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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경제는 북한 경제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까] 공산 정권 유지하면서 경제도 살려 

 

아바나=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관광업 민영화로 외화 수입 늘어 … 개혁·개방 거부한 북한과 딴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2016년 11월 28일 북한 주재 쿠바대사관을 방문해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서거에 조의를 표했다. / 사진:노동신문
북한이 대한민국 정부의 중개로 미국과 대화에 나서면서 북한 경제의 향방이 주목된다. 북한이 경제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개혁과 개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은 자국의 경제난이 미국의 경제 봉쇄와 유엔의 경제 제재 때문이라는 논리를 관영 매체를 통해 펼쳐왔다. 이 때문에 핵과 미사일 개발을 둘러싼 국제사회와의 갈등이 개선 또는 완화될 경우 어떻게든 경제 부문의 개혁과 개방이 필요하다.

북한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러시아 혁명의 유물’로 통한다. 현재 헌법에 일당독재 등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명시한 공산주의 국가는 중국(1949년)·쿠바(1961년)·라오스(1975년)·베트남(1976년) 등 4개국뿐이다. 모두 내전과 게릴라전, 쿠데타 등 무력으로 집권한 것이 특징이며 경제적으로는 사유재산을 없애고 국가가 주도하는 중앙집중 계획 경제 체제를 유지해왔다.

중국 방식의 북한 개혁 가능성 작아


현재 사회주의 세력이 선거로 집권해 국정을 운영하는 나라는 중남미에 4개국이 더 있긴 하다. 베네수엘라(1999년)·도미니카(2000년)·볼리비아(2006년)·니카라과(2007년) 등이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집권자가 장기 집권을 획책하는 등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고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선거로 정권이 바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1948년 공산국가를 수립한 북한은 여러모로 독특하지만 결국은 일당독재에 여전히 신뢰할 수 없는 중앙집중 계획경제를 고집한다. 2009년 개정한 헌법에서 ‘공산주의’를 삭제하고 김씨 일가 사상으로 대체했다. 정치적으로는 일당독재 체제 국가다. 이 때문에 북한은 ‘유사 공산국가’로 불린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사유재산을 없애고 국가가 주도하는 중앙 집중 계획경제 체제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생산 수단을 국가가 쥐고 있는데도 배급제 등 주민의 기초적인 생활을 정부가 보장하지 않는다. 배급제는 평양 중심의 특권층에게만 적용될 뿐이다. 이미 역사적으로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된 이런 제도로는 북한의 경제난 해소는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부터 ‘인민생활 향상’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하지만 경제 개방과 개혁을 통한 주민들의 생활 향상은 북한 정권의 부수적인 목표일뿐이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정권 유지다. 이에 따라 북한 정권의 경제 개혁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 북한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란 이름으로 경제를 사실상 시장에 맡기는 중국 방식의 개혁을 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로 인한 빈부 격차 등의 사회 문제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에 앞으로 정치적으로는 일당독재 정권은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개혁해 효율을 높이는 ‘베트남식 개혁’을 할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베트남은 외자 유치를 통해 제조업 등 기간 산업을 유치해 경제활력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현재 베트남에서 외자 기업의 주류는 한국 기업이다. 그중에서도 삼성전자의 역할이 크다. 삼성 베트남 공장이 베트남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수도 하노이의 삼성전자 공장에는 10만 명 이상의 베트남인이 정규직으로 일한다. 이 공장에서 삼성전자 전체 스마트포 물량의 40%를 생산한다. LG전자는 2년 전 북부 항구도시 하이퐁에 가전 생산단지를 건설했다. LG디스플레이도 베트남에 차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모듈 생산 공장을 배치하고 있다. 포스코는 포스코베트남홀딩스라는 법인을 세우고 철강·건설·무역·에너지 등 전방위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신발제조업체 태광실업, 의류 생산업체인 팬코 등 중소기업도 베트남을 생산기지로 활용한다. 이런 경제 의존은 북한 정권에겐 비수가 될 수 있다.

2013년부터 소규모 자영업 허용


▎쿠바 아바나 혁명광장의 내무부 청사. 체 게바라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과 비슷하게 일당독재 정권을 유지하면서도 주로 외국인 관광객과 해외 거주 주민의 송금으로 경제 활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쿠바는 북한 정권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유력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후 마식령 스키장을 비롯한 레저시설 건설에 집착한 것도 따지고 보면 ‘업적 과시용 전시형 행정’이나 ‘북한 주민을 위한 시설 건설’로 보기 힘들다. 바로 쿠바처럼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들여 외화를 확보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물론 핵과 미사일 개발로 국제사회와 관계가 악화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거의 전 세계가 북한을 대상으로 경제 제재에 들어가면서 이런 시도는 겉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국과의 대화가 순조롭게 풀릴 경우 언제라도 쿠바식 개혁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쿠바는 중남미 국가 중에서는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순조로운 편이다. 북한보다는 사정이 한참 좋다. 쿠바와 북한을 비교해보자.

인구에서 북한은 2549만 명으로 세계 52위를 차지한다. 쿠바는 1124만 명으로 80위다. 국내총생산(GDP)에선 쿠바가 오히려 북한보다 5배 이상 많다. 2016년 유엔 통계기준으로 북한이 174억 달러로 113위인데 비해 쿠바는 896억 달러로 65위다. 북한이 인구가 2배나 되다 보니 1인당 GDP에선 격차가 더욱 심하다. 북한의 1인당 GDP는 665달러로 세계 최하위권인 176위인데 비해 쿠바는 7815달러로 77위에 이른다. 쿠바가 북한보다 11.8배나 많다.

북한과 쿠바는 사실 체제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21세기 지구상에 남은, 드문 사회주의 일당독재 국가라는 점이 그렇다. 중앙계획 경제체제를 운용하다 일부 포기한 점도 닮았다. 쿠바는 2010년 공식적으로 포기를 선언했다. 북한은 중공업 등 큰 기업소만 남기고 작은 업종은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생산수단 대부분을 국유화했다가 도저히 운용이 되지 않고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이를 일부 포기한 점도 비슷하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만든 장마당을 실질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쿠바는 2013년부터 소규모 자영업을 허용하고 있다. 국외 탈출자 송금이 주요 외화 수입원인 것도 서로 닮아가고 있다. 쿠바는 추정 주체에 따라 50억~60억 달러에서 30억~40억 달러로 추정된다. 1959년 1월 1일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미국 등으로 떠난 망명객이 가족 친지에 보내는 송금에 쿠바 경제가 상당수 의존한다는 점은 아이러니컬하다. 북한도 탈북자나 대한민국의 가족이 음성적으로 보내는 송금이 경제의 윤활유 구실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아가는 것도 두 나라가 마찬가지다. 쿠바는 2008년 전 국민에게 휴대전화 이용을 허가했다. 그전에는 공무원이나 특수 직종 종사자들은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북한은 2008년 이집트 통신회사의 지원을 받아 보급을 시작했으나 지금은 자체 회사까지 두고 있다.

의료와 교육이 원칙적으로 무상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원칙적’이라는 표현이 필요하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보건의료 부문의 시설과 자재가 열악해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약품 등을 개인이 구매해야 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쿠바는 그래도 약품을 상당량 생산하고 해외 수입도 하는 데 비해 북한은 의약품 공급이 특권층에서만 제대로 공급되고 있는 점은 다르다.

북한과 쿠바는 다른 부분을 살펴보면 앞으로 북한이 갈 길을 짐작해볼 수 있다. 먼저 북한이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데 비해 쿠바는 이러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 적이 없다. 다만 해외 분쟁 지역에 군인과 군의관을 대거 파견해 서방 국가에 맞선 적은 많다. 군인 파병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부터 관광 인프라 대대적 개발


▎쿠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올드카. 1959년 혁명 전 미국에서 수입된 뷰익·포드 등 자동차다. 미국에 친척이 있는 사람은 자금 지원을 받고 수리해 택시로 쓴다.
눈으로 극명한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 해외 항공노선이다. 쿠바는 2015년 7월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이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수도 아바나의 호세마르티 국제공항 전광판을 보니 한 화면에 표시된 13편의 출발편 중 7편이 마이애미·애틀랜타·샬럿(노스캐롤라이나주) 등 미국 행이었다. 델타항공·아메리칸항공 등 미국 항공사가 운항하고 있었다. 캐나다와 유럽, 중남미 항공사들도 쿠바에 취항하고 있었다. 이와 달리 북한은 중국에만 정기편을 상호 운항할 뿐이다.

눈여겨볼 점은 해외 관광객이다. 숫자 차이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쿠바 통계정보청(ONEI)에 따르면 2016년 이 나라를 찾은 외국인은 400만 명에 이른다. 캐나다인과 해외 거주 쿠바인이 가장 많다. 그 뒤로 미국인·독일인·프랑스인·영국인이 따르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초 찾았던 쿠바에는 국영 관광회사의 트럭이 수도 아바나의 도심 거리는 물론 중소도시에서도 흔하게 찾을 수 있었다. 남북 양쪽으로 바다에 접한 바라데로 반도에는 외국인 전용 국영 리조트와 호텔이 눈에 띄는 것만 수십 개나 됐다. 비수기에만 쿠바인의 출입이 허용된다고 한다. 관광으로 외화를 벌기 위한 쿠바 정부의 고육책이다. 스페인 등 해외 투자도 활발하다. 그나마 북한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심한 감시에 불편한 인프라를 감수해야 한다. 웜비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외부에서는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체포돼 감옥에 가는 불상사도 겪을 수 있다.

쿠바를 둘러보니 외국인 관광객이 열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국영 호텔 로비에서도 저녁마다 재즈와 라틴음악, 그리고 ‘관타나메라’ 같은 민속 음악에 춤 공연이 이어졌다. 거리나 관광식당, 관광지에선 기타 등을 든 마리아치(악사)가 빠지지 않았다. 아바나 시내에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같은 재즈 클럽의 음악과 춤 공연이 줄을 이었다. 라틴 민족 특유의 쾌활함과 흥취, 카리브 해의 매혹적인 자연이 어우러졌다. 아직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유지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갖는 묘한 신비감도 손님을 부르는 데 한몫했다. 체 게바라의 사진이 인쇄된 티셔츠는 기본 관광 아이템이었다. 거리에는 1959년 쿠바 공산혁명 이전에 수입됐던 뷰익·쉐보레·포드 등 미국산 자동차가 관광 상품인 ‘올드카’로 변해 외국인을 태우고 질주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혁명 이후에 들어온 소련제 라다와 한국의 현대·기아차가 누비고 다녔다.

과거 설탕 수출로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지은 고풍스러운 스페인 식민지풍 건물이 고스란히 보존됐다는 점도 외국인에겐 매력의 하나다. 미국이 건설했다는 아바나의 방파제인 말레콘에 서면 탁 트인 바다를 가슴에 담을 수 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말레콘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수평선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미 해군 잠수함을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바나에서 미국까지는 플로리다 만을 사이에 두고 170km 정도 떨어졌다. 밤이 되면 맑은 하늘에선 별이 쏟아졌다. 은하수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쿠바의 겨울은 비가 거의 없는 건기라 하늘이 더욱 맑았다.

쿠바의 보물 중 하나가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다.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만년을 보내다 귀국해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살았던 저택이 아바나 서부에 남아서 박물관으로 개조돼 손님을 맞았다. 인근 바닷가 마을에는 그가 즐겨 마셨다는 모히토를 파는 카페가 손님을 맞았다. 모히토는 사탕수수로 만든 럼주에 박하잎·라임주스·소다수·설탕을 넣어 만든 아바나 특산 칵테일이다. 이 바닷가 마을은 [노인과 바다]의 영감을 준 곳이기도 하다. 항상 웃고 밝은 표정의 쿠바인이야말로 이방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대의 매력이다. 바닷가재를 서구국가의 반값도 안 되는 미화 10~20달러면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즐거움이었다.

이처럼 매력이 넘치는 쿠바는 관광을 통해 매년 20억~25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쿠바를 찾은 한국인이 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 관광객을 중심으로 한 수천 명 외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찾지 않고 있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개발하기에 따라 북한이 관광으로 상당한 외화를 벌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관광 인프라다. 쿠바는 소련이 무너지고 경제난에 시달리던 1990년대부터 호텔·리조트 등 관광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개발했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도움으로 금강산 관광지구를 개발한 데 이어 최근 마식령 스키장 등을 개발했을 뿐이다.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북한은 폐쇄국가이기 때문에 주민이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쿠바에선 외국인에게 정부 비판까지 할 수 있었다. 쿠바는 2013년 1월 출국허가제를 폐지하면서 모든 국민이 여권만 있으면 해외 여행을 할 수 있다. 해외를 다녀온 쿠바인은 국내 관광 진흥을 위한 아이디어와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특권층·외교관·외화벌이 일꾼을 제외하곤 해외 여행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국경지대 주민이 무역 등을 위해 중국 방문이 가능한 정도다.

쿠바 주민, 외국인에게 자국 정부 비판


▎아바나 시내에서 진행되는 부에나비스타 재즈 공연. 춤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쿠바 최대의 관광상품이다. / 사진:채인택 기자
이처럼 소련이 무너진 후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던 북한과 쿠바는 일당독재의 공산체제는 유지했지만 경제난을 푸는 방식은 달랐다. 북한은 개혁과 개방을 거부했지만 쿠바는 변신에 도전했다. 그 결과는 두 나라 간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모든 수치가 북한이 쿠바를 벤치마킹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대비할 필요성이 있다. 이는 어쩌면 대한민국에도 기회일 수가 있다.

1426호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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