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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대가가 건네는 ‘인생 나침반’ 나를 지키는 용기(1)] 실패라는 위대한 단어를 받아들여라 

 

조원경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
실패는 일과 삶의 일부분일 뿐 … 열린 마음으로 모험 감수해야

저성장·양극화·고령화로 대별되는 뉴노멀의 시대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디지털 변혁으로 생산성이 증대되고 있지만 삶이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종착역이 어딘지 모르고 살고 있다. 올바른 ‘나’를 세우고 디지털 세상을 똑바로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은 없을까. 경제·경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들의 가르침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 나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잠재력을 끌어 올려보는 건 어떨까. 나를 방해하는 수많은 유혹에서 나를 지키는 힘도 키워보자. 혼돈의 시대 자아를 재발견하는 여정을 떠나는 이유다.


▎캐롤 바츠 전 야후 CEO.
한 여성이 회한에 가득한 눈으로 창 밖을 본다. 그는 2009년 1월 제리 양의 뒤를 이어 야후의 선장이 됐다. 4년 임기로 계약했지만 중도에 물러났다. 변화하는 환경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였다. 뉴욕타임스는 야후가 종이 매체 이용자를 웹으로 끌어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옮겨가는 이용자는 잡지 못했다고 논평했다. 경쟁자인 구글이나 신생 기업 페이스북이 새 플랫폼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시스템을 개발했지만 야후는 이를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는 분석이었다. 주주총회는 괴로운 일이었다.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수 제의를 뿌리치고 독자 노선을 걸으면서 야후의 주가는 계속 하락했다. 캐롤 바츠가 취임한 후에도 주가는 회복되지 않았다. 주주들은 그를 믿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여성 최고경영자(CEO)중 한 명이라는 찬사를 들어온 그는 전화 한 통으로 해고되는 악몽을 겪었다. CEO로 재직한 지 2년 7개월 만의 일이었다.

2년 7개월 만에 야후 CEO에서 해고

캐롤 바츠는 야후 재임 중 후회되는 일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이사들이 그가 너무 자주 욕을 한다고 했다. 그 역시 동의했다. 예전 직장에서는 14년 동안 그의 그런 리더십이 통했다. 욕도 자주 했지만 성과도 좋았다. 욕설이 회사 배경과 직원 사기와 잘 맞아 떨어졌는지 별 문제는 없었다. 야후에서는 달랐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환갑이 넘은 캐롤 바츠는 중도포기가 아쉽기는 했으나 지나온 날이 다 실패라고 할 수 없기에 담담하게 느꼈다. 그는 그전에 성공한 CEO로 칭송됐고 이번 실패는 그의 인생에 오점을 남길 수 있지만 세상을 살며 모든 게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경영이란 일에 대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일이며, 리더십은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리더십에 대한 그의 정의다. 강력한 리더십 덕분에 그는 포춘지가 뽑은 가장 강력한 CEO 리스트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한다. 위스콘신대 컴퓨터과학과를 나온 그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삶을 바친 인물이고 많은 업적과 성과를 이루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해고 통지에 마음은 아팠지만 마음을 추스르며 위스콘신 교정에서 졸업생을 만나는 행사에 참석하기로 결정한다. 누군가 그를 바라보면서 그가 과도한 성과주의의 피해자가 아니었나 생각하기도 한다. 그는 그전에는 성과를 잘 냈기에 성공하는 CEO로 잘 나갈 수 있었지만 야후에서는 그렇지 못했기에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인생이란 여정에서 우리는 성과주의에 기반한 성공과 실패가 교차되는 길을 수없이 걷게 된다.

그래서일까?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사회가 정의하는 성공이 아닌 자신이 정의하는 성공을 꿈꾸라고 말한다. 성공과 실패에는 수많은 우연이 함께 한다. 쉽게 판단하거나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그래서 생긴다. 누구는 운이 따라서 성공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외양으로 판단하는 한 사람의 생이 성공으로 보여도 개인의 삶의 관점에서는 죽음을 앞두고 후회스러운 일로 가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왜 두려워할까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냉정하게 말한다. 돈이 없을까, 지위를 잃어버릴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타인의 평가와 비웃음’이 싫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성공을 바란다. 성공하지 못해 낙오자가 되었을 때 받는 상처는 자존감을 상실하게 한다. 열등감의 발로이다. 세속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면서도 시기와 질투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절대 가서는 안 될 곳으로 동창회를 든다.

동창회는 절대 가지 말라?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사회가 정의하는 성공이 아닌 자신이 정의하는 성공을 꿈꾸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기 어려운 세상에 존재한다.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가 우리를 규정하는 세상에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제대로 설 수 있기 위해서는 나를 지키는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 성공과 실패를 맛본 한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아가 우리가 그런 용기를 어떻게 키울지 진진하게 고민해보자.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을 보면 직업의 안정성을 굉장히 추구한다.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청년실업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상황에서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최고의 직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젊은이들의 선택을 보고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기업가의 관점에서 보면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비유할 수 있겠다. 쓴소리 잘 하기로 유명한 캐롤 바츠를 한국에 모셔와서 훈계를 한번 들어보면 어떨까? 그는 졸업연설을 하면서 처음부터 학생들에게 잠에서 깨라고 다그친다. 그리고 학생들을 키워준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인사와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전한다.

“나는 오늘 경고장을 가지고 왔어요. 집중하세요. 예순이 훨씬 넘은 실업자이자 전직 최고경영자의 말에서 짠맛이 느껴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경고를 받을 것이나 다행히 운이 좋아요. 내가 여기에 있어서가 아니라 졸업을 하니까요. 수업은 이제 다 끝났어요. 여러분은 삶의 다른 멋진 국면에 진입하게 됩니다.”

그의 도입부는 상당히 시니컬했지만 신선하게도 느껴진다. 도전적인 말로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여러분들은 실제 운이 좋아요. 왜냐고요. 다른 어떤 세대보다 더 재미있고 도전적이고 눈을 크게 떠야 할 세상에 들어서니까요. 물론 신문의 헤드라인에는 일자리를 잡는 게 어렵다고 해요. 어제 저랑 몇 명이 캠퍼스에 이야기를 나누었죠. 일을 아직 못 구했다고 그러더군요. 우리 모두는 경제가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아요. 여러분 중 상당수는 다시 부모님과 살게 될 것입니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지요. 나는 판단을 하지 않을래요. 5년이나 나가 있던 딸이 집에 와서 사는데 부메랑으로 느껴져요. 내 집인데 세상에 TV 쇼 프로그램 선택권을 내 딸이 가지려 해요. 절대 안 되죠.”

그는 자녀의 독립심을 강조한다. 요즘 한국에는 서른이 넘어도 같이 살면서 속칭 부모에 기대는 ‘빨대족’이 넘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부모들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

“부모님들 이제 여러분의 자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마음으로만 그렇게 생각하세요. 자녀들이 여러분에게 상처를 줄지도 몰라요. 독립심을 키우도록 강하게 나가세요. 졸업생 여러분, 나는 1971년에 졸업했는데 여러분들은 내가 좋지 못한 말을 하더라도 귀담아 들으세요. 여러분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이제 목요일 밤은 결코 여러분들이 누렸던 만큼 좋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결코.”

더 재미있고 도전적이고 눈을 크게 떠야

그는 ‘결코’란 말을 5번이나 사용했다. 학생들의 마음이 아려 온다. 매주 목요일 밤은 무도회가 있는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그런 학창시절의 낭만을 뒤로하고 살벌한 생존의 경쟁으로 가야 한다니 서글픈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목요일 밤의 열기를 소중히 간직하세요. 친구들과의 추억도요. 내가 졸업한 1971년으로 돌아가 보죠. 그 때 미국의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어요. 물가는 미친 듯이 상승했고요. 실업률은 당시 20년 간 최고였고요. 동남아시아에서 전쟁이 확대되고 있었어요. 네 맞아요. 그 당시 내가 여기 있을 때 참 많은 이야기가 등장했는데 대부분은 내게 감옥 같이 느껴지는 일이었어요.”

하긴 당시는 경제학자들이 시대의 종말이라는 말을 빈번히 사용했다. 미국 경제의 패권이 끝나고 있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과 유럽이 떠오르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예측은 그렇게 진행됐다. 신문을 보면 미국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당시 나는 여성으로서는 드문 컴퓨터과학이라 불리는 첨단 분야에서 학사학위를 받았어요. 그 분야의 일은 희소했죠. 물론 지금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죠. 1971년 나스닥 거래가 시작된 해입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가 사업을 개시했고요. 인텔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발명한 해기도 하고요. 아, 플로리다에서 디즈니 월드가 개장했네요. 미국이 중국에 대한 수출금지 조치를 푼 해이기도 해요. 낮은 요금의 새로운 장거리 전화 사업도 개시되었고요.”

캐롤 바츠는 그 어려운 시기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또렷하게 기억하며 졸업생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그런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의도는 졸업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여러분들이 과거에서 어떤 희망을 도출하기를 원합니다. 과거의 신문 헤드라인을 보세요. 오늘의 사건이 여러분들의 미래를 형성하는 것이라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일하는 기간은 매우 깁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50년은 일해야 할 첫 세대일 수 있어요. 70살, 80살이 되어도 일할 지도 몰라요. 나쁘지만은 않을 겁니다. 물론 건강 문제, 경제 문제, 다른 걱정거리가 있긴 하지요. 우리가 62살, 65살에 은퇴하는 그런 삶은 여러분에게는 일어나지 않고 그런 일은 과거로 남을 것입니다.”

기술이 발전해 할 일이 없어지는 권태로운 삶을 생각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5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일을 해야 하는 첫 세대라고 하니 졸업생들은 어느 게 진실인지 궁금하다. 그래서 눈이 휘둥그래진다. 노년을 여가를 즐기면서 보내겠다는 생각을 하는 많은 젊은이의 마음이 무겁게 된다. 삶의 무게가 아직은 여린 마음을 가진 젊은이들의 마음에 갑옷같이 느껴진다.

“이런 삶을 짐이라 생각하지 말고 기회로 생각해 보세요. 사실 사람들은 일터로 가서 줄곧 한 직장에서 일하기는 합니다. 이제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게 얼마나 지겨울까요? 그걸 새로운 걸 알고 발견하는 기회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은 이번 여름에 일을 시작할 수도 있고 일자리를 얻는 데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내년에 일을 할 수도 있겠지요. 50년 일한다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과거에는 일을 통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을 이야기 하며 사회적 이동성을 증가시키는 생애 사다리에 대해 사람들이 말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제 일이란 것에서 느끼는 게 달라진 것 같아요. 과거 같으면 여러분이 운이 좋고 근면하다면 여러분은 그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었을 겁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요즈음은 올라갈 사다리가 불안정해요. 대신 직업 피라미드를 그려보시면 밑은 넓으니 기초를 다지는 일은 확 늘어난 느낌이 들 겁니다. 여러분은 예전보다 훨씬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캐롤 바츠는 상당히 현실적인 삶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일생 동안 일을 하면서 하위층에서 중위층으로, 중위층에서 상위층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부모 세대에게 물어 본다. 자식 세대가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증가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말이다. 아니란 대답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대답은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더 비관적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이 어려워지는데 누구나 노력해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사회가 이상향이 되어 점점 멀어 진다면 그건 정말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까? 여하튼 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달라진 환경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3M에 들어갔고, 디지털 장비 업무를 하기도 하고 80년대에 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했어요. 80년대에는 컴퓨터로 서로 대화하는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e메일도 앱도 없었어요. 그 흔한 탁구대도 없었어요. 라운지에 기댈 의자도 없고 참 지루했습니다. 소비자에게 편지를 보내면 답을 얻기 위해서 2주를 기다려야 했어요. 사실 냉랭한 분위기였죠. 그런데 여러분의 삶이 그런 건 아니잖아요. 기업 정보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어요, 일의 세계는 너무 관료적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이런 식으로 움직이고 있지는 않잖아요. 사업가들은 매우 열정적이어서 여러분의 두뇌를,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여러분의 생각을 필요로 합니다.”

누군가는 반문할 수 있다. 부모 세대에는 그런 기회의 사다리가 대학만 졸업하면 넘쳐 났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졸업생들이 도대체 희망이라도 있는 건가요’라고 외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돈도 실력이고 돈이 없으면 부모를 원망하라’는 사람의 이야기와 뭐가 달라요라고 대들 것 같다. 가난한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요즘은 꼰대 소리를 듣는다. 노력해서 안 되는 게 수천 가지다. 세상이 좋아진 것처럼 말하는 당신은 과대망상증 환자 아닌가? 세상은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기회의 폭은 오히려 피라미드 밑처럼 넓은 게 아니다. 학생들이 증오심 가득한 말을 할 수도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던질 질문은 어떻게 여러분들이 그런 기회를 이용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어떤 졸업식도 조언 없이 끝날 수 없습니다. 여기 나의 조언이 있어요. 내 나름대로의 삶을 살면서 얻은 솔직한 조언입니다.”

사회적 네트워크 세계에서 교제의 의미 더욱 중요

캐롤 바츠가 막 이야기 보따리를 풀려 하자 귀가 솔깃해진다. 젊은이들에게 가혹한 세상을 헤쳐 나갈 ‘나를 지키는 용기’가 필요한데 그런 용기를 그가 불어넣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졸업생들은 그녀의 말에 열중한다. 사실 달리 생각하면 세상은 좋아졌고, 하기에 따라 잘할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는 그의 낙관적인 주장도 틀린 것만은 아니다.

“우선, 여러분들은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해요. 열린 사회적 네트워크 세계에서 교제의 의미는 더욱 중요해졌어요. 여러분을 도와주고, 영감과 아이디어도 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세요. 나쁜 네트워크는 여러분을 나락으로 몰고 갑니다. 그리고 소통하고 듣는 방법을 배우세요. 훌륭한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하세요. 트위터 말고요. 그렇게 하다 보면 여러분은 관심 있는 것을, 여러분이 하는 일을, 회사가 하는 것을 잘 선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업이나 결혼이나 우정에서 가장 좋은 길은 소통입니다. 그리고 잘 듣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문제는 포스팅하고 그에 대해 대응하고 반응하는 것이지 가만히 앉아 잘 듣는 연습을 하는 게 아닙니다. ‘잘 듣고 합시다’라는 슬로건은 여러분 인생 모든 곳에 따라다녀야 해요. 여러분 세대는 수용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때가 많아요. 그냥 전달에 주안점을 두는 세대라고 하면 과장일까요. 잘 들어 보세요. 재미있어요. 이제 목요일 밤에 할 일도 그다지 많지 않게 될 건데요. 내가 오토데스크나 야후에 근무할 때 여러 박사들이랑 엔지니어들과 함께 앉아 미래를 함께 논했습니다. 생각하고 듣고 이해하도록 시간을 가져 보세요.”

생각이 강물처럼 넘치는 시대다. 사실 그런 생각은 소비되고 마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우리는 사유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진정 제대로 된 가치에 귀를 기울이고 내 것으로 소화하고 사유하는 시대를 살고 있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생각 없이 하는 일이 많고, 소통과 귀 기울임이 부족한 시대에 우리는 소음과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검색이 넘치지만 사유는 부재한 시대를 살고 있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나의 말도 의심하라”고 말했다. 사유하며, 생각하며 살라는 것이다. 유태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과거를 조사했더니 그는 매우 성실한 인간이었다. 그가 죄를 저지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조직의 명령을 성실하게 따랐을 뿐이었다.

“여러분 일상을 바라보세요. 다양하게 생각하세요, 낯설게 생각하세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세뇌 당한 관습적 사고와 태도를 버리고 열린 눈으로 세상을 크게 바라보세요.”

울림이 있는 캐롤 바츠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데 그의 마지막 이야기가 가슴 뭉클하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습관을 들이며 세상은 달라진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 지름길로 갈 수 있고 기쁨과 평화를 얻을 수도 있다. 열린 마음은 부정보다는 긍정을, 어두움보다는 밝음을, 불행보다는 행복을, 슬픔보다는 기쁨을, 절망보다는 희망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을 택하는 길이다. 열린 마음은 너그러움을 만들고 욕심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만들어준다. 그는 CEO가 될 계획을 인생에서 갖고 있지 않았다. 야후의 CEO가 된 후 해고돼도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은 열린 마음의 열매라고 한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기쁨을 택하고 행복을 맞는 스스로를 지키는 용기이다.

“실패. 그 위대한 단어를 받아들이세요. 실패는 여러분 삶의 한 부분입니다. 실패를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 나라의 가장 위대한 힘은 실리콘밸리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실패는 경험의 신호일 뿐입니다. 실패는 일의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혁신으로 가는 길에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긴 인생에서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실패를 만나게 되어 있어요. 그것을 성공으로 잇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실패를 포용하고 여러분의 페르소나의 일부로 생각하세요. 실패는 여러분을 전진하게 하는 힘입니다. 세상에서 여러분을 기다리는 것에 흥분하세요. 50년이나 일할 사람들에게 시간은 충분합니다. 계획을 많이 세우세요. 50년이란 공간에서 우회전도 좌회전도 해보면서 그 공간을 우정으로 채워보세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계획도 세우시고요. 아이는 삶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일 밖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세요. 삶이 풍부해집니다. 여행도 하고 텃밭일도 해보세요.”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캐롤 바츠는 인생을 살면서 모험이 주는 장점을 이야기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모험이 주는 위험에 눈이 가려져 분별력이 떨어지고, 경제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삶을 직시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안타까워하는 속정이 느껴진다. 이제는 그가 쓴소리를 해도 진정한 울림이 있는 영혼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역사는 뒤를 돌아보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더라도 과거에 머물러서야 되겠는가? 젊은이여, 앞으로 전진하면서 멋진 삶을 일궈 나가자. 누군가가 반대의 목소리를 내도 할 수 없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몫이다. 시대가 암울해도 빛을 보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에게는 모험을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우정을 나누고 실패를 용인하고 기회로 삼는 것이다. 생각이 부재한 가운데 검색만이 풍성한 세상에서 자기만의 온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그런 사람은 흔들리는 세상에서, 긴 삶의 여정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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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9호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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