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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부푼 증권·부동산시장] 토목·건설주-경기 북부 땅값 함박웃음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전쟁 위험 줄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섣부른 낙관 경계하는 목소리도 커져

▎철조망 너머로 최근 땅값이 급등한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일대가 보인다. 이 지역은 민간인 통제선 북방지역이다. / 사진:연합뉴스
남북 정상회담이 국내 증권시장과 부동산시장의 풍경까지 바꿔 놓고 있다. 최근 증권시장에서는 주도주(株)가 바뀌었다. 지난해부터 강세를 이어온 제약·바이오주는 주춤하고 있는 반면, 남북 관계가 급격히 개선되면서 남북 경제협력(경협) 관련주가 떠오르고 있다. 토목·건설·시멘트·기계·전기 등이다. 이들 업종이 무더기로 ‘북한 개발 테마주’로 거론되며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전쟁 위험이 사라져 ‘코리아 디스카운트(discount·할인)’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확산하고 있다. 부동산시장에선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한 ‘남부축’이 아닌 북한 접경지를 중심으로 한 ‘북부축’이 부상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등지의 땅값은 이미 큰 폭으로 올랐고,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전국 각지에서 투자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남북 정상회담이 증권·부동산시장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지만 섣부른 낙관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북한 개발 테마주 각광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월 24일 코스피시장에서 건설업종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25포인트, 1% 오른 126.82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4월 18일 이후 5거래일 연속 상승이다. 이 기간 건설업종 지수 상승폭은 14.8%에 달한다. 같은 기간 코스피시장의 비금속광물과 전기가스업종 지수도 각각 14.4%, 6.8% 올랐다. 세 업종 모두 남북 경협주가 다수 포진돼 있다. 건설업종은 남북 경협으로 북한의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과 도시개발 투자 수혜를 누릴 것이란 기대감에 주가가 올랐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도로·철도나 도시개발 등은 북한 스스로 하는 데 무리가 있는 만큼 남북 경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멘트주가 포함된 비금속광물업종도 비슷한 이유다. 전기가스업종은 북한으로 에너지 인프라를 공급하는 혜택을 누릴 것이란 기대감에 올랐다. 대부분 개성공단 입주기업이나 철도·건설·송전 등 인프라 업종의 기업들이다. 이들 종목은 3월부터 남북·북미 정상회담, 종전 선언 추진과 북한의 핵시설 폐기 등 긍정적인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면서 주가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 4월 20일부터 2거래일 동안 코스피지수가 하락세를 나타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남북 경협주 외에 남북 경협에 따른 파생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종목도 최근 관심을 끌고 있다. 일례로 IBK투자증권은 “개성공단 관련주, 철도·건설 등 인프라 관련주는 눈에 보이는 수혜주이지만 이후에는 비용 조달을 위한 국채 발행, 민간 투자 확대 등으로 금융업종도 상승세가 기대된다”며 KB금융·우리은행·기업은행 등을 예상 수혜주로 꼽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종목에 따라서는 등락을 거듭할 수 있겠지만, 5월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까지는 남북 경협주의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더 나아가 북한 관련 지정학적 위험이 사라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줄어들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 증시의 할인율이 최소 대만 정도까지도 낮아질 수 있다”며 “현재 국내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배당성향·이익증가율로 추정한 할인율은 14.4%인데, 전쟁 위험이 축소되면 11.2%인 대만 수준까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북한 접경지역의 토지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은 경기도 파주시 등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경계선) 내의 농지와 파주시 문산읍 등 남북한을 연결하는 육로 주변이다. 이 지역은 땅값이 연초 대비 20% 넘게 올랐다. 분위기가 급변하자 땅 주인들은 내놨던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고, 나왔던 매물은 모두 팔려 지금은 매물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 파주시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통일로와 경의선 주변에 있는 농업진흥구역 내 토지는 1월만 해도 3.3㎡당 20만원 선이었으나 지금은 3.3㎡당 30만원을 호가한다”며 “2억원 초반대 물건이 2억원 후반대가 된 건데 그마저도 매물이 없다”고 말했다. 문산읍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부산이나 제주도에서도 무조건 투자할 테니 땅만 구해달라는 전화가 계속 온다”고 전했다.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현장을 직접 보지도 않고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위성지도와 지적도만 보고 계약한 사례도 있다는 게 지역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월 경기도 파주시 땅값은 전달에 비해 0.29% 올랐다. 월간 단위로는 지난해 5월(0.3%) 이후 최고치다. 가격만 오른 게 아니다. 거래도 늘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파주시 문산읍 토지 매매거래 건수는 2월 26건에서 3월 40건으로 급등했다.

북한 접경지 땅값 남북 관계 따라 롤러코스터

그러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경계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남북 경협주가 아닌 데도 민통선이나 경기 북부에 땅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식이 오르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사무용 가구를 만드는 K사와 포장재를 만드는 S사는 최근 이유 없이 주가가 급등했는데, 이유를 알고 보니 파주시에 땅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K사는 파주에 물류센터가 있고, S사는 파주에 공장 부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회사는 지난 정부의 ‘통일대박론’ 때도 주가가 급등락을 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남북, 북미 관계 개선 기대감 속에 투자자들이 남북 경협 수혜 종목 찾기를 넘어 아예 만들어 내고 있다”며 “지난 정부 때도 그랬듯이 이런 종목은 시간이 지나면 거품이 빠질 수 있으므로 묻지마 투자는 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접경지 땅값은 그동안 남북관계에 따라 롤러코스터 움직임을 보여 왔다. 2004년 개성공단 가동과 대북 확성기 철거 등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지자 그 해에만 파주시 땅값은 13.3% 급등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들어 남북관계가 급격히 경색되면서 땅값은 급락세로 돌아섰다. 박근혜 정부 때도 남북관계에 별다른 진전이 없자 파주시 땅값은 경기도 평균 땅값 상승률을 한참 밑돌았다. 파주시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남북관계는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기대심리로 단기 차익 실현을 보고 무리해서 투자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한금융투자 이남수 부동산팀장도 “남북관계 개선이 경기 북부 토지시장에 호재인 건 맞지만 이 지역은 환금성이 떨어지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한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안타증권 조병현 연구원은 “분명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하지만 지정학적 요인보다 기업 지배구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기대만큼 해소 폭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1432호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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