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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연임’ 논란 빚은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앞날은] 난국 돌파에도 금융당국 적격성 검사 남아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3월 주주총회에서 3연임 예정 … “관치금융 적폐 되풀이” 지적도

“8부 능선을 넘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을 두고 하나금융 내부에서 나오는 얘기다. 사외이사 7명으로 구성된 하나금융지주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는 1월 22일 김 회장과 김한조 전 외환은행장, 최범수 전 한국크레딧뷰로(KCB) 대표이사 등 최종 후보군에 오른 세 명의 후보를 인터뷰한 후 김 회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추천했다. 김 회장이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정식 선임되면 2021년 3월까지 그룹을 이끌게 된다.

김 회장은 1981년 서울은행에 입행하면서 금융권 생활을 시작했다. 1992년 하나은행의 창립 멤버로 합류해 하나대투증권(현 하나금융투자) 사장과 하나은행장을 거쳤다. 그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이 3연임을 하고 물러난 후 2012년 3월부터 회장직을 맡았다. 김 회장의 3연임 가능성이 커졌지만 최종 후보로 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말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김정태 회장을 겨냥해 “CEO가 스스로 가까운 분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연임에 유리한 상황을 만든다”며 이른바 ‘셀프 연임’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셀프 연임은 후계자를 키우지 않고 본인 연임에 유리한 구도를 만드는 것을 빗대 표현한 말이다. 최흥식 금감원장은 특히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지배구조와 승계 프로그램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졌는지에 검사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1월 12일 하나금융에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잠시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사흘 후인 15일엔 이를 문서로 전달했다. 금융당국의 압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혁신 추진방향’ 간담회에 참석해 “금융인들 중에 ‘금융은 특별하기 때문에 언제나 옳고 어떠한 경우도 간섭받아선 안 된다’는 잘못된 우월의식에 젖어 있는 분이 있다면 빨리 생각을 고치 시기 바란다”고 날을 세웠다.

금감원이 내세우는 명분은 CEO 리스크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하나금융 노동조합의 요청으로 김 회장이 박근혜 정부 때 창조경제 1호 기업인 아이카이스트에 특혜대출을 해줬다는 의혹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금융권 채용 비리 의혹도 검사 중이다. 심층 점검을 위해 2차 검사 대상으로 추려진 10개 은행에 하나은행이 포함됐다. 그러나 하나금융 회추위는 “금융당국이 민간금융회사의 회장 선출 과정까지 개입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회추위는 1월 15~16일 서울 모처에서 7명의 회장 후보를 상대로 예정돼 있던 인터뷰를 진행했다.

금융당국과 각 세워 장수한 금융사 CEO 드물어


사실 하나금융 회추위가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는 것을 금융당국이 막을 방법은 없다. 다만 하나금융으로서는 금융당국의 만류에도 선임 절차를 강행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2009년 12월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은 KB금융그룹 회장 후보로 내정됐지만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아 사임했다. 2010년 3월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4연임에 성공했지만, 그해 10월 금감원이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중징계 방침을 통보하자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금융당국의 금융권 CEO에 대한 셀프 연임에 대한 비난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해 11월 20일 연임에 성공한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도 셀프 연임이라며 비난을 받았다. KB금융은 지난해 9월 차기 회장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최종 후보군 3명을 추려 발표했지만, 윤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2명이 곧바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결국 KB금융은 금융당국의 입김을 방어하는 차원에서 묘수를 내놨다. 지난해 12월 26일 KB금융은 “비은행 부문 강화 등을 위한 자문 역할을 위해 KB부동산신탁에 부회장직 신설을 검토 중”이라며 김정민 전 KB부동산신탁 사장을 부회장으로 내정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현 정부는 적폐청산을 내세우고 있지만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관치금융의 적폐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측은 “하나금융 노조에서 김정태 회장의 의혹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해 진행하는 것”이라며 “그 의혹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회장 거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선임 절차를 늦춰달라는 취지”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금감원의 해명에도 하나금융 내부에서는 관치금융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갈등 이면엔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고 보고 있다. 김승유 전 회장은 자신이 후계자로 선택한 김정태 회장과 등진 지 오래다. 김 회장은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통합은행인 KEB하나은행의 초대 행장을 선정할 때 김 전 회장과 갈등을 빚었다. 김승유 전 회장은 김병호 하나은행장(현재 하나금융 부회장)을 밀었지만, 김정태 회장은 함영조 하나은행장을 KEB하나은행 초대 행장으로 낙점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김승유 전 회장은 회장 자리에 김병호 부회장을 앉히려 했지만 김정태 회장이 연임 의사를 밝히면서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은행권에서는 김승유-장하성(대통령정책실장)-최종구(금융위원장)-최흥식(금융감독원장) 라인이 김정태 회장을 옥죄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흥식 금감원장은 하나금융 부사장을 지냈다. 4명은 모두 고려대 동문이다. 김정태 회장은 지난해 12월 그룹 및 지주사 출범 12주년 기념행사 때 기자들에게 “전직 CEO와 임원들이 근거 없는 음해성 소문을 낸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승유 전 회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하나금융 노조에서 금감원에 조사 요청”

하나금융 관계자는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왕좌에서 내려왔으면 새 왕좌에 모든 권한을 줘야 하는데 여전히 인사에 개입하려고 한다”며 “KEB하나은행 출범 이후 조직이 안정화되고 실적도 개선되는 상황에서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실 김 회장은 지난 3년 간 그룹의 최대 난제였던 외환은행과 옛 하나은행 간 조기 통합을 이룬데다 성과도 좋았다. 이익이 지난 2015년 9350억원에서 지난해 1조9780억원(예상)으로 두 배로 늘어났다. 부실채권(NPL) 비율 등 자산 건전성 지표도 꾸준히 개선됐다. 지난해 하나금융 주가는 59% 올랐다.

일단 김정태 회장이 3연임 문턱은 넘었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하나금융 노조가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한 의혹에 대한 검사 결과와 금감원의 회장 적격성 심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흥식 금감원장은 “하나금융 회장 후보가 결정되면 적격성 검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적격성 검사는 김 회장이 은행법에 따라 은행지주회사(은행을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사)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를 법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이다. 만약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김 회장의 3연임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커진다.

1420호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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