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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출자 해소 고민 중인 삼성·현대차그룹] 현대차는 오너家 지분 매입 자금 마련 삼성은 금산·보험업법 개정안이 걸림돌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공정위 재벌개혁 데드라인 전후로 순환출자 해소 및 지배구조 개편 작업 나서

정부의 강력한 재벌개혁 의지에 결국 현대자동차그룹과 삼성그룹이 두 손을 들었다. 버틸 만큼 버텼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제시한 자발적 개혁 1차 데드라인을 이틀 앞두고, 삼성그룹은 10일이 지나 순환출자 해소 및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나섰다. 계열사끼리 지분을 돌려가며 보유하는 순환출자는 그동안 재벌개혁의 핵심 대상으로 꼽혔다. 순환출자 덕에 대주주는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이나 삼성그룹 등 재벌 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이 같은 순환출자 해소와 지배구조 개편 등 강력한 재벌개혁 의지를 보였다. 김상조 위원장은 재벌 등 대기업과 잇따라 만나 “스스로 순환출자를 끊고 자발적인 개혁에 나서라”고 주문했고, 올해 3월을 1차 데드라인으로 설정했다. 이후 롯데그룹과 CJ그룹 등이 지주사 전환의 틀을 마련, 순환출자 해소 및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이 1차 데드라인까지 버티다 결국 두 손을 들면서 주요 5대 그룹의 순환출자 해소는 마무리 과정으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삼성그룹, 7개 고리 중 3개 끊어

삼성그룹은 7개의 순환출자 고리 중 3개를 끊었다. 삼성SDI는 4월 10일 삼성물산 지분 2.13%(404만2758주)를 장 마감 후 블록딜(시간외 대량 매매)로 전량 매각했다. 이로써 3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끊겼다. 삼성그룹이 문재인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화답해 순환출자 해소의 닻을 올린 것이다. 남은 순환출자 고리는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물산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물산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물산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물산이다. 이 4개의 순환출자 고리는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갖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각각 2.64%, 1.38%)을 매각하면 끊을 수 있다. 삼성그룹 측은 “순환출자 해소에 대한 의지가 큰 만큼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도 전량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김 위원장이 제시한 데드라인을 이틀 앞둔 3월 28일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연말까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분할·합병해 모비스를 최대주주 아래 지배회사로 두고,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 대주주와 그룹사 간 지분 매입·매각을 통해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주요 순환출자 고리는 ▶현대차→기아차→모비스→현대차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모비스→현대차 ▶현대차→글로비스→모비스→현대차다. 사업구조 개편 작업이 마무리되면 이 순환출자 고리는 모두 소멸된다. 또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이 기아차에 합병 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하는 등 분할합병 이후 모비스 지분을 인수하면 지배구조도 개편할 수 있다. 그동안 시장에서 점쳐온 지주회사 설립 대신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현대차그룹 측은 “10년, 20년 이상 지속가능한 사업 경쟁력 확보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최적의 방안을 고민해왔다”면서 “경영 투명성 제고와 함께 주주 중심의 경영 문화가 한층 더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은 순환출자 고리 4개를 끊어야 하는 삼성그룹이나, 정공법을 택한 현대차그룹 모두 말처럼 그리 쉬운 상황이 아니다. 경영권 승계 등이 걸려 있어 남은 작업은 복잡하고 제약도 많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어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삼성그룹은 순환출자 해소는 물론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할 처지다. 현행 ‘금융산업 구조 개선에 대한 법률(금산법)’에 따르면 대기업 계열 금융사는 비(非)금융회사를 소유할 때 지분 10%를 넘을 수 없다. 그런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삼성전자 지분을 각각 8.2%, 1.4% 보유하고 있다. 두 금융사의 삼성전자 지분을 합하면 9.6% 지만,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끊임없이 소각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10%가 넘을 전망이다. 보험업법 개정안 역시 부담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 보유 기준이 강화돼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대부분 매각해야 한다. 증권 업계는 삼성전기·화재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매각보다 이 작업이 더 복잡하고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가에서 유력하게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기준 초과분 만큼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에 이어 삼성전자의 2대 주주(4.6%)인데, 오너 지분율이 높은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로 자연스레 교체되는 시나리오다. 오너 입장에서는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자금도 충분하다. 삼성물산은 최근 주가가 급등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3.3%가 있고, 현금 3조원(지난해 말 기준)도 보유하고 있다. 또 서울 서초 사옥과 가산동 물류센터 등 알짜 부동산도 갖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 은경완 연구원 등 7명 애널리스트는 공동 작성한 ‘기업 지배구조 시리즈’ 보고서에서 “이 방안은 순환출자 해소와 금산분리 규제 피하기, 삼성전자의 외형 성장 한계 극복 등 여러 측면에서 고려해볼 만한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추가 취득하면 현재 국회에 발의된 지주사법 개정안이 적용될 수도 있다. 개정안은 지주회사 강제 전환 요건을 계열사 장부가가 아닌 시가로 하는 것이 골자다. 삼성물산이 현 상황에서 삼성전자 지분을 더 사면 삼성전자 지분가치가 삼성물산 자산총액을 뛰어넘어 삼성물산은 강제로 지주회사로 전환될 수 있다. 지주회사가 되면 삼성전자 지분율을 20%까지(개정안 통과시 30%) 높여야 한다.

현대차는 건설 계열사 활용 유력

순환출자 해소와 지배구조 개편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한 현대차그룹도 고민이 있다. 대주주 일가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는 것이다. 자금 규모는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 비용 외에 주식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양도소득세까지 포함해 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차그룹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현대모비스를 제외하고 보유 중인 계열사 지분을 모두 매각해도 약 5조5000억원에 그친다.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매각하거나, 대출을 통해 나머지 비용을 충당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완성차(현대차·기아차)에 대한 지배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그래서 증권 업계는 현대차그룹의 건설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을 동원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정 부회장이 엔지니어링 지분 11.72%를 갖고 있는데, 이 회사를 상장시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대글로비스와 기아차, 모비스도 각각 엔지니어링 지분 11.67%, 9.35%, 9.35%를 갖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을 상장하면 약 1조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엔지니어링 상장까지는 1년 이상 걸리는 만큼 현대건설과의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430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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