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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나는 투기꾼인가 투자자인가? 

 

서명수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
투기와 ‘주인과 암탉’ … 탐욕의 시장서 생존하려면 장기 투자를

기원 전 6세기 그리스의 노예 이솝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이솝 우화]는 인간의 심리를 동물의 행동에 투영한 우화집이다. 이솝은 정글의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약자가 살아남는 비법을 번득이는 재치로 풀어내고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이솝 우화의 “숲 속의 두 마리 새보다 손 안의 한 마리 새가 낫다”를 인용하며 비효율적 숲 이론을 제시했다. 투자자 행동과 관련이 있는 이솝 우화 이야기를 읽으며 성공 투자의 길을 모색해본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 전광판. 암호화폐를 놓고 투자냐 투기냐의 논란이 뜨겁다. / 사진:연합뉴스
어느 농가의 주인이 암탉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주인은 암탉을 아주 소중히 여겼다. 통통하고 건강한 암탉은 날마다 신선한 달걀을 하나씩 나아 주었다. 암탉이 달걀을 낳으면 주인은 그것으로 맛있는 반찬을 만들었다. 그리고 때로는 달걀을 모았다가 시장에 내다 팔아 다른 물건을 사기도 했다. 암탉이 낳는 달걀은 크고 맛이 좋았기 때문에 특별히 비싼 값에 팔렸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은 문득 욕심이 생겼다. “암탉이 달걀을 하루에 한 번 밖에 낳지 않으니까, 달걀 반찬을 하루 한 번 밖에 먹을 수 없어. 그리고 며칠 동안 모아도 겨우 시장에 내다 팔 정도 밖에 안 되잖아. 암탉이 알을 좀 더 많이 낳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주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드디어 한 가지 방법이 생각났다. “그래 먹이를 두 배로 주면 달걀도 두 배로 낳을 거야.” 주인은 암탉의 먹이를 두 배로 늘렸다. 암탉은 금방 몸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몸이 불어났으니까 알도 많이 낳겠지.” 주인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암탉이 여러 개 알을 낳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지나치게 몸이 불어난 암탉은 비만증에 걸려 하루에 하나씩 낳던 알조차 낳지 않게 됐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선은?

요즘 암호화폐를 놓고 투자냐 투기냐의 논란이 뜨겁다. 투기와 투자는 무엇이 다를까? 투자는 뭔가 정의롭고 좋은 것이고, 투기란 떳떳하지 못하고 나쁜 것이란 느낌이 든다. 투기의 사전적 정의는 시세변동에 따른 차익을 노리는 매매행위다. 다시 말해 값이 오를 것으로 기대해 물건을 사고 단기간에 이득을 남기고 파는 것이다. 실제 그 물건이 필요해서 사는 실수요와는 다르다. 그런데 시장은 실수요만으로 굴러갈까? 그렇지 않다. 실수요만 있으면 사려는 사람이 너무 적어 장사하는 사람이 물건을 많이 팔지 못한다. 그래서 밉지만 투기꾼의 도움도 필요할 때가 있다.

따지고 보면 투자와 투기는 한 혈통이다. ‘투’자 돌림이고 끝 자만 다를 뿐이다. 둘의 고향은 시장이다. 같은 곳에서 같이 놀면서 자랐지만 성격은 판이하다. 투자는 감성과 이성이 균형을 이뤄 차분하고 얌전한 편이다. 그러나 투기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강해 변덕스럽고 때로는 거칠다. 그래서 시장은 이 투기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다.

시장에서 균형은 중요하다. 시장이 이상하게 움직이다가도 결국은 사는 쪽과 파는 쪽이 팽팽한 균형점으로 돌아오도록 돼 있다. 만약 균형점보다 높은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될 경우 공급자는 많이 공급하고 소비자는 적게 소비한다. 이 때문에 물건은 넘쳐나는데, 살 사람이 부족해 결국 공급자는 다시 가격을 내린다. 그렇게 해서 균형점이 회복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균형점보다 가격이 낮으면 공급자는 덜 생산하고 소비자는 더 사려고 하니 가격은 다시 올라간다. 이처럼 낮은 가격에 사고 비싸면 파는 것은 자연스런 투자다.

투기는 반대다. 가격이 올라갈수록 더 소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격은 더 올라간다. 이것이 거품이고, 거품은 언젠가는 ‘펑’하고 터진다. 그러나 거품이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터지고 나서야 ‘아, 그게 거품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인식할 뿐이다. 만약 가격이 떨어지면? 투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부동산이 꼭 그렇다.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올라가면 사람들은 부동산을 사려고 한다. 부동산 가격은 다시 올라간다. 그러면 정부에서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다. 시장엔 매물이 넘쳐나는데, 사려는 사람은 꼬리를 감춘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살린답시고 불쏘시개로 투기 수요를 이용한다. 가격이 올라갈수록 사려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 이것이 투기의 정체다.

투자와 투기는 사람들의 ‘기대’를 먹고 자란다. 가격이 오르리라는 기대가 없으면 투자나 투기나 꿈쩍도 안 한다. 투자는 균형 가격보다 더 떨어졌으니까, 적어도 그 가격을 회복할 때까지 오르리라는 기대 때문에 생긴다. 시장이 정상궤도로 돌아오는 것이므로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투기는 지금까지 올랐으니 앞으로도 오르라는 기대가 부추긴다. 투기는 시장 과열을 빚고 경우에 따라선 참여자 모두를 루저로 만드는 문제아다. 투기가 자라는 토양은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먼저 경제가 잘 돌아가야 한다. 또 시중에 돈이 넉넉하게 풀려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저금리가 이어지는 한 투기는 언제든지 준동할 태세를 갖춘다.

경제가 호황기에 접어들면 사람들은 어디인가 돈을 굴리고 싶어 한다. 그 대상이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암호화폐든 무엇인지는 크게 상관이 없다. 그럴 듯한 미래 전망이나 다른 사람의 성공담 같은 투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암호화폐가 단 며칠 사이 수 배 폭등하면서 힘들이지 않고 큰 돈을 벌어 월급쟁이 때려 쳤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자주 나온다. 누가 적게 일하면서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지 않겠는가. 경기 전망은 장밋빛이고 실탄도 충분하다. 이젠 탐욕에 불을 댕기기만 하면 된다.

탐욕에 흔들리는 투심

그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럴듯하게 들리기만 하면 된다. 이제껏 망설이던 사람들도 ‘사자’ 대열에 올라탄다. 혹시 막차 타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없지 않지만 나만은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면 시장엔 더 많은 돈이 생기고 가격은 폭등한다. 가격이 오르면 오를수록 미래에 대한 전망은 더욱 그럴 듯하게 포장된다. 시장은 이제 ‘폭탄 돌리기’ 게임에 접어든다. 폭탄이 언제 터질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나머지 제때 팔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거래는 계속되고 폭탄은 마지막 투자자의 손에서 터지고 만다. 자기 과신, 헛된 희망, 욕심 등이 어우러지며 시장은 대재앙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 대재앙의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개인들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1929년 대공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시장이 파국을 맞을 때마다 희생양이 된 것은 언제나 개인들이었다. 최근 광풍이 몰아친 암호화폐도 거품이 끼었는지 알 수 없지만, 거품이 꺼진다면 그 피해는 개인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쓸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꿈틀대는 증시에서도 한 순간에 큰 돈을 벌려다 있는 재산마저 탈탈 털리는 투자자가 부지기수다. 시장은 투기의 유혹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이다. 시장 분위기에 휩쓸리다간 유혹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투기에 의해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는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 중 하나는 장기 투자다. 과거 20년 간 코스피 지수 궤적을 그려보면 1997년 외환위기, 2000년대 벤처 버블, 2008년 금융위기 같은 험한 세월을 겪었으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은 조금씩 고점을 경신하며 상승했다. 굵직한 악재가 터져도 최소 3년만 지나면 원래 주가 수준을 회복하며 상승곡선을 그렸다. 과거 지수 움직임이 미래에도 되풀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주식은 심리게임이고 주가를 만들어 가는 것은 군중심리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장기 투자가 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1421호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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