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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비즈니스 전략은] 북·중·러의 접경지에서 기회 모색하다 본격 진출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인프라 수요, 값싼 노동력, 풍부한 자원 매력…중국 업체와의 경쟁 변수 될 수도

▎건설 중인 평양 려명거리.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대북 비즈니스에 대한 국내 기업의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대북 경제협력 사업의 물꼬가 트일 수 있어서다. 포화된 시장, 임금 상승 등의 문제에 직면한 국내 산업계에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는 기대다. 실제 국내 기업의 상당수는 사업 기회 모색 차원에서 대북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회원사와 개성공단 입주 기업 200여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장기적으로 북한에 투자하거나 진출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절반 이상(51%)이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북한 인프라 수요, 국내 건설사 ‘가뭄의 단비’

그렇다면 국내 기업은 북한의 어떤 분야에 어떻게 진출할 수 있을까. 삼정KPMG는 최근 이에 대해 분석한 자료를 내놨다. 북한의 새로운 시장 가능성에 주목해 대북비즈니스지원센터를 설립하고 2년여 간 연구한 내용을 실은 [북한 비즈니스 진출 전략]을 출간했다. 책은 경제협력 정도에 따라 재개 및 회복 단계인 단기, 활성화 및 심화 단계인 중기, 고도화 및 통합 전 단계인 장기로 구분해 진출 전략을 검토하고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할 경우 인프라·건설을 시작으로 유통·소비재, 정보통신기술(ICT), 에너지·자원, 자동차, 관광 산업 등이 북한에 진출해 기회를 엿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연구를 총괄한 김광석 삼정KPMG 대북비즈니스지원센터 리더(전무)는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북한 진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며 “본격적인 남북 경제협력이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국내 기업도 대북 비즈니스 기회와 진출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산업계에서 가장 기대감이 큰 건 인프라 구축 사업이다. 현재 북한의 인프라 상황은 열악하다. 철도·도로·항만시설 등 교통 인프라는 노후화 된 채 수십 년 째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전력 공급도 원활하지 않아 전반적인 산업발전의 걸림돌이 될 정도다. 북한 내부에서도 인프라 확보의 시급함을 인지하고 있어 대북 제재가 완화될 경우 해외 기업의 진입을 적극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갈수록 줄어드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으로 수주난을 겪고 있는 국내 건설사에겐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에너지 관련 인프라도 국내 기술력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다. 또한 해외 개발도상국에서 인프라 개발 경험을 쌓았고, 같은 언어를 쓰는 데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인력이나 자재 운반 비용이 덜 든다는 점은 향후 북한 인프라 개발 시장이 열렸을 때 국내 건설 업체가 내세울 수 있는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북한의 인프라 개발을 국내 업체가 독식할 거라는 지나친 낙관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국 건설사와의 경쟁은 큰 변수다. 국내 건설사의 경우 기술력이나 경험에 비해 자본 조달력에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강력한 자본력을 가진 중국 건설사들이 선점 투자를 통해 저가 수주 경쟁에 뛰어들 경우 수익성 측면에서 악화 요인이 될 수 있다. 김효진 삼정KPMG 대북비지니스지원센터 인프라·건설담당 상무는 “국내 기업이 북한 인프라 개발에 바로 접근하기에는 현실적 장애와 위험 요소가 크다”며 “북한과 우호적인 중국·러시아와의 접경지역에서 사업을 진행하면서 관계를 형성하고 본격적인 진출 방안을 모색하는 우회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장 소비력이 크지 않은 북한 ‘시장’을 노리기보다 제조업의 ‘생산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진출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책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의 경우 임금은 낮지만 교육 수준은 높다. 국내 업체 입장에서는 저가의 노동력을 통해 원가를 절감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섬유산업은 국내 기업이 우선적으로 진출을 검토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북한 비즈니스 진출 전략]은 향후 중국 시장을 목표로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북한 내수시장 개척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정수 삼정KPMG 대북비지니스지원센터 유통·소비재담당 상무는 “국내 기업은 의류업 부문에서 확고한 브랜드를 만들어왔고 중국과 베트남 등 해외에서 노동력 확보와 운영에 대한 노하우도 축적했다”며 “장기적으로는 향후 성장할 북한 소비시장에 수월하게 진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동차산업도 비슷한 이유에서 유망한 대북 비즈니스 업종 중 하나다. 임금 상승 여파로 원가경쟁력이 악화된 국내 기업이 생산비용을 낮추는 목적을 진출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도로 등 인프라가 갖춰지고 북한 경제가 성장하면 자동차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김재연 삼정KPMG 대북 비지니스지원센터 자동차담당 상무는 “중국의 동북 3성과 러시아 극동지역에 인접한 지정학적 위치 역시 대외적으로 자동차산업이 성장하기에 유리한 조건”이라며 “초기 단계에는 인건비가 주요 동인으로 작동하면서 부품 위탁생산 목적의 진출이 일어나다가 북한의 소득수준이 개선되면 대리점 등을 세워 시장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는 또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에서 북한 시장은 자율주행차, 친환경차 등 신기술의 ‘테스트베드(시험장)’으로서의 잠재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통신·하드웨어·소프트웨어 등 IT산업의 경우 오라스콤의 북한 이동통신 투자 등의 사례를 봤을 때 진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경협 초기 노동집약적인 제조를 시작으로 차츰 분업을 확대해 나가는 형태가 현실적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산업에서 자본 집약적이고 자동화된 제조 단계는 한국이, 노동집약적인 후방 제조활동은 북한이 맡는 식이다. 주요 IT 하드웨어의 ‘한국 디자인, 북한 조립’ 방식도 가능하다. 또 폐쇄적인 IT 산업 구조로 인해 역설적으로 발달한 북한의 소프트웨어·보안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부존 광물과 관광지 등 북한의 자원을 활용한 사업 기회도 있다. 북한에는 한국 제조업의 필수 광물인 유연탄·철광·구리·니켈·아연·우라늄이 매장돼 있다. 희토류 같은 희귀 광물도 있다. 국내에서는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광물이다. [북한 비즈니스 진출 전략]은 경협이 본격화하고 북한의 교통 인프라가 갖춰지면 이들 광산에 대한 개발이 적극 추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민간의 광산 운영을 기피하는 북한 정권의 경향은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작게 만드는 요소다. 이미 관련 사업을 추진한 바 있는 중국과의 경쟁도 예상된다. 국내에 광산개발 노하우나 인력 부족하다는 점도 변수다. 책은 북한 광산 개발의 경우 초기에 일시적으로 개발의 주도권을 북한에게 주고 한국은 자본을 투자해 이윤을 추구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관련 인력 육성하고 구체적 계획 세워야”

관광 사업은 과거 사례에도 알 수 있듯이 경색된 남북 관계가 해소되기만 하면 가장 먼저 거론될 경제협력 사업 중 하나다. 특별한 계기나 설비 없이도 기본적인 인프라만 갖추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어서다. 북한은 지리적으로 글로벌 관광산업의 큰 손인 유커들의 주요 여행지가 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책은 특히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를 비롯한 특구 및 경제개발구 등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부동산 개발과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권준석 삼정 KPMG 대북비지니스지원센터 관광담당 상무는 “현재 북한은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투자유치 설명회를 개최하고 관련 자료를 배포하는 등 10여년 전보다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소수 특정 기업과 배타적 계약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던 과거와 달리 다수 기업의 진출을 허용해 빠르게 관광 산업의 기반을 닦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모든 가정은 국제사회와 북한의 관계가 개선되고 경제협력이 본격화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북한 비즈니스에는 기회만큼 다양한 위험 요인이 존재한다. 김광석 전무는 “다방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 요인에 대해 면밀한 파악하고 투자비 회수방안을 단계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관련 전문 인력을 미리 육성해야 하고, 어느 지역, 어느 부분에 투자를 집행할 것인지, 투자를 위한 자본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432호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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