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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기자의 위헌한 경제(7) 가족 채용 가산점] 국가유공자라도 과도한 가산점 부여는 곤란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종전 판례 뒤집고 2006년 ‘헌법불합치’ 결정 … “당락 비율 좌우할 정도면 평등권 침해”

‘경제정의’가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의 원초적 기준은 법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법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아니, 단순히 합법적인 경제는 정의로운 경제일까. 또는 법에 어긋난 경제활동은 모두 불공정한 행위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모든 법률의 근간이자 잣대가 되는 헌법으로 경제를 짚어봤다. 실제 헌법소원 판례를 통해 개인과 국가가 경제와 법을 의심하고 행동하며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추적했다. ‘위헌(違憲)’한 한국 경제의 모습을 살펴본다.


금융권에 ‘채용비리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채용 비리 의혹으로 사퇴한 후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데 이어 이번에는 KEB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에서 채용 특혜 의혹이 터졌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부터 11개 민간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채용비리 검사 결과, 22건의 비리 정황을 확인해 수사기관에 이첩했다. 이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55명, 국민은행은 20명의 이름이 담긴 특별관리(VIP) 리스트가 발견됐다. 은행장 종손녀, 전 사외이사 자녀, 전·현직 부행장 자녀가 포함돼 채용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한 은행은 아예 내규에 공개채용 필기시험에서 임직원 자녀에 가산점 15%를 부여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해당 은행들은 “사회적 통념상 허용되는 관행이었을 뿐 문제 없다”고 해명한다. 관리 명단이 있지만 적합 인재 선발을 위한 민간회사의 재량이며, 관행적으로 허용되는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금융가에선 민간기업 채용 문제에 정부 당국이 시시콜콜 시비를 거는 것은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간섭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아쉬울 땐 국민이 지불한 공적자금으로 회생하고, 사회적 가치를 위반하거나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불개입을 요청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사회적 계약으로 공개되지 않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약속과 계약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공개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노동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고용세습 논란과도 맞닿아 있다. 전·현직 직원 가족의 직계자녀 등에 공식적으로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의 형태로 우대해 채용을 보장하는 고용세습은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까지 받을 정도로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더욱이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불공정하고 비윤리적인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법원이 조합원 사망시 유족을 고용하도록 강제한 현대자동차 단협 조항에 대해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줘 사회 정의에 배치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나, 고용노동부가 자율개선 조치를 강력히 권고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처럼 직무나 능력과 상관 없는 가족관계에 가산점을 주는 채용방식, 이른바 ‘가족 버프’ 논란이 불거진 것은 민간기업의 일만은 아니다. 이보다 앞서 공무원과 국공립 교원 임용 과정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바로 국가유공자 가산점 문제다. 우리 헌법 32조 6항은 ‘국가유공자·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의 유가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우선적으로 근로의 기회를 부여 받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 일 하다 죽거나 다친 유공자와 가족의 생계 안정을 책임진다는 차원에서다. 이에 따라 국가유공자예우지원법 등 관련 법에 구체적인 근거를 두고 국가유공자 본인 또는 가족에게 공무원과 국공립 교원 임용시험에서 가산점을 줬다.

공무원 채용에서도 논란이 된 ‘가족 버프’


▎2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하나은행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끝낸 검찰 직원들이 압수품을 들고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산점 제도는 오랜 기간 별 탈 없이 운영됐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면서 공무원 시험의 경쟁이 치열해졌고, 일반 응시자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백모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백씨는 7급 검찰사무직 공무원 공채시험을 준비하던 중 국가유공자의 가족이 만점의 10% 수준의 가산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국가유공자 가족에게 너무 큰 혜택을 주는 거 아닌가. 가산점을 받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너무 불공평하다’. 이렇게 생각한 백씨는 2000년 1월 11일 국가유공자 가산점을 명시하고 있는 국가유공자예우법을 대상으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백씨는 “10% 가산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공무담임권이라는 기본권 행사에 중대한 제약을 받게 되고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공무담임권은 국민이 국가나 지자체 기관의 구성원이 돼 공무를 담당할 수 있는 권리다. 헌법 25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누구나 공무원이 될 자격이 있다는 얘기다. 결국 백 씨의 주장은 국가유공자의 근로를 보장하는 헌법 32조와 공무담임권을 명시한 헌법 25조가 충돌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헌법 해석에서 규범이 서로 충돌할 때는 규범조화적 해석이 요구되는데, 10% 가산점은 조화를 벗어난 수준의 자의적 입법”이라고 주장했다.

헌재의 생각은 달랐다. 이듬해인 2001년 2월 22일, 헌재는 백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국가유공자 가산점의 입법 목적은 국가유공자와 유족 등에게 헌법 제 32조가 규정하고 있는 우선적 근로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들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는 것으로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차별의 수준도 크지 않아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봤다. 헌재는 “합격자 중 가산점 대상자 비율 등 통계에 비춰볼 때 가산점제도가 법익균형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국가유공자 가산점은 합헌이라는 결정이었다.

가산점 수혜자 늘고 취업난 심해지면서 불만 증폭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국가유공자의 유족이 묘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국가유공자 가산점은 유족들의 생계를 보전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던 가산점 제도 논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가산점을 받지 못하는 일반 응시생의 불만이 갈수록 커졌기 때문이다. 일단 가산점 대상자가 증가했다. 2002년 이후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와 특수임무 수행자 등이 법 개정을 통해 유공자 범위에 포함됐다. 1990년 17만 명이던 보훈대상자 수는 2002년 66만 명, 2003년 73만 명으로 급증했다. 가산점 혜택을 받은 합격자 비율도 7급 공무원의 경우 2002년 이후 30%를 웃돌았다. 2004년부터는 교원 임용시험에 국가유공자 가산점이 신설됐다. 그 해 중등교원시험에서 응시자 평균 합격률은 7%에 불과한 반면 유공자 자녀들은 19%에 달했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가 많은 전라도의 교원임용시험에서는 합격자의 절반 이상이 가산점 대상자였다.

이에 따라 많은 일반 응시자가 상대적인 불이익을 주장하고 나섰다. 1~2점 차이로 합격 여부가 갈리는 임용시험에서 높은 가산점(1차의 경우 10점)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었다. 2004년 12월 중등교사 임용시험 응시자 등 4300명은 “만점의 10%에 해당하는 10점의 가산점을 국가유공자와 독립유공자, 5.18민주화유공자 자녀에게 주도록 규정한 관련 법률 조항은 일반 국민의 공무담임권 내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청구서에서 “모든 국민이 국가유공자들과 그 자녀들에게 응분의 예우를 해주기를 원하고 있으나 중등교사 임용시험 등에서 일률적으로 만점의 10%에 달하는 과도한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은 원래의 입법 취지를 넘어서서 과잉 효과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결정은 2006년 2월에 나왔다. 불과 5년 전 합헌 결정을 내렸던 헌재는 이례적으로 종전의 결정을 뒤집었다. 헌재는 “가산점의 수혜 대상이 유공자의 가족들까지 확대돼 일반인들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입법 목적을 감안하더라도 일반 응시자들에 대한 차별 효과가 지나치다”고 판시했다. 어느 한쪽에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정도의 혜택을 주는 것은 지나친 차별로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가산점 수혜 대상이 비약적으로 늘고, 공무원시험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 변화상이 반영된 결과였다.

다만 헌재가 국가유공자 가산점의 정당성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가산점제도 자체가 전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고, 그 차별의 효과가 지나치다는 것”이라며 “가산점의 수치를 그 차별 효과가 일반 응시자의 공무담임권을 지나치게 제약하지 않는 범위 내로 낮추는 방법으로 위헌성을 없앨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가 ‘위헌’이 아니라 ‘헌법불합치’로 결론을 내린 이유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법 자체가 아니라 정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니 국회와 정부에서 가산점 비율을 낮추고 수혜 대상 범위도 적정 수준으로 재조정하라는 주문이었다.

헌법불합치 결정 후 가산점 비율 ‘10%→5%’ 축소

결정이 내려지고 6개월 뒤 가산점 제도는 개정됐다. 부여되는 가산점 비율은 기존 과목별로 만점 대비 10%에서 5~10%로 축소됐다. 유공자 본인이나 전몰·순직군경, 4·19 사망자 등 사망한 유공자의 가족에게만 10%, 그 외 유공자의 가족에게는 5%의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기존에 시험 과목 중 4할 미만(100점 만점에 40점 미만)의 득점자에 대해서도 부여해온 가점을 폐지했다. 기존에는 특정 과목에서 4할 미만의 과락이 생겨도 가점 혜택을 받아 4할 이상의 점수를 받으면 합격에 제한을 받지 않았지만 개정 이후 시험과목 중 한 과목이라도 과락 점수를 받으면 합격이 불가능해졌다. 단, 이어진 소송에서 축소된 가산점은 소급적용 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다시 민간기업의 VIP 채용 특혜, 고용세습으로 돌아가보자. 이들은 ‘국가가 채용 과정에서 국가유공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처럼, 우리도 회사에 큰 공이 있는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헌재도 제도 자체의 정당성은 인정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 취지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국가유공자 가산점은 국가의 일로 인해 한 사람이 부상이나 사망한 경우 이를 일회성의 보상이 아닌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시킨다는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그것조차도 과도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런데 논란이 되고 있는 VIP 채용특혜와 고용세습의 수준은 적절한 것일까. 국민적 공감대가 있고 헌법에도 명시된 제도마저도 고민과 토론을 거듭하는 세상에서, 기업의 ‘관행’이 왜 질타를 받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때다.

1422호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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