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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격 당첨자 양산하는 청약제도] 제도 복잡하고 청약시스템도 미비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주택공급규칙만 136차례 개정...지난해 10명 중 1명은 부적격 당첨자

▎지난해 말 경기도 파주시 운정신도시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견본주택을 찾은 예비 청약자가 상담을 받고 있다. / 사진:현대산업개발
#1. 지난해 말 서울의 한 신규 분양 아파트에 청약해 두 자릿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정모(43)씨. 경쟁률이 꽤 높았던 데다 실수요여서 정씨의 기쁨은 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정씨는 해당 건설사로부터 청약 부적격(不適格) 당첨자라는 통보를 받았다. 1순위 청약 자격에 부합하지 않아 당첨이 무효로 돌아간 것이다. 2년 전 부인 명의의 청약통장으로 아파트에 청약해 당첨됐던 사실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당시 정씨 부부는 당첨된 집이 저층인 데다 서향(西向) 이어서 계약을 하지 않았다. 정씨는 “당첨은 됐지만 계약을 하지 않아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과거 5년 이내에 당첨 사실이 있는 세대는 1순위로 청약할 수 없다.

#2. 최근 서울 강남구에서 분양한 한 재건축아파트는 청약 당첨자의 3분의 1가량인 500여 명이 부적격 당첨 의심 통보를 받았다. 이 아파트는 청약 전부터 ‘로또’로 불리며 청약 경쟁률이 최고 90대 1에 이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청약 당첨자 상당수가 유주택이거나 정씨처럼 과거 청약 당첨 사례가 의심돼 소명 과정을 진행 중이다. 이 아파트 시공사 측은 “부적격 의심 통보를 받은 당첨자 상당수는 소명을 통해 의심을 해소하는 등 정상적으로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단순 실수로 부적격 당첨자가 되는 사람 많아


최근 아파트 신규 분양시장에서 청약 부적격 당첨자가 속출하고 있다. 부적격 당첨자는 정상적으로 청약을 진행해 당첨됐지만 계약 전후로 청약 1순위 요건 등에 부합하지 않아 당첨이 취소되는 경우다. 이를 테면 무주택자만 청약할 수 있는 아파트에 유주택자가 청약해 당첨된 후 계약 전에 유주택자임이 밝혀져 당첨이 취소되는 식이다. 속일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부적격 당첨자로 분류돼 당첨이 취소되면 해당 청약통장을 더는 쓸 수 없게 되는 등 불이익이 따른다. 특히 서울 등 일부 지역의 신규 분양 아파트에는 향후 5년 간 1순위로 청약할 수 없게 된다. 문제는 단순 실수로 부적격 당첨자가 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한 대형 건설사 분양 담당 관계자는 “투기 등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부정하게 청약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부적격 당첨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단순 실수가 많다”고 말했다.

청약 부적격 당첨자는 과거에도 있었다. 대개 서류 작성 때 잘못 적는 등 단순한 실수로 발생했는데, 그 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이 비중이 적게는 10%, 많게는 20%대까지 올라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처럼 부적격 당첨자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한 건 2016년 말부터다. 당시 정부는 아파트 분양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부동산 대책(11·3 대책)을 통해 청약자격을 대폭 강화했다. 또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 세종시 등 전국 37곳을 ‘청약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했다. 청약조정대상지역에서는 세대주가 아니면 1순위로 청약을 할 수 없고,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한 다주택자와 최근 5년 이내에 청약 당첨 사실이 있는 세대도 1순위로 청약할 수 없다. 청약자격이 까다로워진 이후 5% 정도이던 부적격 당첨자 비율은 평균 20%까지 치솟았다. 그해 말 서울 서초동에 나온 신반포 리오센트는 청약 당첨자 중 22%가 부적격 당첨자였다. 이 아파트에 앞서 나온 서울 송파구 잠실올림픽 아이파크 역시 부적격자가 14%였다. 이처럼 11·3 대책 이후 부적격 당첨자가 급등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20%이던 예비당첨자 비율을 30%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민홍철 의원(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청약 부적격자는 2만1804명으로 전체 공급 물량 23만1404가구의 9.4%에 이른다. 청약 가점 오류, 세대주 여부, 무주택 여부, 지역 위반 등 단순 실수로 인한 부적격 당첨자가 1만4437명으로 전체의 66% 이상을 차지했다. 이어 과거 5년 이내 당첨 사실 등 재당첨 제한이 5646건, 세대 내 중복 청약·당첨이 1638건 순으로 많았다. 실제 현장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들 대부분은 과거 청약 당첨 사실이나 무주택 여부 등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청약했다 낭패를 당한 것이다. 분양마케팅회사인 미드미 이월무 사장은 “청약 가점제 등 청약제도 자체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청약 때 실수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정부가 지난해 청약가점제 확대 적용 등을 골자로 한 8·2 대책 이후에는 부적격 당첨자 비율이 더 높아졌다. 대림산업이 지난해 말 서울 송파구에서 분양한 e편한세상 송파 파크센트럴은 일반분양 청약 당첨자 315명 중 18%에 이르는 59명이 부적격 통보를 받았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송파 파크센트럴 부적격자 중에는 무주택 기간을 잘못 기입해 당첨이 취소된 사례가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부적격 당첨자로 인해 발생한 미분양(미계약 물량)의 처리도 문제다. 주택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말 그대로 ‘미분양’이 돼 주택건설 업체를 옥죈다. 주택 경기가 좋을 때는 미분양 물량을 노린 사람과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자)’이 뒤엉켜 아수라장을 연출하기도 한다. 미분양 물량은 청약통장 유무나 유주택 여부와 관계없이 주택건설 업체가 임의대로 추첨이나 선착순 계약을 통해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월 말 서울 중랑구에서 분양한 한 아파트는 부적격 당첨자 등으로 분양 물량의 8% 정도가 미분양 됐는데, 추첨 분양 전날부터 떴다방 등이 견본주택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 종로구에서 나온 단지도 비슷한 풍경이 벌어졌다. 이 아파트는 미분양 물량 추첨 경쟁률이 60대 1이었다. 분양마케팅회사인 내외주건의 김신조 사장은 “미분양 물량은 추첨으로 분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경우 추첨 당일 계약금만 가지고 나와 접수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인기 단지의 경우 이른바 ‘돈 있는 자’들을 위한 투기판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청약가점제로 청약자 혼란


부적격 당첨자가 속출하는 건 청약제도 자체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약제도는 2007년 청약가점제를 시행하면서 완성됐다. 청약가점제는 무주택 세대주 등 주택 약자의 청약 당첨 확률을 높여주기 위한 제도다.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 수, 청약통장 가입 기간 등을 따져 점수를 매긴 후 점수 순으로 당첨자를 가린다. 그런데 이 점수 산정이 복잡하고 변수도 많다. 무엇보다 청약자 개인이 스스로 무주택 기간이나 부양가족 수 등을 따져 가점을 매기기 때문에 실수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잠시 집을 샀다가 판 경우는 어떻게 되는지, 부양가족이 소형 주택을 갖고 있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지 등 변수에 따라 점수도 오락가락한다. 신한금융투자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부동산 분야에서 20년, 30년 일한 사람도 정작 본인이 청약하려면 몇 시간씩 끙끙대고 계산을 해야 할 정도”라며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부적격 당첨자가 속출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복잡한 제도를 너무 쉽게 바꾸는 것도 문제다. 청약제도는, 정부 입장에서는 부동산 경기가 과열되면 가장 쉽고 빠르게 개입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효과도 즉각 나타난다. 지난해 정부가 청약 1순위 자격 요건을 청약통장 가입 후 12개월에서 24개월로 되돌린 게 대표적이다. 손쉽게 바꿀 수 있고, 바뀐 제도가 시행되는 순간 청약 1순위자가 확 줄어 청약 열기를 단번에 식힐 수 있다. 반대로 지난 정부는 청약시장이 위축되자 청약통장 가입 후 24개월이던 청약 1순위 자격 요건을 12개월로 완화했고, 이후 청약 1순위자가 대거 늘어나면서 청약시장이 살아났다. 분양권 전매제한 역시 마찬가지다. 늘렸다 다시 줄였다 다시 늘리는 일이 반복되는 건 그만큼 쉽고, 효과가 바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손바닥 뒤집듯 청약제도를 고치고 바꾸면서 현행 청약제도의 근간인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1978년 5월 10일 제정 이후 지금까지 136번이나 일부 또는 전면 개정됐다. 국토교통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을)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 헷갈리는 게 많다”고 토로했다.

제도가 복잡하고 자주 바뀌더라도 시스템을 잘 구축하면 그나마 낫다. 그러나 청약시스템(금융결제원의 아파트투유) 자체도 미비하다. 아파트투유를 통해 청약을 할 때 청약자가 직접 기입해야 하는 사항은 다섯 가지다. 거주지와 주택 소유 여부, 과거 2년 내 가점제 당첨 여부 등의 질문에 답변을 직접 체크해야 한다. 가점도 청약자가 알아서 계산하도록 돼 있다.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 수를 스스로 계산해 넣어야 한다. 청약 통장 가입일은 그나마 자동 입력된다. 문제는 시스템에 자체 검증 기능이 없어 청약자가 잘못 기입하더라도 그대로 입력된다는 것이다. 검증 책임을 100% 청약자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는 청약 당첨자 목록을 받은 이후에야 자격 요건을 확인해 건설 업체에 전달한다. 이 때문에 시스템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무주택 여부나 세대주 여부, 청약가점을 자동으로 입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주민등록등본, 가구주 여부, 주택 구입 시기 등 이미 나와 있는 데이터를 연계하면 충분히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약자 검증 절차를 당첨자 선정 후가 아닌 청약신청 때 적용해 부적격 당첨자 발생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약시스템에 자체 검증 기능 없어

정부도 청약시스템의 미비함을 인지하고 있지만 인력·비용 등의 한계로 당장 개선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주택 소유 여부 확인을 위해선 국세청, 청약 당첨 사실 확인을 위해선 금융결제원의 데이터를 가져와 가공해야 하는데 쉽지 많은 않은 작업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우선순위대로 순차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자동 입력 시스템이 구축되기 전까지는 청약자가 청약 신청 전 유의사항이나 청약가점제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실수를 범하는 일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청약자가 가장 헷갈려하는 청약가점은 아파트투유 홈페이지에서 단순 계산이 가능하다. 입주자모집 공고일과 생년월일, 혼인 여부, 혼인신고일, 주택 소유 여부, 무주택자가 된 날 등을 입력하면 무주택 기간이 자동으로 계산된다. 다만 청약자 본인이 입력한 대로 계산되기 때문에 애초에 잘못된 정보를 입력하면 결과가 틀릴 수 있다. 이 팀장은 “헷갈린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아파트투유 콜센터로 전화 상담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1431호 (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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