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지분율 1%의 엘리엇에게 왜 휘둘릴까] 상법 개정안 명분 여론전에서 우위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집중투표제 등으로 주주 규합해 발언권 강화 시도 ... 시세차익 노린 의도적 공격에 무게

▎서울 양재동의 현대자동차 사옥. 현대차그룹은 최근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공격 대상이 됐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계 헤지펀드(hedge fund)인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이번엔 현대자동차그룹을 공격하고 있다. 헤지펀드는 단기간 고수익을 목표로 글로벌 시장에 대규모 투자하는 회사로, 나쁜 의미로는 투기자본을 일컫기도 한다. 4월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최근 현대차그룹에 서신을 보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해 지주사를 만들 것”과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의 정관을 고쳐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내용의 기존 조항을 삭제할 것”을 제안했다. 집중투표제는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가 1주당 1표가 아닌,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표를 행사하게 하는 제도다.

예컨대 지금껏 임원 5명을 뽑는 주총에선 10주를 가진 주주는 각 5명에 대해 선임 찬성 또는 반대로 10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집중투표제에선 임원 후보자 한 명에게 50표를 몰아주고 나머지 후보자에 대해선 의결권을 포기할 수 있다. 이 경우 소액주주들이 연합해서 원하는 후보자를 이사로 선임할 가능성이 커진다. 상법 개정안을 추진 중인 우리 정부는 이를 통해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보고,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현대차그룹 흔들기에 나선 엘리엇이, 보유 지분율은 낮다는 약점 극복을 위해 이를 명분삼아 주주들의 동의를 구하면서 현대차그룹을 공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분 1조원어치 보유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차그룹 지분은 정확히 얼마나 될까. 특정 주주의 지분율이 5% 이상일 경우 공시하도록 한 현행법상 엘리엇은 공시 대상이 아닌 상태다. 지분율이 확실히 5% 미만이라는 얘기다. 알려진 대로라면 이에 훨씬 못 미친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엘리엇의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보유 지분은 각각 1%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현대차그룹의 시가총액이 큰 만큼 (엘리엇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긴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앞서 4월 3일(현지시간) 엘리엇 계열의 투자 자문사인 ‘엘리엇 어드바이저스 홍콩’은 성명을 통해 “현대차그룹이 어떻게 지배구조를 개선할지 주주로서 알고 싶으니 구체적 로드맵을 공유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이 3월 28일 “현대모비스를 그룹의 지배회사로 삼아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다”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그러면서 엘리엇이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3개 회사에 대해 총 1조500억원 상당의 보통주를 보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3월 3개월 간 3개 회사의 평균 주가(현대차 15만5225원, 기아차 3만2998원, 현대모비스 24만377원)에다 엘리엇 측이 밝힌 보유 금액 1조500억원을 3등분한 3500억원씩을 적용, 단순평균으로 역추산하면 엘리엇이 현대차 225만주, 기아차 1060만주, 현대모비스 145만주가량을 보유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 경우 각각 1%, 2.6%, 1.5%(이상 4월 초 기준)가량의 지분율이다. 항목 수에만 의존한 단순평균 결과임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더 낮아져 증권가 추정치와 거의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달리 현대차그룹은 총수인 정몽구 회장이 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축인 현대모비스 지분 6.96%를 보유 중이다. 현대모비스의 최대주주인 기아차(16.88%), 그리고 현대제철(5.66%)과 현대글로비스(0.67%) 등 우호지분까지 합하면 지분율이 30%를 넘는다. 물론 한국 정부의 상법 개정안 추진을 ‘호재’로 보고 있는 엘리엇이 차제에 공세 강화를 위해 추가 매집에 나선다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지분율만 놓고 비교해 보면 현대차그룹의 경영권에 큰 위협이 되진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엘리엇도 이런 약점을 딛고 경영에 좀 더 간섭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같은 헤지펀드끼리 합심해 주주총회에서 기업의 이사 자리를 비교적 손쉽게 꿰찰 수도 있게 돼서다. 여기에 다른 소액주주들까지 주주 권익 실현의 계기로 보고 합세할 경우 ‘지분율 1%의 약점’은 순식간에 극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할 경우 외국계 투기자본이 제도를 악용, 국내 기업을 공격하는 사례가 빈번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돼왔다. 실제 지난 2006년 KT&G는 당시 영국계 펀드인 TCI 등 외국계 투자자들이 손잡고 집중투표제를 이용해 이사를 선임, 이후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면서 경영권 분쟁을 겪어야 했다.

외국계 자본, 국내 기업 번번히 공격


▎엘리엇은 지난 2015년에도 삼성물산의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면서 시세차익을 노렸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 사진:연합뉴스
이들이 국내 기업을 흔들어서 노리는 것은 잘 되는 경우 경영권 장악, 여의치 않더라도 주가 변동을 통한 시세차익 실현이다. 결과가 후자여도 이들로선 나쁠 것이 없다. 과거 SK그룹을 에워쌌던 헤지펀드들이 대표적 사례다. 1999년 미국계 헤지펀드인 타이거펀드는 다른 외국계 4개 펀드와 연합해 SK텔레콤 지분 6.6%를 매수한 다음,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면서 공세를 펼쳤다. 이후 주가가 떨어졌다가 다른 호재로 다시 상승하자 SK 계열사에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해 약 63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기고 떠났다. 2003년엔 영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 지분 14.99%를 매수해 2대 주주에 올랐다. 당시 SK는 계열사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태로 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이 구속 수감되는 경영 공백이 생긴 상황이었다.

그 틈을 노리고 들어간 소버린 측은 이후 사외이사 추천, 자산 매각 요구에 이어 경영진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SK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해선 경영권 교체가 필요하다는 명분이었다. 비록 최종적으로 경영권 장악엔 실패했지만 영국과 홍콩 등지의 외국계 투자자들에 SK㈜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해 약 940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겨 2005년 한국을 떠났다. 최초 투자금의 4배가 넘는 수익을 챙긴 셈이었다. 재계가 현대차그룹에 대한 엘리엇의 이번 공세를 ‘헤지펀드의 전형적인, 시세차익을 노린 사전 작업의 일환’으로 의심하는 이유다.

엘리엇은 3년 전인 2015년에도 지분 7.12%를 보유했던 삼성물산의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 시세차익을 노렸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경영권 장악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더라도 시세차익은 기대할 만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마치 ‘여론전’을 연상케 하는 엘리엇의 접근 방식에서부터 심상찮은 기류가 감지된다. 최근 엘리엇은 따로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www.AccelerateHyundai.com)에서 현대차그룹에 보낸 서신을 공개했다. 복수의 네티즌과 공유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홈페이지는 영어와 한국어로 동시에 볼 수 있으며 ‘보도자료’와 ‘주주를 위한 정보’까지 제공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에 대한 압박과 동시에 한국에 있는 많은 주주를 설득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이 같은 방식을 택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에 보낸 서신에서도 “현대차그룹의 높은 잠재가치를 실현시킨다는 목표 하에 경영진 및 다른 주주들과 지속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언론과 외부 평가기관은 이미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 우려 섞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며 “또 이에 동조하는 국내외 대·소규모 주주들의 의견도 전해 들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각에선 이런 식으로 현대차그룹을 긴장시킨 엘리엇이 총수 일가에게 자신들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비싼 값에 사줄 것을 요구하거나, 현대모비스 주가를 띄운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 차익을 실현하는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은 원안대로 진행”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이처럼 헤지펀드의 빈번한 공격 대상이 되는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우선 기업 창립이 100년이 채 안 된 곳이 대부분이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경영권 방어 경험이 부족한 게 약점으로 여겨진다는 해석이다. 또 사내 유보금을 쌓는 보수적인 경영 방식에다 회계기준까지 미국 등 서구권 선진국과 달라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경우가 많다. 그만큼 시세차익을 노리기 좋다. 아울러 ‘재벌’이라는 고유명사가 해외에서도 유명해졌을 만큼 국민들이 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반(反)기업 정서가 강해 ‘소액주주 권익 보호’라는 명분을 발판삼아 공격하기가 다른 나라에서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 보고서에서 “국내 증권시장에서 주주들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8.6개월로 조사 대상 144개국 중 네 번째로 짧았다”며 “주주들이 단기 실적에 집중하는 점도 외국계 자본들이 공략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한편 일련의 논란에 대해 엘리엇 측은 “어디까지나 주주로서 최소한의 수익을 지키기 위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한다고 해도 주주로서 문제를 제기할 부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4월 24일 “엘리엇이 가진 주주로서의 권리는 존중한다”면서도 “지배구조 개편은 (3월에 발표했던) 원안대로 진행한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했다. 사실상 엘리엇 측의 요구를 수용할 계획이 없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은 상법 개정이 진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이 부적절한 논의이며,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합병 역시 모든 주주의 목소리가 반영된 내용이 아닐뿐더러 모든 주주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도 아니라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1432호 (2018.05.0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