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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배구조 개선 지향점은] 비전·역량 갖춘 CEO 선임이 첫걸음 

 

백우진 경제칼럼니스트
이사회·주주총회의 견제도 필수...소유하되 경영하진 않는 승계방식 고민도

▎일본 도요타는 1937년 창업 이후 현재 CEO인 도요타 아키오까지 CEO 11명이 경영해왔다. 이 가운데 창업자 가문의 후손이 6명이고 전문경영인은 5명이다. 도요타 가문의 후손들은 대부분 도요타에 입사해 일하지만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도태된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도 기업 지배구조 변화의 칼을 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 총수 일가 전횡 방지 및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100대 국정과제’에 넣었다. 이 과제는 ‘더불어 잘 사는 경제’ 과제 26개에 포함됐다. 재벌 소유 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적인 접근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한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작업에 금융위원회도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상장사의 기업 지배구조 공시 단계적 의무화,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한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같은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자율 지침이다. 영국이 2010년 가장 먼저 도입한 데 이어 네덜란드·캐나다·스위스·이탈리아·일본·홍콩·대만 등 10여개 국가가 도입해 운용 중이다. 국내에서는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7개 자산운용사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국민연금은 올해 하반기부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계획이다.

주요 기관투자자, 스튜어드십 코드 속속 도입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 9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본사에서 열린 외국인 기관투자자 대상 회계개혁 설명회에 참석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을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사진:연합뉴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 9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본사에서 열린 외국인 기관투자자 대상 회계개혁 설명회에 참석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을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었다. 최 위원장은 당시 “국민연금이 선도적 역할을 한다면 다른 기관 투자자의 참여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지배구조에 관한 정보를 더욱 쉽게 확인하도록 상장사들의 기업 지배구조 공시제도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도 덧붙였다. 지금은 기업이 거래소에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를 자율적으로 공시하지만, 이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겠다는 말이었다. 거래소는 상장사들의 투자정보 제공 확대와 기업 경영의 투명성 강화 등을 위해 올해 기업 지배구조 공시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참여가 저조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기업 지배구조 공시율이 사실상 4.4%에 그친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업 지배구조의 본질은 정부의 권력구조와 비슷하다. 정부에서 행정부와 입법부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처럼, 기업 지배구조는 CEO를 정점으로 하는 집행 임원진을 이사회·주주총회가 견제해 CEO가 독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업 지배구조는 좁게는 기업 경영자가 이해관계자, 특히 주주의 이익을 위해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감시·통제하는 체계를 가리킨다. 넓게는 기업 경영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견제하는 제도를 갖추는 것은 기본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기업 지배구조에서 가장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이 비전과 역량을 갖춘 CEO를 선임하는 일이다. 이는 선진 글로벌 기업이 오랜 기간에 걸쳐 체계적인 절차를 통해 CEO를 선임하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까닭이다.

기업 지배구조라는 제도에서 왜 CEO 개개인의 역량에 주목해야 하나? 기업의 의사결정은 CEO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는 CEO의 성향이나 역량과 무관하게 통하는 명제다. 적극적인 CEO는 전에 없던 의사결정을 포함해 활발하게 경영판단을 내린다. 소극적인 CEO는 결정을 미루거나 신규 어젠다를 안건으로 올리지 않는다. 탁월한 CEO는 제대로 방향을 잡은 비전을 제시해 동의를 끌어내 추진한다. 반면 비현실적이거나 비용 대비 성과가 떨어지는 과제는 기각한다. 멍청하고 부지런한 CEO는 엉터리 비전을 내걸고 일을 벌여 손실만 키우거나 아무 비전 없이 시간과 인력만 허비하는 소모적인 과제를 늘어놓는다.

기업의 성과와 CEO의 능력 사이 상관관계 높아

기업의 성과와 CEO의 능력은 상관관계가 높고, 기업 경쟁력의 상한은 CEO가 긋는다. 탄탄했던 회사도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 CEO에 맡겨두면 금세 망가진다. 회사의 역량은 CEO의 수준으로 뒷걸음친다. 여기에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도 한몫한다. 어리석은 CEO는 자신보다 현명한 부하를 활용하지 못한다. 그런 CEO는 자신을 둘러싼 자리를 아둔한 임원들로 채운다. 이와 달리 정체됐던 회사를 똑똑한 CEO가 지휘해 역동적으로 성장하게 만든 사례도 많다. 출중한 CEO는 회사 역량의 상한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논의 범위를 넓히면 나라 경제의 활력은 기업이 수익을 원활하고 지속적으로 창출해 투하된 자본에 돌려주느냐에 달려 있고, CEO 집단의 리더십에 크게 달려 있다. 이는 역동적으로 발전한 경제에는 탁월한 CEO들의 활약이 있었다는 여러 사례에서 확인된다. 한국 경제도 창업주 세대가 쌓은 토대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훌륭한 기업 지배구조란 기본적으로 기업이 CEO를 중심으로 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리게끔 하는 체제를 가리킨다. CEO의 판단이 실패로 드러날 경우 CEO를 교체해야 한다. 또 경영권 승계를 가장 적합한 CEO에게 하는 제도와 절차를 갖춰야 한다. 그런 제도와 절차는 정치체제의 선거제도에 해당하고 그만큼 중요하다.

기업 지배구조에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가 경영권 승계다. 한국 대기업에서는 물론이고 중견기업에서도 대부분 기업의 주식, 즉 소유권과 함께 경영권도 물려준다. 세계 주요 기업 가운데 창업자 가문이 대대로 CEO 자리를 물려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창업자 가문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기업에서도 까다로운 자질 평가와 혹독한 교육, 엄격한 심사에 합격한 후손만 CEO로 선임한다. 창업자의 후손이어서가 아니라 경영역량을 인정받아서 CEO가 되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세계 주요 기업은 가족경영을 하더라도 창업자 가문에 적임자가 없을 때에는 가문 밖의 인재를 CEO로 선임한다.

일본 도요타는 1937년 창업 이후 현재 CEO인 도요타 아키오까지 CEO 11명이 경영해왔다. 이 가운데 창업자 가문의 후손이 6명이고 전문경영인은 5명이다. 도요타 가문의 후손들은 대부분 도요타에 입사해 일하지만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도태된다. 후손들은 직급도 일반 직원들과 비슷하게 올라가, 사장이 된 6명의 이전 재직 기간은 평균 31년이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는 창업 이래 현재까지 161년 동안 창업자 가문이 5대에 걸쳐 경영해왔다. 발렌베리 가문은 후손이 부모 도움 없이 해외 유학을 마친 후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경력을 쌓아야만 그룹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발렌베리는 또 가문의 일원이 아닌 인물을 CEO로 선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경영능력은 유전되지 않아

경영능력은 유전되지 않는다. 운동신경과 운동능력은 경영 능력에 비해서는 유전자가 좌우하는 부분이 크다. 그런데도 과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자녀로 올림픽 출전 선수를 뽑는 나라는 없다. 하물며 창업자의 3,4세라는 이유로 경영권을 자동 승계하는 일은 합리적이지 않다. 합리적이지 않을뿐더러 기업과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의 창업자 집안이 제3의 선택으로 고려할 만한 대안이 있다. 소유하고 지배하되 직접 경영하지는 않는 방식이다. 지분과 지배력을 유지하되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고 대신 CEO 선출을 비롯해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훌륭한 CEO를 영입하거나 선임해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꾀하는 일 또한 고도의 경영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박스기사] GE 식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의 명암 - 결국 인물이 제도보다 중요하다


현재 CEO를 중심으로 한 기업 지배구조가 중요하다면, 새로운 CEO를 선임하는 방식도 그만큼 중요하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을 가장 잘 운영한다고 평가된다.

GE 이사회는 산하 ‘경영발전보상위원회’를 통해 2011년 차기 CEO 선정 작업에 착수했다. 제프리 이멜트 당시 CEO의 후계자로 누구를 뽑느냐는 것이었다. 이사회는 차기 CEO의 조건을 정한 후 회사 안팎에서 후보 20여 명을 추렸다. 그리고 후보자들이 사업이나 부서를 이끌어 이룬 성과, 리더십 역량, 상사와 동료·부하들의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아울러 인사배치로 이들에게 새로운 업무를 맡긴 후 역량을 추가로 검증했다. 이사회는 2016년에 최종 후보 4명을 추렸다. 이멜트 CEO는 이들을 수시로 각각 만나 리더십을 지도했다.

이사회와 이멜트 CEO는 지난 6월 존 플래너리를 10대 회장 겸 CEO로 선임했다. 6년 이상 검증을 거쳐 후계자를 낙점한 것이다. 플래너리 CEO는 1987년 GE에 입사해 GE헬스케어·GE인도 등을 이끌었고, GE 역사상 최대 인수·합병이었던 알스톰의 에너지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멜트도 치밀한 경영권 승계 제도에 따라 CEO로 선임됐다. 이멜트의 전임 CEO였던 잭 웰치와 당시 이사회는 1994년 23명의 후보자를 확정한 후 1998년 후보자를 3명으로 압축했다. 이들에게 2년 간 주요 사업부의 대표를 맡겨 능력을 평가했고, 2001년 최종적으로 이멜트를 선택했다.

P&G·IBM·콜게이트파몰리브 등도 GE와 비슷한 경영권 승계 시스템을 운영한다. 젊은 인재를 찾아내 지속적으로 육성·경쟁시키면서 CEO감으로 키운다. 탁월한 인재와 리더가 회사의 성장을 이끌고 문화를 만들어 간다고 믿기 때문에 일찌감치 공을 들이는 것이다.

다만 좋은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은 훌륭한 CEO를 선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제프리 이멜트가 그런 경우를 보여줬다. 이멜트는 GE에서 역량을 인정받아 2001년 CEO에 오른 후 16년 동안 GE호를 혁신으로 이끌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가 CEO에 취임한 2001년 이후 6월 초까지 S&P 500지수는 124%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GE의 주가는 30% 하락했다. 앞서 전임자인 잭 웰치는 20년 간 GE 주가를 30배로 끌어올렸다.

주가가 떨어지자 트라이언펀드매니지먼드 등 주주행동주의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이멜트 퇴진 압력이 거세졌다. 기업은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을 포함해 좋은 지배구조를 갖춰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뛰어난 CEO를 선임해야 한다. 제도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1420호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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