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10대 그룹의 고민과 과제] 잘 나가든 못 나가든 리더십·지배구조·성장동력 걱정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정부의 기업 옥죄기에 오너십 위기감 커져...삼성-SK, LG-포스코 새 경쟁 구도 형성

한국 경제를 이끄는 10대 그룹에 바람 잘 날이 없다. 현재 잘 나가든 못 나가든 다들 오너십 리스크, 지배구조 개편, 미래 성장동력 확보 등의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드라이브가 만만치 않아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이런 가운데 바이오·인공지능·사물인터넷 등 손에 잡힐 만한 미래 신수종 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어 예전과 전혀 다른 경쟁구도까지 형성되고 있다. 그나마 세계 경제가 기지개를 펴고 있어 불행 중 다행이지만 경영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변수가 수두룩해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19세기 후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과 신흥 공업국가로 부상한 독일이 부딪혔다. 영국은 카이로·케이프타운·캘커타를 잇는 3C정책을, 독일은 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드를 철도로 연결하는 3B정책을 펼쳤는데, 두 선이 만나는 서아시아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영국은 아프리카와 인도양 확보가, 독일은 서아시아·중동 확장이 목적이었다. 두 나라의 출발점은 달랐지만 팽창 과정에서 맞닿은 지점에서 만난 것이다.

국내 재계에서도 3~4년 전부터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기업들끼리 새로운 분야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설 땅이 좁아졌다는 뜻이다. 경제 성장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대기업의 고민도 그만큼 깊어지고 있다.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다가 전혀 다른 산업의 기업과 경쟁하는 모습이 곧잘 나타난다.

전자가 주력인 삼성은 신성장 동력으로 바이오·제약을 꼽고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다. 고령화 사회 진입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바이오·제약산업에는 많은 중소·중견 기업이 뛰고 있지만 대기업 중에서는 SK가 터줏대감이다. 의약품 재료 중 석유·화학 제품에서 추출한 것이 많아서다.

SK는 SK이노베이션·SK E&S·SK에너지 등의 자회사를 보유한 석유·화학 부문의 국내 최강자다. 거꾸로 SK는 신성장 동력으로 반도체산업을 꼽고 2011년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세계 1위 삼성전자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전자와 유화로 전혀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한 두 회사가 새로운 전선을 형성한 셈이다.

신사업에서 새로운 경쟁자 출현


새로 진출할 사업 분야는 적은데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기업들에게 2018년은 변곡점이 될 수 있는 해다. 기업의 사업이 최고점 혹은 최저점을 찍었고, 공정거래법 강화 등 제도적 변화도 예상돼서다. 이런 파고를 헤쳐나가야 하는 국내 10대 그룹이 안고 있는 고민과 과제를 살펴봤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자산을 기준으로 매긴 순위로 10대 그룹을 꼽았다. 삼성전자·현대차·SK·LG·롯데·포스코·GS·한화·현대중공업·신세계 등 순이다. 공정위 기준 10위인 농협은 고객의 예금과 대출 등이 자산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어 순위에서 제외했다.

일단 거시 경제적으로 올해는 기업하기 좋은 경영환경이 펼쳐질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월 22일 세계경제전망(WEO)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9%로 기존보다 0.2%포인트 올렸다.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세계 각국의 최고경영자(CEO) 1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57%가 앞으로 1년 간 세계 경제 전망이 밝다고 답했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환율과 유가만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수출 증대를 기대할 만하다. 물론 악재와 변수도 도사리고 있다. 미국의 무역장벽 강화와 금리 인상, 국내 가계부채 증가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업들의 진짜 걱정은 따로 있다. 성장의 한계를 뛰어넘을 신사업 육성과 오너십의 부재, 기업 지배구조 개편 등 대개 내부적인 일이다. 일단 새 먹을거리가 급선무다. 삼성전자나 SK처럼 반도체 덕에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 중인 기업은 올해 실적 그래프가 꺾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대차그룹·현대중공업처럼 부진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반등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꼭지점을 밟고 더 오르든가, 부활에 성공하든가. 각자 처지는 다르지만 새로운 도약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의 본질은 같다.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 분야에서는 삼성과 SK·현대중공업이, 전기차 등 미래형 자동차·부품은 현대차·LG·포스코·SK가 경쟁 구도를 이뤘다. 석유·화학 분야 육성은 롯데·GS·한화가, 저비용항공사(LCC) 진출 등 리테일 서비스는 GS와 신세계가 강화하고 있다. 각 사가 자신의 주력 사업과의 연관성과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내린 판단이지만, 어느 하나 만만한 분야는 없다. SK 관계자는 “반도체와 석유·화학·배터리·AI 등 신수종 분야의 경쟁자가 늘고 있다”며 “이제는 삼성·LG와 경쟁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내부에서 많이 나온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대기업의 신사업은 오너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회장님 프로젝트’인 경우가 많다. 이에 대기업 간에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재벌개혁 예봉 피하려면 지배구조 개선 이어가야


신사업 추진은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과도 맞물려 있다. 경제 민주화를 내건 문재인 정부가 2년차로 접어 들며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랜 기간 소액주주운동을 펼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올해를 재벌개혁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주가 시세 조종 등 불법행위는 물론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를 막고 경영승계에 위·편법성이 있다면 엄벌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해온 순환출자고리도 올해 중으로 정리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불필요한 사업은 정리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의 계열사를 짝짓기 해주거나 상황에 맞게 분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최근 LG CNS가 LG엔시스를 흡수합병 했고, 현대중공업이 현대중공업·현대로보틱스·현대일렉트릭·현대건설기계 등 4개 회사로 나눠 지주회사 체제로 전열을 정비한 점도 이런 맥락에서다. SK·LG·한화·GS 등 발 빠른 기업들은 이미 2~3년 전부터 지주회사로 거의 체제 전환을 마무리했다. 수십년 간 유지한 체제를 버리고 큰 폭의 조직 개편을 단행했기 때문에 당분간 진통이 예상된다. 삼성전자·현대차·신세계 등은 아직 뾰족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롯데의 경우 실적 악화에 따른 상장 지연과 일본 주주들의 반발 등이 골칫거리다. 정부는 올해 지주회사들이 수익구조를 강화해 지배력을 편법적으로 확대하는지 같은 사례가 없는지 조사할 예정이다. 투자회사인 지주회사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수익사업을 무분별하게 늘리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에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기업의 활로 터줘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이에 대해 정부가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의 활로를 터줘야 경영승계를 마무리 하고 지속적인 투자와 고용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문재인 정부에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어 정부는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투자 활성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너가 최순실 사태에 얽혔거나, 불투명한 3세로의 경영권 승계, 형제 간 경영권 다툼 등 리더십의 혼란을 정리해야 하는 점도 중요한 과제다. 리더십의 부재는 자칫 신규 사업 추진과 그룹 지배구조에 개선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작업에 도움을 받는 대가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영향으로 이 부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CES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외연 확대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정농단 사태 탓에 신동빈 롯데 회장도 자유롭지 않다. 특히 신 회장은 ‘형제의 난’과 지주사 전환 등을 문제로 일본인 주주 설득 등 외부 활동이 중요한 시점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상법개정안을 통한 기업 오너들의 이사회 의결 제한과 신사업·일자리 창출 등의 문제가 얽혀 올해는 기업 경영에 큰 혼란이 예상된다”며 “올해 이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20~30년 후 한국 경제를 좌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1421호 (2018.02.12)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