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CEO가 설날을 보내는 방법 

 

이상호 참좋은여행 대표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동요 작가 윤극영이 노랫말과 곡을 쓴 ‘설날’의 첫 소절이다. 우리 명절에 관한 노래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노래가 아닐까 싶은데,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1절에 비해 그다음 소절부터는 가사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 노래 4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리 우리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재미있다. 설날의 넉넉함과 화목함이 노랫말에 따뜻하게 드러난다. 1924년에 만들어진 노래니 거의 100년이 되어 가는데도 작가가 노랫말을 쓸 때 지었을 흐뭇한 미소까지 보이는 것 같다. 설날에는 이렇게 다들 즐겁다. 눈 쌓인 고향 마을 나무 위 까치가 울자 그 밑에 있던 검둥개가 왈왈 짖어대고 그 소리에 놀란 까치가 더욱 시끄럽게 울어대는 풍경.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대표적인 풍경이 설날이다.

모두가 기쁜 설날이지만 예전에 기업을 운영하던 사장님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주당 노동시간이 지금의 두 배를 넘어가던 시절에도 설날과 추석 양대 명절은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급격한 산업화로 헤어져 살던 이산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 날을 직원들이 제대로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장들은 속칭 ‘똥줄’이 탔다. 많든 적든 얼마간의 현금이 든 보너스 봉투를 직원 수대로 준비해야만 했고 거래처에 밀린 대금이라도 있다면 명절이 오기 전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미수금을 받기는 또 얼마나 힘들었나. 몇 번을 부탁하고 찾아가서 받아와야 겨우 보너스 봉투를 채울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 해의 실적이 어찌될지 모르는 연초에 나가는 보너스는 사장의 입장에선 내심 불안하다. 3일 연휴가 귀하던 시절, 납기는 정상적으로 해야만 했으니 명절을 앞두고 들뜬 직원들을 독려하느라 여유를 부릴 틈도 없다. 설 전날 퇴근길 직원들 손에 작은 과일상자 하나씩이라도 쥐어서 보내는 준비도 해야 했다. 그뿐이랴, 새털같이 많은 거래처 담당자 한 명 빼놓지 않고 인사를 다니고 손사래를 치는 담당자 옷깃에 억지로 구두티켓이라도 하나 찔러 넣어 주어야 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50여년 전 작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던 필자 선친의 모습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옛날 사장들은 회사에서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가부장적(家父長的) 기업문화’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지 싶다. 평소 무서웠다가도 설날에는 순해지는 아버지, 명절만큼은 우리 자식들 배불리 먹이고 좋은 옷 입히고 싶은 것이 가장의 마음 아니던가. 고생한 만큼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지 않았을까. 그게 예전 설날을 맞이하는 사장님들의 마음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2018년의 설을 맞이한 CEO의 심정은 좀 다르다. 아주 간단히 표현하면 ‘심심하고 외롭다’. 김영란법 덕분에 값비싼 선물을 고민할 일도 없고, 보너스 봉투를 채워야 하는 수고도 완벽히 전산화된 회계 시스템 덕분에 그저 마우스로 결재만 하면 된다. 예전의 설 보너스가 아버지가 고생하며 베푸는 ‘선물’이었다면, 지금의 보너스는 투명한 회사경영을 기반으로 한 ‘노동자의 권리’가 되었다. 그래서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일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CEO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배려와 경청’이 되어버렸다. 그저 주기만 하고 듣기만 하라는 건데 그 깊은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솔직히 내심 섭섭하기도 하다.

그래도 즐거운 설날이다. 무서웠던 아버지가 순해지고 울보 동생도 울음을 그치는 날. 까치도 즐겁고 검둥개도 즐거운 2018년의 설날이 한반도 전체가 즐거운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422호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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