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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의 내부고발자 사례 보니] 내부 폭로 부인하다 더 큰 화 당해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페이스북·도시바·도요고무·대한항공…내부에서 문제 해결하고 외부 신뢰 얻은 도요고무

▎페이스북의 회원정보를 美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캠프에서 이용한 사실을 공익제보한 크리스토퍼 와일리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사진:가디언 인터뷰 영상
끊임없이 오를 줄 알았던 페이스북 주가가 최근 1주일 사이 10% 가까이 급락했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이 3월 17일 페이스북의 회원정보가 수천만 건 이상 도용돼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선 캠프에 전달됐다는 사실을 폭로한 후퐁풍이다. 트럼프 캠프를 위해 일했던 영국의 데이터 분석회사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는 페이스북에 성격테스트 앱을 올렸고, 이를 통해 응답자들의 정치적 성향을 분석해 선거에 활용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폭로는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이 한 게 아니다. 크리스토퍼 와일리라는 28세의 캐나다 국적 전 직원의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기사는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와일리는 뉴욕타임스 등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캠프 사람들은) 선거가 전쟁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런 짓을 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모회사가 미국 국방부·국무부와 계약하는 것을 보고 내부고발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와일리는 미국인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오용한 회사가 국방부와 일을 하는 건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닉슨’ 같은 일이라고도 했다. 닉슨은 불법 도청으로 대통령 직을 사퇴해야 했던 대표적인 내부고발의 대상이다.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 고발자 페이스북 계정 정지

크리스토퍼 와일리는 내부고발 후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와일리는 미국인도 아니고 페이스북 직원도 아니다. 그리고 내부고발을 하기 전 이미 문제의 회사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에서 퇴사했다. 특별하게 불이익을 받을 게 없어 보인다. 와일리는 페이스북 계정에 이어 페이스북 자회사인 인스타그램의 계정도 정지됐다. 언뜻 사소해 보이는 불이익이지만 의미하는 바는 크다. 바로 내부고발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당한 기업은 어떻게든 보복한다는 사실이다. 고작 공짜 소셜미디어 계정 하나 없앤 게 무슨 보복이냐고? 어쩌면 소셜미디어 계정은 젊은 와일리가 지금 가진 것 중 가장 값진 재산일 수도 있다.

국내에서 내부고발은 주로 공공 부문에서 나왔다. 공익신고자보호법도 2011년에야 나왔다. 이 경우에도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개념이 민간 기업에까지 적용되려면 제약 요건이 많다. 더구나 기업의 경우 내부고발자는 어떤 식으로든 조직에 다시 발을 들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내부고발이 나오기 힘들다. 그럼에도 국내 기업에서도 종종 내부고발이 나왔다. 기업의 내부고발자 상당수는 내부고발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서 이를 감행하곤 한다. 보호받기 위해 고발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2014년 12월 불거진 대한항공 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박창진 전 사무장이다. 2014년 12월 5일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 활주로로 향하던 여객기를 한진그룹 회장 장녀인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 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박찬진 당시 사무장을 공항에 내려놓고 예정보다 45분 정도 늦게 출발시킨 사건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견과류 간식 제공을 하던 승무원의 서비스가 매뉴얼에 나와있지 않다며 문제를 일으킨 것에 빗대 해외에서는 ‘땅콩 분노’라고 불렀다. 이 사건이 문제가 된 건 원칙적으론 모회사 회장의 가족이자 항공사 부사장이라고 해서 출발하던 비행기를 되돌릴 수 있느냐는 데 있다. 하지만 국민감정상 승무원·사무장이 다른 승객이 있는 상황에서 모욕을 당하면서 재벌의 갑질 논란이 사회 문제가 됐다. 내부고발은 대한항공과 항공당국이 진상조사를 위해 관계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박창진 전 사무장은 방송사와 실명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대한항공으로부터 거짓 진술을 강요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국토부 조사 과정에서도 털어놨다. 여론이 악화되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박창진 사무장이 회사 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박 전 사무장은 승무원으로 강등됐고 동료들의 따돌림을 호소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월 박 전 사무장이 회사 직원들로부터 2차 피해를 당하고 있으며, 회사가 그에게 적대적인 근무 환경으로 퇴사를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도 내부고발이 과거에 비해 늘고 있다. 2015년 일본 도시바의 회계부정 사건이 대표적이다. 도시바는 창업 140년이 넘은 일본의 대표적 정보기술(IT) 기업이다. 도시바 직원은 2014년 실명으로 2008~2014년 6년 간 반도체 부문의 SOC 사업에서 손실을 봤지만 이를 숨기고 수조원대 이상 이익을 부풀려왔다는 내용의 e메일을 증권거래감시위원회에 보냈다. 일본 금융당국은 곧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지만 2015년 5월 당시 도시바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크게 걱정되는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역효과를 불러왔다. 도시바 직원들은 자사 회계부정 행위를 몇 건 더 금융당국에 고발했다. 경영진의 강압에 실무진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도시바는 결국 대표이사와 사내 등기임원 절반이 사임했고, 주주들로부터 주가하락을 책임지라는 집단소송을 당했으며, 일본 금융청으로부터 73억엔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내부고발에도 부인하던 도시바 경영진 결국 물러나

일본에서는 사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내부통보’라고 하고, 사외에 알리는 것을 ‘내부고발’이라고 구분한다. 일본 도요고무가 데이터를 조작해 성능을 부풀린 사실은 2015년 내부통보를 통해서 밝혀졌다. 도요고무는 건설 내진용 고무의 성능을 조작했고 이 제품을 건물 154채에 납품했다. 회사는 조작 사건이 발생한 지 몇 개월 만에 제품을 회수했다. 데이터 조작에 관여한 임원진은 모두 사임했다. 내부통보가 이뤄진 건 회사 측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내부 규정 준수와 관련한 연수를 실시한 다음 날이다. 도시바는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와 달리 도요고무가 내부적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본 주주 등 투자자들은 이 회사에 오히려 더 큰 신뢰를 보냈다.

내부고발에서 가장 문제되는 게 제보자의 신원 보호 문제다. 기업의 내부고발자는 내부 부정을 파악해야 하는 감사실·협회 등에 제보를 하자마자 신원이 노출되기 일쑤다.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에서 사내 따돌림을 당하던 직원도 2014년 회사와 별개로 감사 역할을 하는 컴플라이언스실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조사결과를 문서로 공개하지 않은 점 등이 합리적이라며 컴플라이언스 실장에 대한 손배청구를 기각했다. 일본 법원은 그만큼 제보자의 신원을 보장하는 데 적극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내부의 문제점이 외부로 퍼지는 게 유리할 리는 없다. 때문에 기업 내부에서 감사 등으로 정당한 문제 제기를 즉각 처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내부고발자가 가장 먼저 찾았던 건 외부가 아닌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감사 부서였다.

1427호 (20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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