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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규제 요청하는 암호화폐 업계 속내는] 하루 빨리 ‘게임의 룰’ 만들어 달라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비트코인 가격 다시 오름세이지만 규제 리스크 걱정…정부·국회 4개월째 뾰족한 대책 없이 공전

▎4월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1000만원대를 회복하고 이오스· 에이다 등 3세대 코인이 크게 오르는 등 암호화폐 시장이 2~3월 폭락을 딛고 반등하는 조짐이다.
“서둘러 규제안을 만들어 달라.” 4월 1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한국블록체인협회 주최로 열린 ‘가상화폐 거래소 자율규제 심사 계획’ 간담회에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들은 정부 규제가 시급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빨리 ‘게임의 룰’을 만들어 달란 것이다. 민간에서 정부 규제를 자청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거래소 입장에서 정부 규제는 투자금 유입을 가로막는 등 사업에 방해 요인이다. 또 규제는 탈중앙·탈규제를 지향하는 암호화폐의 철학에 반하기도 한다. 업계에서 이런 요구를 한 것은 정부의 오락가락한 태도 때문이다. 정부가 강도 높은 규제를 예고하고도 별다른 실행안을 내놓지 않고 있어 시장의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는 것이 암호화폐 분야 관계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이런 가운데 암호화폐 거래 시장이 4월 중순부터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암호화폐의 대장격인 비트코인 가격은 4월 26일 코인당 9281달러(약 998만원)로 12일 종가 6832달러 대비 50% 가까이 올랐다. 매일 새로운 암호화폐가 상장(ICO)하고 있고, 록펠러, 조지 소로스 등 세계적 부호들이 암호화폐에 투자에 나서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에 훈풍이 불며 시가총액도 4월 중순 32000억 달러에서 4200억 달러로 불어났다. 국내에서도 암호화폐 시장에 봇물 터지듯 신규 ICO가 이뤄지고 있다. 업비트는는 3월 23일 스톰을 시작으로 4월 5일 트론, 13일 골렘, 19일 모나코 등을 잇따라 상장했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도 3월 21일 아이콘을, 4월 5일에는 트론을 상장했다. 12일에는 미스릴·엘프의 거래를 새로 시작했다. 특히 미스릴은 250원에 거래를 시작해 30분 만에 115배인 2만8812원까지 치솟았다가 10분 만에 7498원까지 떨어지며 논란을 낳기도 했다.

암호화폐가 다시 들썩이기 시작하면서 정부의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올 초 정부의 규제 계획에 손실을 입은 사람들이 적지 않아 정부 규제안에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투자자 입장에서는 규제안이 빨리 나와 악재를 털고 가는 편을 바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난해 9월 금융위원회는 ICO 전면 금지, 올 1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거래소 폐쇄 가능성을 언급했다. 강성 발언을 통해 지난해 말 뜨겁게 달아올랐던 암호화폐 시장을 일단 식혀놨다. 그러나 이후로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주무부처 없이 법무부·금융위 등이 사안별 대처

현재 정부에 암호화폐와 관련한 주무부처는 사실상 없다. 올 초 금융위원회가 암호화폐 주무부처라는 관측이 일자 청와대는 “암호화폐 대응의 컨트롤타워는 국무조정실”이라고 못을 박았다. 다만 국무조정실은 각 중앙행정기관 간 업무를 조정하고 지휘·감독하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서 실제 행정·집행 능력은 없다. 국무조정실은 지난해 말 범정부 가상화폐 TF(태스크포스)를 출범하고 활동을 시작했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손 놓은 정부를 비판하며 국회도 가상화폐 TF를 출범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회의 한번 열지 못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6월 지방선거와 촌각을 다투는 법안 처리 문제로 암호화폐 문제가 뒤로 밀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암호화폐 시장이 뜨거울 때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소비자 보호와 자금세탁, 법무부는 유사수신 등 부처별 소관 업무에 국한된 규제에 그치고 있다.

현재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암호화폐의 성격 규정이다. 박상기 장관이 1월 암호화폐를 ‘징표’라고 언급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법정 화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연산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대가로 제공되는 토큰이다. 이것으로 해당 암호화폐를 발행한 기업의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등 경제활동을 벌인다. 이 토큰을 범용 화폐로 볼 수 있는가 없는가를 두고 법무부는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성격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규제의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은 해외의 사례를 참고하겠다는 분위기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암호화폐는 세계적으로 얽힌 문제라 국내 규제가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국가 간 괴리를 막으려면 미국·일본·중국 등 당국의 움직임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단 정부 대책은 빨라야 하반기 이후에나 나올 수 있을 전망이다. 7월 국제기구 논의에서 사례와 법적 연구에 대한 논의가 예정돼서다. 이 자리에서도 구체적인 규제 논의가 없을 수도 있어 해를 넘길 가능성도 크다. 현재로서는 암호화폐를 상품권 같은 유가증권의 일종으로 규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법조계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2월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가상화폐 청문회에서 제이 클레이튼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은 “IC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벤처기업은 SEC에 등록해야 하지만 현재까지 ICO가 SEC에 등록되지 않았다”며 암호화폐를 유가증권의 일종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신종자본증권 같은 지분증권의 일종으로 볼 가능성도 있다.

어느 경우든 현재 벌어지고 있는 ICO를 통한 자금 유치는 규제안 마련 후 법적 문제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가장 많이 나올 수 있는 문제는 외국환거래법 저촉 가능성이다. 다수 기업들이 정부 규제를 피해 홍콩·싱가포르·스위스 등지에 재단을 설립해 ICO를 추진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원화로 구매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을 해당 기업으로 송금해 프리세일(사전판매)에 동참하는데, 이 경우 외화 반출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정부는 이들 나라들를 조세회피처로 지정하고 있어 향후 조세회피 혐의 문제도 부각될 수 있다. 정부는 국내에서 발생할 매출을 해외로 돌린 것이라 판단하면 국내 거주자에게 회피된 세액만큼 과세하게 된다. 정부가 ICO를 불법으로 규정한 상황이라, 해외에서 ICO를 통해 발생할 매출에 과세할 근거가 있느냐는 법적 다툼의 소지도 있다.

ICO 통한 자금 유치, 조세회피 혐의 받을 가능성

특히 국내로 유입된 암호화폐 투자금이 엔젤펀드 형태로 해외로 빠져나가는 경우는 어떻게 차단할 것이냐도 정부로서는 고민이다. 당국은 지난해 말 중국계 자금이 빗썸 등 국내 거래소로 대거 유입된 후 시세차익을 올려 해외로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검찰은 외환 선물거래나 환치기 등을 규제해 국부유출을 막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엔젤펀드 등을 출자해 국내로 투자 유치에 나선 외국계 벤처기업에 투자하면 투자금을 해외로 빼돌릴 수 있다. 정부가 이와 관련한 규제를 내놓을 경우 정상적인 엔젤투자까지 가로막아 정부가 스타트업을 죽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당국은 ICO를 탈세, 유사수신 및 방문판매법(다단계) 위반 등 불법 소지를 낮추면서 암호화폐 시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두고 저울질 중이다.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운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한국은 정부가 ICO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인세율이 22%로 높지만 싱가포르는 법인세율이 17%에 불과하고 합법적으로 ICO를 할 수 있다”며 “기업인으로서 내린 최선의 선택을 정부가 불법으로 간주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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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2호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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