초점...비트코인 거래 늘고 가격도 다시 뛰어

▎사진:ⓒgetty images bank
정부가 12월 13일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법무부·기재부·금융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과학기술정통부 등과 ‘암호화폐 관련 긴급 대책’ 차관회의를 개최하고 암호화폐 거래소의 사실상 허가제, 미성년자 및 외국인 거래 금지, 모니터링 강화 등이 담긴 암호화폐 투기 과열과 관련 범죄에 대한 정부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청회, 금융위원회 주최 관계자 회의 등에서 암호화폐에 관한 내용이 언급돼왔지만 정부 차원의 규제 원칙을 세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정부의 규제를 호재로 받아들여 비트코인 거래가 13일 오전 대책안 발표 이후 늘어나면서 가격도 함께 뛰었다.

정부는 미성년자·외국인·금융회사의 거래를 막아 투기 과열을 잠재우면서 거래의 규율을 세우고 투명성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자금세탁방지 시스템과 투자자 보호장치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거래소에만 암호화폐 거래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거래 전면금지 등 강경책이 거론되던 것에 비해서는 시장 친화적인 대책이다. 대부분 현행법 내에서 할 수 있는 규제다.

규제를 한다는 얘기는 거래 중단 등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다음에는 호재일 수밖에 없다. 우선 규제는 투자자 보호가 이유가 됐든 과세의 근간을 만들려는 것이 됐든 제도권 안에서 이뤄지는 행위다.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소 인증제’를 거론하진 않았지만 몇 가지 보호장치를 갖추면 영업을 허가해주기로 했다. 이는 사실상의 거래소 허가제다. 이번 규제 대책을 투자자들이 호재로 받아들인 또 다른 이유는 가장 중요한 ‘암호화폐의 정의’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를 입법이 필요한 사안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입법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은행 가상계좌 발급 재개될 듯


이번 암호화폐 규제 방안은 각 부처가 나눠서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유사수신행위 규제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정부 개정안에 따르면 가상통화를 취득·교환·매매·중개·알선·보관·관리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하지만 일정 요건을 갖춘 거래소에 한해 암호화폐 거래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구체적으로는 고객 자산의 별도 예치, 설명 의무 이행, 이용자 실명확인, 암호키 분산 보관, 암호화폐 매도매수 호가·주문량 공개 등을 의무화한다. 암호화폐 거래소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도 부과한다. 이에 따라 기준에 미달하는 중·소형 거래소는 자연스레 퇴출당할 전망이다.

속속 중단됐던 은행의 가상계좌 발급은 구체적인 규제안이 마련되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우리·산업·기업은행에 이어 신한은행도 12월 13일부터 빗썸·코빗·이야랩스 등 3개 암호화폐 거래소에 신규 가상계좌를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은행이 가상계좌를 발급하지 않으면 사실상 투자자가 암호화폐 거래소와 거래를 틀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법에 규정될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거래소라면 은행도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환치기 실태조사 실시하기로

암호화폐 투자수익에 세금을 매기는 방법은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논의하기로 했다. 암호화폐 수익에 소득세나 법인세를 적용하는 건 현행 규정으로도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진 세금을 물리지 않았다. 정확한 과세 자료가 파악되지 않고, 암호화폐로 얻은 이익의 성격을 규정하기 어려워서다. 따라서 암호화폐 거래 차익을 소득세법상 과세 대상에 명시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

정부의 이번 규제안은 새로운 입법이나 별다른 새로운 해석이 없었다는 면에서 미국·일본은 물론이고 중국보다도 약한 정도다. 일본은 법을 고치면서 암호화폐에 대해 새로운 법적 위치를 부여했고, 미국은 법원 판결을 기반으로 금융 관련 규제기관인 국세청(IRS)·증권거래위원회(SEC)·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각기 규제안을 발표했다. 중국도 처음에는 중앙은행이 나섰지만, 이후에는 누구도 나서지 않았는 데도 규제 대상인 암호화폐 거래소 등이 서비스를 축소했다. 정부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규제 아닌 규제는 검찰과 경찰, 공정위가 담당하도록 돼 있는 부분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검·경은 암호화폐 거래소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조사를 통해서 암호화폐 거래 구조를 확인하고 엄단에 처하기로 했고, 관세청과 함께 암호화폐 거래자금 환치기 실태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거래 구조를 확인하고 실태조사를 하려면 암호화폐 거래소로부터 관련 거래 내역을 제공받아야 한다. 미국의 경우 이 거래 내역을 받아내기 위해서 국세청이 1년 넘게 소송에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소송을 통해 거래 내역을 확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스기사] 해외 비트코인 규제는 - 거래소 규제, 과세 근거 마련에 초점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미국·중국·일본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선 비트코인의 법적 지위를 놓고 토론이 시작됐다. 과세의 근간은 법적 지위 확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에서 비트코인에 관한 법적 지위는 규제기관에 따라 다르다. 미 재무부는 2013년 비트코인을 금전으로 전환이 가능하지만 관리하는 중앙기구가 없는 가상화폐라고 분류했다. 환금성은 있지만 정식 통화는 아니라는 뜻이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2015년 9월 비트코인을 상품으로 정의 내렸고, 2017년엔 CFTC가 지정한 곳 외에서 비트코인 선물을 거래할 수 없다는 지침을 내렸다. 미 국세청(IRS)은 2015년 비트코인 보유 및 거래 차익에 대한 세금을 추징하겠다고 밝혔다. IRS의 과세 근거는 2016년 연방 법원의 ‘비트코인은 평범한 의미의 펀드에 속한다’는 판결이다. 2017년 12월 미 국세청은 암호화폐 거래소들에게 과세를 위해 암호화폐 거래 내역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걸었고 이에 승소해 앞으로 2만 달러 이상의 암호화폐 거래 내역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일본은 2014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마운트곡스가 해킹으로 파산한 것을 계기로 규제를 추진했다. 2016년 5월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통과시키면서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해 정부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 암호화폐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4월 일본 금융청은 암호화폐가 지불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상품이 아니므로 소비세는 폐지됐지만 자산으로 인정해 차익이 발생하면 과세하도록 조치했다.

중국 중앙은행은 2013년 금융회사들이 비트코인 거래를 할 수 없고, 비트코인과 관련된 어떤 금융상품도 거래 및 보증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2014년 1월 중국 중앙은행은 은행들에게 비트코인 거래와 관련된 계좌를 2주 내에 폐쇄하라고 지시했다. 개인의 비트코인 거래는 합법이다. 2017년 9월 중국 내 비트코인 거래소들은 개인들이 비트코인을 인출하는 것을 금지했다. 문제는 이 조치가 중국 정부의 합법적인 조치에 따른 게 아니라 정치적인 외압 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1414호 (201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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