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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원에 블록체인 기술 적용한다면] 원조 물품 받은 北, 주민정보 공유 가능 

 

신버들 삼정KPMG 시니어 컨설턴트
유엔세계식량계획, 신원 인증에 블록체인 활용 ... 거래 투명성 높일 수 있어

▎1월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남측 대표단이 평화의 집에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과 전체회의에 동시 입장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가 재개되면서 대북 지원도 다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9월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고 유엔아동기금(UNICEF,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과 유엔세계식량계획(UN WFP, United Nations World Food Programme)의 북한 모자 보건과 영양 지원 사업에 남북협력기금에서 800만 달러(약 87억5000만원) 공여를 의결하고, 공여 시기를 살피는 중이다. 다만 한편에서는 대북 지원의 투명성을 문제 삼으며 대북 지원 재개 움직임을 비판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유엔세계식량계획이 도입한 블록체인 기반 지원에 주목할 만하다. 블록체인(blockchain)은 분산형 데이터베이스(DB)와 유사한 형태로 데이터를 저장한다. 참여 구성원이 서로 데이터를 검증하고 저장해 특정인이 임의로 조작하기 어렵도록 설계한 플랫폼이다.

남북 대화 재개되면서 대북 지원 목소리도


유엔세계식량계획은 전통적으로 제3자인 금융 서비스 업체를 통해 난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했다. 금융 서비스 업체가 특정 난민의 신용을 보증하면, 유엔세계식량계획이 자금을 지원하고 해당 난민이 현지 상점에서 물품을 구입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3자 인증이 불필요한 블록체인 특성을 활용해 원조 효과를 높이는 ‘빌딩 블록 프로젝트(Building Blocks Project)’를 진행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은 지난 5월 시리아 난민 지원 프로젝트에 이를 시범 적용했으며 제3자에 의존하지 않아 비용 절감 효과를 얻었다.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엔세계식량계획은 블록체인상에 난민의 가상계좌를 만들어 가상화폐 형태의 바우처를 지급한다. 난민 캠프 수퍼마켓에서 물품을 고른 난민은 계산대에 설치된 안구 인식 결제 기기로 홍채를 인식하면 블록체인상 유엔난민기구(UNHCR,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난민 데이터를 통해 신분이 확인된다. 중동결제시스템(MEPS)과 요르단 아힐리은행(Ahli Bank) 서비스로 해당 난민의 잔고가 확인되면 결제가 진행된다. 유엔세계식량계획은 ‘빌딩 블록 프로젝트’로 총 1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지원했으며, 2018년 말까지 요르단에서 10만 명을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대북 지원 때도 블록체인을 통해 누가 물자를 받았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북한 주민 가상계좌로 바우처를 보내 북한 주민들이 현지 약 400여개 ‘종합시장(장마당)’에서 식량을 구입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북한경제리뷰 2017년 3월호’에 실린 ‘북한 종합시장의 지역별 분포와 운영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어스, 북한 이탈주민 인터뷰, 북한 지리 관련 문헌과 지도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2016년 12월 기준 북한 내에 404개의 종합시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 주민에게 가상화폐 형태의 바우처를 지원하는 방안은 다음과 같다. 공여기관이 북한 수혜자를 대상으로 블록체인상에 가상계좌를 만들어 바우처를 보낸다. 종합시장 계산대에서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공유되는 수혜자 신분을 확인하고, 협력 금융회사 서비스를 통해 잔고 확인 후 결제를 진행한다. 이 경우 북한 현지 주민 대상 해당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금융회사가 필요하다. 북한 내 상업은행이 이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에 따라, 북한이 국제 금융망을 이용하는 것은 불법이라 북한이 해외 은행과 협업하기는 어렵다.

블록체인 활용해 누가 물자 받았는지 확인 가능


▎WFP는 요르단에 위치한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블록체인을 활용해 신원을 증명하고 생필품을 구입하게 했다. / 사진:WFP/Mohammad Batah
블록체인을 활용해 북한 원조 물자 이력 정보를 공유하는 방안도 있다. 예를 들어, 북한으로 의약품을 보낼 때 지원국 발송 담당자, 지원국과 북한 측 운송 담당자, 물품을 수령한 북한 주민이 휴대전화 앱을 통해 물품 발송, 운송, 수령시 블록체인에 이를 기록한다. 북한 주민은 그의 휴대전화 앱으로 신원을 확인받고 물품을 수령한다. 발송 담당자, 운송 담당자, 북한 주민은 해당 이력 정보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실시간으로 공유해 누가 지원품을 수령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블록체인상 원조 물자의 이력 정보 조작 가능성은 매우 작다. 다만 블록체인 활용에 몇 가지 유의 사항이 있다. 유엔세계식량계획 한국사무소 관계자는 “시리아 난민 지원의 경우에는 적절한 IT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난민 지원에 블록체인 활용이 가능했지만, 북한의 경우에도 블록체인 적용에 필요한 IT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북한에도 어느 정도 수준의 IT 인프라가 갖춰져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지난 6월에 발표한 ‘북한 유무선 통신서비스 현황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6월 말 기준 평양에는 약 50여개 휴대전화 기지국 설비가 있고, 중소도시로 갈수록 그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바우처 전송, 원조 물품 이력정보 추적에 관한 법규 확인이 필요하다. 북한에서는 개인 인터넷 사용이 금지된다. 따라서 북한 측 이해관계자가 인터넷상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북한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현재 북한 스마트폰은 국제전화 및 인터넷 접속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주민이 직접 휴대전화를 활용해 인터넷 기반의 앱을 사용하기 어렵다면, 유엔세계식량계획의 시리아 난민 지원 사례에서처럼, 종합시장 상점 또는 원조 물품 배급 기관의 인터넷 프로그램을 활용한 홍채 인식 방식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공여기관이 활용 가능한 지원 대상 북한 주민 정보가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정리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그게 없다면 북한 정부와 함께 데이터베이스를 준비해야 한다. 북한 주민이 현지 종합시장에서 구입한 식량이나 지원 물품을 실제로 사용하는지 확인하는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

대북 지원에 블록체인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품 공여국과 북한 측 이해관계자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할 유인 마련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확인하고, 이를 충족할 전략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 상황에서 북한 측은 블록체인 기술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1월에는 북한 평양과학기술대학이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이탈리아인 강사를 초빙해 블록체인에 대한 특별 강의를 열었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북한 지원 투명성 제고 사업 추진에는 남한과 북한 정부, 대북 지원 사업을 진행하는 국제기구와 국내외 기업의 참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력정보 추적 관련 실적을 보유한 해외 기업으로는 IBM과 미국 E-비즈니스 솔루션 전문업체 SAP 아리바(Ariba)가 있다. 국내 기업 중에는 삼성SDS·SK C&C·LG CNS 같은 시스템통합(SI) 업체와, 더루프·블로코·코인플러그 같은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 업체, SKT·KT와 같은 통신사가 블록체인 부문 사업 개발에 관심을 보이며 관련 사업 실적을 쌓고 있다.

북한 개발협력 사업에도 활용할 수 있어

현재 블록체인은 발전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금융, 제조, 유통, 공공서비스, 사회 및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부문에 적용되고 있다. 그만큼 대북 지원 투명성 제고 이외에도 블록체인을 활용한 북한 대상 사업도 다양할 것이다. 아주대학교 조정훈 아주통일연구소장은 “어느 정도의 경제 성장을 이룬 북한 정부가 이제는 인도적 지원보다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 보여 북한 대상 개발협력 사업 개발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북한 정부는 일방적, 단기적 지원 사업 보다는 북한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상호적이고, 장기적인 국제개발협력 사업 개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과 국제사회 여러 이해관계자의 고민을 확인하고, 블록체인의 특성을 활용해 고민을 완화할 방안 시도를 기대해본다. 그 과정은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블록체인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스기사] 블록체인의 미래 - 웹처럼 많은 사람 연결할 듯

2009년 최초로 비트코인을 개발한 인물로 알려진 나카모토 사토시는 2008년 [비트코인 : P2P 전자화폐 시스템]이란 논문에서 비트코인이 가져올 미래를 전망했다. 그 내용은 ▶P2P(peer to peer, 개인 간) 전자 거래 및 상호작용 확대 ▶금융회사의 필요성 축소 ▶암호학적 증명으로 중앙 신용기관 대체 ▶중앙기관 개입 없이 네트워크 자체가 신뢰성 인증으로 요약된다.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을 구현하는 주체이다. 블록체인은 기술적·비즈니스적·법적 관점에서 정의가 가능하다. 기술 측면에서 블록체인은 공개 열람 가능한 분산 원장(distributed ledger) 형태의 데이터베이스이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중개자 없이 개인 간 거래 정보, 가치, 자산을 이동시킬 수 있는 교환 네트워크(exchange network)이다. 법적 관점에서는 거래를 검증하는, 기존 신뢰 보증 기관을 대체하는 수단이다.

블록체인 전문가인 윌리엄 무가야는 2016년 출판한 [비즈니스 블록체인]이란 저서에서 위 내용을 소개하며 블록체인은 웹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기술 발전 흐름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지금 많은 사람이 웹에 접속하는 것처럼 앞으로 많은 사람이 블록체인에 연결될 것이라는 의미다.

1418호 (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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