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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정책 효과 높이는 ‘옆구리 슬쩍 찌르기’ 

 

서명수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
직설적 아닌 우회·친화적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는 교훈의 ‘북풍과 태양’

기원 전 6세기 그리스의 노예 이솝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이솝 우화]는 인간의 심리를 동물의 행동에 투영한 우화집이다. 이솝은 정글의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약자가 살아남는 비법을 번득이는 재치로 풀어내고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이솝 우화의 “숲 속의 두 마리 새보다 손 안의 한 마리 새가 낫다”를 인용하며 비효율적 숲 이론을 제시했다. 투자자 행동과 관련이 있는 이솝 우화 이야기를 읽으며 성공 투자의 길을 모색해본다.


▎사진:© gettyimagesbank
북풍과 태양이 서로 자신의 힘이 더 세다고 우기다가 말다툼을 벌였다. 북풍이 먼저 소리를 쳤다. “그렇다면 누구의 힘이 더 센지 시합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태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북풍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북풍은 주의를 두리번 거리다 길을 가는 나그네를 발견했다. 북풍은 태양을 향해 말했다. “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쪽이 이기는 거야.” 태양이 미소를 지으며 “그래”라고 대답했다. 북풍은 세찬 바람을 잔뜩 몰고 오면서 소리쳤다. “내가 입김을 약간만 불어도 저 사람의 외투를 벗길 수 있을 거야.” 북풍은 나그네를 향해 세찬 바람을 불었다. 나그네는 바람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숙이며 외투의 단추를 꼭꼭 채웠다. 나그네의 외투가 좀체 벗겨지지 않자, 북풍은 더욱 힘을 주면서 입김을 불었다. 그러자 나그네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더욱 단단한 옷을 여몄다. 태양이 미소를 지으며 “자 이제는 내 차례야.” 태양은 처음엔 아주 부드러운 빛을 비추었다. 나그네는 단단히 여미고 있던 외투의 단추를 풀었다. 태양은 다시 뜨거운 열기를 뿜었다. “날씨가 왜 이렇게 변덕스럽지? 조금 전에는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이제는 너무 덥구나.” 잠시 후 나그네는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옷을 모두 벗은 채 강으로 달려가 목욕을 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솝우화의 ‘북풍과 태양’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선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햇볕 정책으로 더 유명해졌다.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특정 행동을 유도할 때엔 직설적이고 물리적인 방법보다 우회적이고 친화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한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 시카고대의 리처드 세일러 교수는 이 이솝우화와 비슷한 개념을 활용해 공공 부문의 문제점을 개선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현대경제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세일러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넛지(Nudge)]라는 저서를 발간해 주목을 받았다. 넛지란 말은 ‘옆구리를 슬쩍 찌르다’라는 의미로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명령하지 않아도,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메커니즘을 슬쩍 바꿔주면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 화장실에 가면 소변기가 지저분해지는 것을 막으려고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놓은 것이 이런 넛지를 활용한 사례다. 이는 어떤 말보다도 강력한 효과를 거두었다. 남자들이 하나같이 파리를 정조준해 일을 보기 때문에 소변이 밖으로 튀지 않아 소변기가 깨끗해진 것이다.

비합리적 인간을 합리적 선택으로 이끄는 '넛지'

이 같은 넛지의 사례처럼 인간이 가진 직관적이고 심리적인 특성을 이용해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학문이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시장 참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관습적이고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면 현실에서는 이성과 합리적인 근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식시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주중 효과’다. 주중효과는 투자자들이 금요일 장이 좋고 월요일 장은 나쁘다고 인식하고 이에 따른 매매를 하는 것을 말한다. 금요일엔 주말을 앞두고 기분이 들떠 주식 구매욕구가 높아지지만,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에는 이와 반대로 투자자들이 생업에 매달려 주가에 신경 쓸 겨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주중효과는 합리성과는 거리가 있다.

이들 효과가 실제로 존재하고, 투자전략으로 가치가 있다면 누구나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투자자가 똑같은 전략을 구사한다면 이익을 남기기 어렵다. 만약 금요일 장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일제히 목요일에 주식을 산다면 주가는 하루 전에 오를 것이다. 그러면 금요일 장이 좋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월요일 장이 나쁘다는 건 주식 매수의 기회라는 얘기도 된다. 모든 투자자가 매수에 가담한다면 월요일 주가는 오히려 뜀박질할 가능성이 크다. 주중효과의 허점이다.

행동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의 ‘합리적인 인간’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을 비합리적 존재로 단정 짓지는 않는다. 경제 주체들이 제한적으로 합리적이며 때론 감정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를 잘 활용하면 경제적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퇴직연금 자동 가입 정책이다. 원래 회사와 개인이 비용을 나눠 부담하는 퇴직연금에 가입하려면 가입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됐다.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따로 돈을 더 내는 것도 아니므로 가입 신청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이 같은 방식으로 퇴직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장을 조사했더니 가입자가 절반도 안 됐다. 하지만 퇴직연금 가입 순서를 슬그머니 바꿨더니 결과가 딴판이었다. 본래 근로자가 먼저 가입 신청을 해야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있던 것을 일단 퇴직연금에 먼저 가입하게 한 다음 원하는 사람만 탈퇴신청을 받아주기로 한 것이다. 단순히 의사결정 순서만 달리 했을 뿐인데, 효과는 탁월했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급증한 것이다.

미국의 퇴직연금제도가 이 같은 자동 가입 정책으로 활성화하자 우리나라 정부도 퇴직자들이 퇴직금을 연금으로 수령하게끔 제도에 변화를 가했다. 2012년 7월 이전까지만 해도 퇴직자는 먼저 퇴직금을 일시에 현금으로 수령하고, 연금으로 받고 싶은 사람만 ‘개인형퇴직계좌(IRA)’에 다시 이체하게 했다. 하지만 이미 손에 쥔 퇴직금을 다시 내놓으려는 퇴직자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의사결정 순서를 바꿨다. 먼저 퇴직금을 ‘개인형퇴직연금(IRP)’에 이체하고 필요한 사람만 해지해서 찾아 쓰게 했다.

그러나 넛지 효과는 미국에서처럼 탁월하지 못했다. 이번엔 퇴직금을 연금으로 수령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원금 보장을 고집하는 가입자의 행태가 문제가 됐다. 금융투자업계 및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적립금 167조원이 넘는 퇴직연금의 80% 이상이 원금 보장형이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수익을 위해 실적배당형 상품과 원리금 보장 상품에 적절히 분산 투자해야 옳지만 현실은 대부분이 예적금 같은 원금 보장 상품에 쏠려 있는 것이다. 원금 손실에 대한 불안한 심리 탓이다. 문제는 원리금 보장형 상품의 수익률은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금융사들이 아무리 가입자 교육을 확대하고 마케팅을 강화해도 10년 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공은 정책으로 넘어갔다.

원금 보장형에만 몰리는 퇴직연금 가입자 돌릴 묘수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디폴트옵션 제도는 가입자를 합리적이지 않은 주체로 본다. 디폴트옵션은 근로자가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퇴직연금 사업자가 미리 짜놓은 포트폴리오대로 자동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대안은 수년 간 논의를 거쳤으나 아직 햇빛을 못 보고 있다. 가입자들 만큼 정책당국도 원금 손실을 불안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금에만 매달리다간 가입자의 노후는 재정적으로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노후자금은 주식이나 펀드 같은 투자상품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손실은 죽기보다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 탓에 퇴직연금의 수익률 끌어올리려는 시도는 겉돌 가능성이 크다. 태양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나그네의 옷을 벗기듯이 가입자 스스로 퇴직연금의 취지를 살리도록 유도하는 묘수는 무엇일까.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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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호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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