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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가 만난 사람 (1) 서부석 쌤소나이트코리아 대표] 국경 없는 시대 ‘글로컬 전략’ 세우라 

 

이필재
샤넬·발리·프라다에서 회계, 판매·마케팅, 영업 두루 거쳐 ... 14년 경력의 장수 CEO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의 국내 첫 여행 원스톱 솔루션 매장인 쌤소나이트의 Life’s @ Journey 스토어. 서부석 대표가 이곳 입구의 비행기 동체 모양 디지털 디스플레이에서 포즈를 취했다 / 사진:사진 박종근 기자
“패션 기업은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글로컬라이제이션은 글로벌화와 현지화(localization)를 조합한 말이죠. 국경이 없는 시대 국내 기업은 외국에 진출할 때, 외국 기업은 국내 시장에 진입할 때 현지화를 병행해야 합니다.” 서부석(50) 쌤소나이트코리아 대표는 그래서 국내에서 쌤소나이트 오리지널 외에 쌤소나이트 레드라는 브랜드를 2009년 선보였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여행가방 메이커가 백팩을 만들어 판 것이다. 이와 더불어 TV홈쇼핑에도 진출, 유통 채널을 다각화했다. 쌤소나이트 레드 출시로 가방의 카테고리를 확장했고, TV홈쇼핑에 진출해 한국 고객의 요구에 맞췄다. 글로컬 전략이다. 홈쇼핑에선 단품으로 팔리는 여행가방을 세트로 팔았다. 그 과정에서 “여행가방 장만은 목적 구매라 세트로는 안 산다”는 내부의 인식,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지켜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싸워야 했다.

출시 의사결정이 이뤄진 후 4개월 만에 선보인 쌤소나이트 레드는 그 후 유럽 시장까지 진출했다. 대기업이라면 새 브랜드를 내놓기 전 1년 이상 스터디를 했을 것이다. TV홈쇼핑에서 쌤소나이트의 시장점유율은 한때 95%에 달했다. 홈쇼핑 시장 진입은 멀티 채널 전략에 따른 것이다. 드러그스토어 체인인 올리브영 입점을 현재 고민 중이다. 아직 들어가지 않은 건 사실상 편의점뿐이다.

서 대표는 대학 졸업 후 패션 업계에 진출한 지 11년 만에 서른일곱의 나이에 CEO 자리에 올랐다. 쌤소나이트에서 일하기 전 샤넬·발리·프라다를 거쳤다. 이들 회사에서 회계, 판매·마케팅, MD(상품기획), 점포 디자인, 영업을 두루 섭렵했다. 제너럴리스트로 성장한 그가 2005년 4월 1일 프라다 부장에서 쌤소나이트코리아 대표로 옮겼을 때 지인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내자 사람들이 ‘오늘은 만우절’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2014~2016년엔 쌤소나이트 아시아 사장을 지냈다.

“명품 회사에서 일할 때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좀 우습게 봤습니다. 걸핏하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통에 자존심이 상했어요. 그래서 10년 안에 사장이 되겠다는 꿈을 꿨죠. 모든 결정을 글로벌 본사가 하고 로컬에서는 집행만 하는 사업 방식도 수긍하기 어려웠어요. 무슨 제안을 하면 본사에서 브랜드 이미지와 안 맞는다, 너무 로컬스럽다고 했죠. 바로 로컬스러운 게 답인데 말이죠. 글로벌 차원에서 이미지가 똑같아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입니다.”

2005년 쌤소나이트에 입성하면서 그는 연간 300억원 수준인 매출액을 10배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매출액은 당시의 8배 수준인 2390억원. 그는 “10배 수준이 다 돼 가니 할 일을 다 한 셈이다”고 말했다. 쌤소나이트는 1910년 설립된 미국의 여행가방 전문 기업이다. 창립 100년이 넘은 이 회사는 국내에서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리뽀, 하트만, 투미, 하이시에라 등 10개 브랜드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다(多)브랜드 전략은 위험을 분산시키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

4개월 만에 새 브랜드를 내놓느라 이런 저런 시행착오도 겪었겠습니다.

“당연히 겪었죠. 브랜드 포지셔닝이나 마케팅에 문제가 있었을 때도 있고 제품 자체가 잘못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구성원들에게 내성과 문제 해결 능력도 생깁니다. 어쨌거나 남들과 차별화된 혁신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여행가방 회사가 백팩을 만드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

“여행가방은 테러, 사스, 오일 쇼크, 환율 변동 같은 외부 환경 요인에 취약합니다.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매출 변동이 극심해요. 장기 비전에 대해 고민하다 ‘왜 우리는 여행가방만 팔아야 하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죠. 때마침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책 대신 스마트폰을 많이 들여다보는데 손이 자유로워지려면 백팩이 필요하겠더라고요. 레드는 상당히 글로벌화돼 매출이 계속 늘어날 겁니다.”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사회인 일본은 볼륨감 있는 백팩은 잘 팔리지 않는다. 섬세한 현지화가 필요한 까닭이다.

글로벌 기업의 로컬 CEO로서의 고민이 뭡니까?

“로컬 시장에서의 매출 실적과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간의 밸런스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겁니다. 매출 실적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떨어뜨려서는 안 되죠. 온라인에서 팔리는 여행가방 브랜드가 170개에 달합니다. 어떤 제품은 가격이 쌤소나이트 저가 브랜드의 절반도 안 돼요. 경쟁은 치열해 졌고 시장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으로 가방공장 국내로 U턴할 것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패션산업에 어떻게 작용할 거로 보나요?

“장차 브랜드 론칭도 인공지능(AI)이 하게 될 겁니다. 3차원(D) 프린팅이 활짝 꽃피우면 여행가방도 맞춤으로 제작해 일주일이면 배송할 수 있어요. 꿈 같은 얘기죠. 저는 계속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그때가 되면 고임금 탓에 중국과 동남아로 이전한 가방공장도 국내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언젠가 국내에 가방공장을 설립하는 그런 꿈도 꿉니다.”

쌤소나이트 레드가 짧은 기간에 연 매출액 500억원에 이르는 효자로 성장한 건 한류 스타를 모델로 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송중기, ‘별에서 온 그대’를 찍기 전의 김수현, 이민호·김우빈·이종석을 이들이 뜨기 전에 3분의 1 수준의 '몸값'으로 모델로 썼다. 이 일로 그는 “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리지 않느냐”는 소리를 들었다. 여행가방 이미지에 올드 브랜드라는 인상이 강한 쌤소나이트는 레드를 통해 젊은 고객에게 다가갔다.

“남들 하는 대로 해서는 늘 뒤쫓아갈 수밖에 없어요. 한류스타를 모델로 쓴 TV 광고를 하기 위해 본사를 설득하는 데 무려 7년이 걸렸습니다. 명품 브랜드 중 한국에서 TV 광고를 하는 데가 없다는 것이 반대 논리였습니다.”

그는 “연예인 모델을 기용하는 스타 마케팅은 한계에 달했다”고 말했다. PPL(product placement)도 이제 잘 안 먹힌다. 소비자들이 변한 것이다. 고객이 또래나 동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소셜미디어의 중요성이 커졌다. 중동까지 담당하는 아시아 사장을 맡으면서 그는 중국·일본 법인 등에 레드 같은 자체 제품을 개발할 것을 주문했다. 기존 제품을 판매만 하다 디자인은 물론 생산까지 하는 것에 대해 이들 법인의 저항이 심했다. 주저하는 중국 법인 사장을 그는 “모든 브랜드의 생산기지가 중국인데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결국 이들 나라도 그의 글로컬 전략을 받아들였다.

“비즈니스의 시작과 끝은 소비자를 제대로 이해한 후 이를 바탕으로 혁신 전략을 세워 빨리 실행에 옮기는 겁니다. 스피드와 혁신이 키워드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성공 스토리를 다른 나라와 공유해야 합니다.”

중국 사막에 나무 심는 CEO


▎사진:사진 박종근 기자
쌤소나이트 코리아는 사단법인 미래숲과 손잡고 중국 내몽골 쿠부치사막에 나무를 심는다. 사막화를 막는 한편 황사를 차단하는 방풍림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쌤소나이트로서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이 사막은 부근에 황하의 지류가, 사막 밑엔 지하수가 흐른다. 그래서 1m만 파면 사막이지만 젖은 모래가 나온다. 그 덕에 적합한 수종을 골라 심고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하면 평균 80%가 생존한다고 한다. 이 사막 동쪽에 남북으로 16㎞, 폭 0.6㎞의 방풍림(녹색장성)이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 한·중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참여한다. 10억 그루의 나무를 심으려 하는데 지금까지 약 1000만 그루를 심었다. 이 가운데 900만 그루가 살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쌤소나이트코리아가 심은 것만 15만8000그루이다.

그가 제안해 이 일은 지금 쌤소나이트 글로벌의 프로젝트가 됐다. 2년 간 설득해 중국 법인도 참여한다. 우리나라에 도달하는 황사량의 37%는 중국 내몽골에서 발생한다. 이 황사의 주요 발생지가 바로 쿠부치사막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사막이다. 쌤소나이트 코리아는 국내에서도 나무를 심는다. 폐자재·쓰레기·오수 위에 만들어진 난지도에 8년째 심고 있다. 나무가 살아 숨 쉬면서 이곳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 이 숲에 토끼와 뱀도 산다. 살아 있는 숲을 볼 때마다 그는 자연의 복원력을 실감한다.

“명품 브랜드가 로컬 시장에서 벌어 기부 조금 하고 본사에 송금하기 바쁘다면 직무 유기하는 겁니다.”

그는 취임 14년째인 장수 CEO이다. 과거 한 인터뷰 때 10년 안에 아시아 사장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9년 만에 그 꿈을 이뤘다. 아시아 사장으로 있는 동안 그는 본사 방침으로 동남아 파트를 맡은 직원을 두 번 해고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한때 ‘덕장’이 되고 싶어 했지만 그 일이 있은 후로 그 꿈은 접었다. 그는 “너무 착한 리더는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더라”고 말했다. 고령의 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근무처인 홍콩에서 주말에만 집에 오는 생활도 부담이 돼 2년 만에 아시아 사장을 그만뒀다. 그의 집 가훈은 ‘착한 일 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勿怠爲善·물태위선)’이다.

그는 ‘즐기면서 일 하자 주의’를 추구한다. 100여 명의 구성원들에게 제안하는 인재상은 ‘PEPSE’이다. 열정(Passion), 재미(Enjoy), 자부심(Pride), 빠른 일 처리(Speed), 실행(Execution)의 머리글자를 땄다. 11년 만에 사장이 된 비결로 그는 70%의 운과 30%의 PEPSE를 꼽는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해 미팅 땐 팀장뿐 아니라 평사원도 참석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회의를 하면 미스커뮤니케이션을 막을 수 있다.

내가 이룬 꿈은 길이 된다

‘인생 문장’이 뭔가요?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 내가 꿈을 이루면 그게 또 누군가의 꿈이 됩니다.”

젊은 세대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요?

“남들이 보통 가는 길을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취업을 앞뒀을 때 4대 대기업과 금융사에 갈 수 있었습니다. ‘카투사 출신에 어학연수도 다녀왔는데 경험 삼아 외국계 기업 취업 면접에 가 보라’는 모교 취업보도실의 권유를 받고 샤넬 면접을 봤습니다. 면접관인 대기업 출신의 관리본부장이 외국계 기업의 장단점에 대해 설명해 줬죠. 대기업 면접처럼 일방적으로 질문을 던지지 않고 양방향 대화를 하시는 그분에게서 뭔가 배울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대기업보다 연봉이 더 적고 제가 원한 마케팅직도 아니었는데 그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저의 직감을 믿었어요. 관리 업무를 하면서 도운 영업 본부장이 아예 영업직으로 직종을 바꿔 도와달라고 해 영업을 하게 됐고요. 산 좋고 물 좋은 여행지가 없듯이 연봉도 높고 ‘워라밸’도 좋은 직장은 거의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마음이 끌리는 분야에서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몇 번 이직을 한 건 보스 때문이었다. 자신의 윤리적 기준으로 수용할 수 없는 문제를 보스가 일으켰을 때 그는 직장을 옮겼다.

“좋은 보스를 여럿 만났지만 그렇지 않은 보스도 저에게는 반면교사였습니다.”

글로벌 본사와 견해차가 있을 때도 이직의 유혹을 받았다. NGO로 옮겨 환경 문제 등 글로벌 이슈를 다루고 싶었다. 그 무렵 점을 봤다. 점쟁이가 “재작년에 20년 대운이 시작돼 장차 그 열매를 거둬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NGO에 가 남의 일자리 빼앗지 말고 많이 벌어 후원하라.”

다음 꿈은 뭡니까?

“예순에 은퇴해 여든까지 20년 간 NGO에 몸담고 봉사하는 겁니다.”

1426호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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