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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18 수놓은 6가지 미래 기술] TV화면 돌돌 말고 강아지 로봇이 재롱 부리고 

 

이창균·함승민 기자 smilee@joongang.co.kr
일상 바꾸는 스마트시티·블록체인도 집중 조명 … 예년 대비 발전과 진화 거듭해

▎CES 2018엔 새로운 TV 기술이 등장해 취재진과 관람객들의 시선을 모았다. 왼쪽은 삼성전자가 마이크로 LED 기술로 만든 146인치 TV ‘더 월’, 오른쪽은 LG디스플레이가 선보인 65인치 UHD 롤러블 디스플레이. / 사진:연합뉴스
1월 9~12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올해 ‘소비자가전박람회(CES)’에서도 주목할 만한 미래 기술이 쏟아졌다. 크게 여섯 갈래로 요약된다. 주최 측이 행사 주제로 선정할 만큼 공을 들인 스마트시티 분야에선 실시간으로 자연재해 가능성을 알려주고 기후를 측정해주는 기술이 등장했다. ‘가전의 꽃’ TV에선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신기술로 격돌했다.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과는 또 다른 혼합현실(MR)도 많은 관람객의 관심을 모았다.

수년째 CES 무대에 오른 자율주행차량 기술 역시 화제였다. 국내외 기업이 새로운 시스템을 선보였다. 로봇은 이번 CES에서도 진화했다. 강아지를 닮은 서비스 로봇 등이 가족 단위 관람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계적으로 뜨거운 감자인 암호화폐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도 이번 CES를 장식했다. 기업들이 블록체인 기반의 새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공개하면서다. CES에서 블록체인이 핵심 주인공 중 하나로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 스마트시티 - 홍수도 공기 질도 실내에서 확인


▎독일의 보쉬는 CES 2018에서 다양한 스마트시티 기술을 선보였다. / 사진 : 보쉬
2020년 여름, 미국 플로리다주 남부의 한 소도시. 며칠 전 인근에 몰아쳤던 기록적인 허리케인의 여파 때문인지 도시의 강물이 예사롭지 않다. 지방자치단체 연구원들은 당황하지 않고 실내에서 모니터만 주시했다. 곧바로 궁금증이 풀렸다. ‘오전 8시 35분 현재 가까운 강물의 수위는 몇m, 다른 수역 수위는 몇m…. 홍수가 임박했으니 조치가 필요합니다.’ 시민들에게는 자동으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갔다. 대피 장소 마련까지 일사천리 진행된 끝에 홍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CES 2018에서 독일 업체 보쉬가 선보인 디지털 홍수 모니터링 시스템이 바꿀 미래 모습이다. 보쉬는 독일 소도시 루트비히스부르크 인근 네카어강에서 이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시스템은 보쉬의 IoT 클라우드로 데이터를 전송, 수위의 임계값이 넘어가면 지역 주민들에게 실시간 문자 메시지로 경보를 발령해준다. 홍수가 잦은 인도와 남미 등지의 지자체들이 이 시스템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 CES에서 보쉬는 ‘클리모(Climo)’라는 기후 모니터링 시스템도 선보였다. 이산화탄소·질소산화물·온도·상대적 습도 등 공기 질을 좌우하는 12가지 주요 변수를 측정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기존 시스템과 비교해 100분의 1 크기, 가격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 두 시스템 모두 스마트시티 기술의 일종이다. 스마트시티는 도시의 모든 요소를 IoT로 연결,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미래 도시를 뜻한다. 스테판 하르퉁보쉬 부회장은 “2020년까지 세계적으로 화재·도난 경보기, 전기 계량기와 가전 등 약 200억대의 기기가 서로 연결될 것”이라며 “보쉬 전자 제품을 2020년까지 웹에서 100%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보쉬 측은 글로벌 스마트시티 시장이 해마다 19%씩 성장해 2020년 8000억 달러(약 858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보쉬 외에도 CES 2018에 참가한 기업들은 스마트폰으로 가능했던 인류의 성취가 스마트홈으로, 나아가 스마트시티로 뻗어나가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나날이 발전 중인 IoT 기술의 연결성을 통해서다. 미국 아마존·페이스북·포드, 중국 화웨이 등도 CES에서 그간 갈고 닦은 스마트시티 기술을 뽐냈다. CES를 개최한 전미소비자기술협회(CTA)의 개리 샤피로 회장은 “2020년까지 세계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비용만 353억5000만 달러(약 38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2. TV-마이크로 LED와 롤러블 OLED의 대결

세계 TV시장을 석권한 한국의 맞수 대결이 또 한 번 펼쳐졌다. 삼성전자는 신무기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을 적용해 만든 세계 최초 모듈러 TV ‘더 월’ 146인치 모델을 CES 2018에서 공개했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낙점한 마이크로 LED는 칩 크기가 10~100마이크로미터(μm)에 불과한 초소형 LED다. 더 월은 이 소재를 탑재해 광원(백라이트)와 컬러필터 없이도 소재의 자발광, 즉 직접 빛을 발하는 특성만으로 화면을 구현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마이크로 LED 소재 적용시 기존 화면보다 밝기와 명암비, 색의 재현 등 거의 모든 화질 영역에서 탁월해지고 시야각도 개선된다”며 “광원 수명과 소비 전력 등 내구성·효율성 측면에서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에 비해 앞선다”고 설명했다. 또 모듈러 방식으로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제품의 스크린 사이즈나 형태를 자유롭게 조립할 수 있다. 가전 업계는 최근 세계 시장에서 LG전자를 필두로 한 OLED TV 진영에 밀렸던 삼성전자가 마이크로 LED로 명예 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마이크로 LED 시장은 지난해 2억5000만 달러에서 연평균 54.7% 성장해 2025년 199억2000만 달러(약 21조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경쟁자인 LG 측은 이에 맞서 LG디스플레이가 신무기를 내세웠다. 세계 최초 65인치 초고화질(UHD) ‘롤러블(rollable) 디스플레이’다. 이 롤러블 디스플레이는 3840*2160 화소의 초고해상도 화면을 두루마리처럼 돌돌 말 수 있도록 설계됐다. 소비자가 사용하지 않을 땐 말아서 보관할 수 있어 공간을 그만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사용 목적에 따라 최적화한 화면 크기와 비율로 조정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는 현재 TV에 탑재되는 대형 OLED 패널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들고 있는 기업이다.

취재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양측은 두 가지 신기술을 놓고 행사 기간 치열한 장외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우리도 마이크로 LED를 개발하고 있지만 생산성과 비용 문제가 있어 상용화 시점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이크로 LED가 LED 칩을 기판에 전사하는 방식으로 제작돼 시간이 많이 소요되며, LED 칩 하나가 1원이라 해도 UHD를 구현하면 이미 25000만원을 뛰어넘어 일반적인 TV 구매자는 상상도 못할 가격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신기술에 여러 한계가 있음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이에 한종희 삼성전자 사장은 “롤러블 디스플레이는 우리 연구소에서 2년 전 개발해 시연까지 했지만, TV 사용 측면에선 집안에서 안 보이게 하는 것보다 새 부분(강점)을 찾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개발만 하고 출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맞불을 놓았다. 결국 어느 쪽이 웃을지는 다시 소비자들에게 달렸다.

3. 혼합현실(MR)-가상현실의 몰입감, 증강현실의 현실감


▎현대모비스가 마련한 전시장에서 관람객이 자율주행 신기술을 체험해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MR 헤드셋 ‘삼성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오디세이’도 CES 2018에서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11월 국내에 이미 출시된 제품이다. MR은 VR과 AR의 장점을 합친 신기술이다. HMD 센서로 적외선을 쏴서 공간을 파악하고, 실제 환경 위에 가상의 이미지를 덧입히는 원리다. 조익환 SK텔레콤 연구원은 “AR의 현실감과 VR의 몰입감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기술이 MR”이라며 “다용도로 쓸 수 있을 만큼 확장성이 좋을 것”으로 전망했다. 예컨대 대형 전시나 공연뿐 아니라 의료·교육·제조·건축 같은 전문적인 영역에서까지 활용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태동 단계인 VR이나 AR처럼 MR도 아직 콘텐트가 부족하다는 것이 보완점으로 꼽히지만, 발전 가능성은 크다는 얘기다. 마이크로소프트·델·레노버 등 많은 글로벌 기업이 최근 잇따라 MR 장비를 출시하면서 시장 선점을 노리고 나선 이유다. 다만 소비자 접근성을 높이려면 콘텐트 다양화 외에 다른 과제도 있다. MR 헤드셋의 가격 경쟁력 확보와 함께 일상에서 무리 없이 쓸 수 있을 만큼 무게를 더 가볍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4. 자율주행-아이디어와 가능성에서 기술 적용 단계로

CES 2018에서는 자율주행과 관련해 본격적인 개발과 생산을 위한 소프트웨어·플랫폼 경쟁이 치열해졌다. 완성차 업체는 이들과의 협업으로 더 실용적인 기능을 선보이는 데 주력했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자율주행은 이미 지난해에도 주요 이슈로 자리잡은 키워드여서 이제는 개념적 접근이 아닌 업체별로 단계적 기술력 보여주기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이스라엘 자율주행 솔루션 업체 모빌아이를 153억 달러에 인수한 인텔은 주요 협력사와 함께 수집한 데이터를 자사 반도체와 소프트웨어에 적용할 계획을 밝혔다. 자율주행 기술을 완성하려면 맵 데이터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 인텔 설명이다. 엔비디아는 키노트를 통해 ‘자비에’라는 이름의 통합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GPU 기반의 강력한 수퍼컴퓨터를 그래픽카드 사이즈로 소형화하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자동차 업체들의 정밀한 자율주행 테스트에 직접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등 한 단계 높은 차원을 구현했다는 평가다.

완성차 업체들은 이들과의 협업을 확대하면서 자율주행을 적용한 실제 편의 기능을 선보였다. 도요타는 차세대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 ‘e-팔레트’를 세계 최초로 이번 행사에서 공개했다. 전기로 움직이는 완전 자율주행차다. 카 셰어링에서 셔틀버스, 음식 배달 등까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다. 벤츠는 AI 기술이 적용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MBUX’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고, 닛산은 운전자의 뇌와 차량을 연결해 운전자가 핸들을 돌리거나 페달을 밟는 것을 생각하면 차량이 이를 감지해 운전을 돕는 ‘브레인 투 비이클(Brain-to-Vehicle)’ 기술을 공개했다. 현대모비스도 자율주행 중 AI가 운전자 상태를 확인해 차량을 갓길에 멈추는 ‘DDREM’ 기술을 발표했다.

5. 로봇- 반려·생활형 로봇 대거 등장


▎ 일본 소니가 선보인 강아지 로봇 ‘아이보’는 실제 강아지와 흡사한 행동을 할 수 있어 관심이 집중됐다. / 사진:연합뉴스
로봇은 CES 2018에서 관람객의 마음을 훔친 대표 제품군이다. 특히 가사·쇼핑·반려 등 공감·생활형 로봇들이 대거 전시돼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로봇에 AI가 접목되면서 인간과의 교감이 키워드로 떠올랐다. 국내 로봇 전문가인 송세경 퓨처로봇 대표는 지난 10월 열린 제18회 세계지식포럼 ‘AI, 로봇과 함께 사는 사회’ 세션에서 “이제 로봇은 사용자와 함께 있을 때의 느낌, 즉 교감이 중요하다”며 “이제 소울웨어 시대가 열렸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소니의 AI 강아지 로봇 ‘아이보’는 이번 CES에서 관람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아이보는 주인의 성격이나 집안 환경에 따라 고유의 성격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스스로 호기심을 갖고 주변 환경을 탐험하기도 한다. 환경에 익숙해지고 나면 행동에 더 자신감이 붙는다는 면에서는 실제 강아지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음악을 틀어주면 처음에는 쭈뼛거리다 흥에 겨워 춤을 추기도 한다. 현지의 소니 관계자는 “로봇과 AI에 이미지 센서 기술을 조합해 풍부한 감정 표현을 실현한 것이 아이보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로봇 스타트업 블루프로그가 개발한 가정용 로봇 ‘버디’도 이번 CES에 새로운 버전이 발표됐다. 가족들과 대화하고 집안을 모니터링하는 게 가능하다. 음악 청취, 동영상 실행 등도 할 수 있다. 얼굴과 바퀴가 있는 AI 비서에 가깝다. 홍콩 핸슨로보틱스가 제작해 선보인 인간형 AI 로봇 ‘소피아’는 카이스트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의 보행 기술이 접목돼 움직이는 게 가능해졌다. 소피아는 구글 AI 기술이 탑재돼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대중 연설을 할 수도 있다.

세계 최초로 AI를 적용한 섹스 로봇이 등장해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미국 성인 로봇 전문업체인 어비스크리에이션이 개발한 ‘하모니’다. CES에서는 부득이하게 하모니의 얼굴만 전시했지만, 일부 관람객과 현지 매체 관계자들은 직접 몸통이 연결된 하모니를 체험했다. 지난해에는 눈썹·눈꺼풀·안구·입술·턱 근육까지 움직일 수 있는 버전이었지만 이번에 공개한 하모니는 AI가 접목돼 사용자와 감성 대화가 가능하고, 얼굴 표정이나 말도 실제와 비슷하게 재현했다.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거나 야한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6. 블록체인-각종 기술산업 재편의 단초

암호화폐 광풍으로 주목받은 블록체인 기술 역시 이번 CES 행사의 중요한 트렌드로 떠올랐다. 단순히 암호화폐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블록체인은 스마트폰과 네트워킹·IoT 등의 부문에서도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가전·헬스케어·콘텐트 결제 서비스 등 보다 다양한 영역에 적용된다는 얘기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액센추어의 그렉 로버트 매니징 디렉터는 “블록체인이 앞으로 뛰어난 효율성과 보안성을 내세워 많은 산업 분야에 도입되고 기술산업을 재편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블록체인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은 하드웨어 중심의 CES 무대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달랐다. CES 개최 기간에 맞춰 라스베이거스 베네시안호텔에서 열린 공식 부대행사 ‘더 디지털 머니포럼’에서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주제로 다뤄졌다. 블록체인이 IoT와 융합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삼성전자와 소니 등 대형전자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IoT 기술을 내놓을 예정이다. 블록체인으로 스마트홈 서비스를 고도화·안정화하겠다는 계산이다.

이 밖에 코닥은 이번 CES에서 ‘코닥 원’ 프로젝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사진작가의 이미지 권한 관리를 위한 사업이다. 이 사업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웹에서 무단으로 도용된 이미지를 찾아낸다. 시스템이 자동으로 해당 웹사이트에 라이선스 구입을 권유한 다음, 이를 자체 암호화폐인 ‘코닥코인’으로 결제하도록 유도해서 이미지 저작권자에게 분배하는 내용의 프로젝트다.

1418호 (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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