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문재인 정부에 바란다] ‘겸허·경청·존중·건실’ 키워드 새기길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정부 만능론 경계하고 과욕 삼가야 … 재정 건전성 유지에도 신경써야

헨리 포드는 1902년에 포드(Ford Motor Company)를 창립해 한때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는 1914년 컨베이어로 생산라인을 연결해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시간을 12시간 반에서 1시간 반으로 줄이는 등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1914년 어느 날 그는 칠판에다 당시 이 회사의 일당인 9시간당 2.34달러를 써놓고 경영진에게 “우리 직원들에게 여기에다 얼마나 더 줄 수 있는지를 계산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경영진은 25센트씩 올려가며 이익에 미칠 영향을 뽑아 보았다. 그런데 매번 보고할 때마다 헨리 포드는 “충분치 않다”고 대답했고, 결국 이 숫자는 일당 4.80달러까지 올라갔다. 이 보고를 받은 그는 (내친 김에) 최종적으로 일당을 5달러로 결정했다. 게다가 하루 9시간의 근로 시간을 8시간으로 줄였다. 결국 실질적인 임금 인상폭은 두 배를 상회하게 됐다.

포드가 임금 올리던 시절과는 달라

포드가 이를 공식발표하자 언론은 물론, 미국의 산업계는 경악했다. 곧 이 회사는 망할 것이라는 예측도 뒤따랐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당시 주력 차종이던 ‘모델 T’는 1914년 한 해에 30만8000대가 팔렸는데, 그 다음 해에는 50만대 이상, 5년 후인 1920년에는 100만대가 팔렸다. 포드의 이익도 껑충 뛰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이는 포드가 나중에 밝힌 임금 인상의 이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종업원들의 구매력을 높였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구매력을 높였으며 이는 또 다른 사람들의 구매력을 높이는 형태로 계속 이어졌다. 고임금을 지불하되 가격은 낮게 유지해 구매력을 확대한다는 그 생각이 이 나라 번영의 이면에 있다.”

탄핵 정국을 뒤로 하고 2017년 5월 10일 새 정부가 출범했다. 이후 주가는 최고치 경신을 거듭하고, 거시경제의 지표도 확연한 회복세를 보여왔다. 특히 민간소비의 회복이 두드러진다. 새 정부가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경제정책을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경제지표가 호전된 것은 세계 경제의 회복세에다 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큰 기대감이 가세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 정부 출범 전후로 ‘문재인노믹스’ 혹은 ‘제이노믹스’라는 표제 하에 여러 정책 방향이 제시되어 왔으나 이제는 ‘공정경쟁’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이라는 세 가지 방향으로 집약되는 양상이다. 일단은 집권 전후 시기에 나온 ‘국민성장’와 같은 모호한 용어보다 훨씬 구체적이어서 좋다. 필자는 새 정부의 경제 정책에 훈수할 자격은 충분치 않으나 오랫동안 현장의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며 각 정권의 경제정책 성패를 지켜 보아왔던 경험으로 정책 담당자들에게 조언을 하고 싶은 것이 몇 개 있다.

첫째 ‘정부 만능론’을 믿지 말고 과욕을 경계하며 겸허한 초심을 이어 가길 바란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생각보다 성숙한 상태여서 이제는 정부가 웬만한 수단으로는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없다. 약 15년 전 참여정부 출범시 필자는 학계나 정치권 출신으로 실제정책을 입안하고 실시하는 것은 처음인 사람들을 다수 만나 보았다. 모두 국민을 위한다는 ‘선의’와 ‘의욕’이 충만했으나 선의가 꼭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고, 의욕도 지나쳐서인지 정책의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았다. 더구나 한국 경제는 15년 전보다 훨씬 더 성숙해져 있는 상태이다.

새 정부의 정책 방향 중 이코노미스트들이 가장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바로 보고 있는 것이 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수단으로 삼는 ‘소득주도성장’이다. 정통 경제학에서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 공급이 주는 것으로 가르친다. 하지만 앞서 예를 든 포드도 있으니 필자도 이 방향이 전혀 맞지 않는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필자도 포드가 굴기하던 당시 상황은 현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는 지적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당시 이 회사는 세계 1위의 자동차 기업으로서 임금 인상을 뒷받침할 충분한 이익을 내고 있었고, 다른 후발 경쟁자들은 이를 쉽게 따라갈 수 없었다. ‘주식회사 한국’의 경우에는 마켓 리더가 아니고 중국 등 외부의 경쟁자를 상대해야 되는 상황이다. 임금 인상이 자칫 국내 공장의 해외 이전을 부추기고 실업을 촉진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데 한국 경제가 이를 감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눈먼 돈’ 지출은 가능한 막아야

그러므로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이 과연 ‘소득주도성장’으로 이어질지 여부를 지켜본 후 그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에 관해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기를 바란다. 이 도시는 2015년 4월 시간당 9.47달러이던 최저임금을 11달러로 올린 후, 9개월 뒤엔 13달러, 다시 1년 후엔 15달러로,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58%를 인상했다. 2017년 6월 워싱턴 대학교는 최저임금이 11달러에서 13달러로 오를 때 일자리가 6.8% 줄었다며 근로시간이 대폭 줄면서 연간 임금이 오히려 125달러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둘째 ‘경청’과 ‘존중’의 자세를 견지해달라는 것이다. 현장의 이코노미스트 사이에서 회자되는 ‘메피스토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정책은 그 목표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이 집값을 올리고, 양극화를 줄이겠다는 정책이 되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현상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이나 목격해왔다. 직전 정권에서 통신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정책이 이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현상도 보았다. 또 중국에는 “위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라는 말이 널리 통용된다고 한다. 이는 정책의 의도가 시장의 반응에 의해 쉽게 빗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책 입안과 집행 과정에서 시장의 목소리를 널리, 깊게 들어 여러 가능성을 미리 감안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는 물론 시장의 주역인 기업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단통법’과 같은 졸속 정책은 재연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까지 감안한 정책을 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큰 정부’와 ‘복지 강화’를 지향하는 새 정부의 정치 노선으로 볼 때, 나라 빚은 계속 늘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해가 된다. 더구나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아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매우 양호한 편이라고 한다. 최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새로 제정한 ‘D1’ ‘D2’와 같은 지표들을 내놓으며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공기업 부채 등을 포함하면 나라 빚은 이미 1000조원을 넘어섰고, 이도 다른 나라에서는 발행하지 않는 중앙은행의 통안채 170조를 포함시키면 현재 재정도 썩 건전한 상태라고 보기 힘들다. 더구나 향후 5년 간 새 정부가 추진할 정책은 필연적으로 가파른 국가부채 증가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빨리 노령화가 진행되는 인구구조에다 갑작스런 통일까지 가세한다면 향후 10년 안에 재정이 질 부담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을 감안해 ‘눈먼 돈’ 지출을 막아가며 최대한 알뜰한 재정 운영을 해야 될 것이다. 그래야 후대에 두고두고 원망을 듣는 경우가 없을 것이다.

1415호 (2018.01.0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