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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의 도보다리 위 “발전소” 의미는?] 발전소 건립보다 송배전 설비부터 손댈 듯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신재생에너지 개발도 현실적 대안...전선·태양광 업체 사업 기회 기대감 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도보다리 친교산책과 단독 회동을 마친 후 평화의집으로 향하고 있다. 이 길에서 카메라를 통해 문 대통령이 “발전소 문제…”라고 말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 사진:연합뉴스
역사적 회담이 이뤄진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이 도보다리 위에서 작은 테이블을 놓고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단 1초도 들을 수 없었다. 두 정상은 도보다리에서 회담장인 판문점 평화의집으로 돌아온 직후에도 다시 10분 이상 둘만의 대화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정상끼리 배석자 없이 그렇게 오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없었다. 두 정상 사이에 비핵화와 남북 관계 발전 방안 등을 놓고 공개되지 않은, 핵심 사안과 관련된 대화가 오갔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 와중에 두 정상이 산책을 마치고 평화의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메라를 통해 “발전소 문제…”라고 말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도보다리 대화 중 육성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비밀 대화에서 비핵화 이후 북한의 전력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발전소 건설 등 전력 문제는 북한이 매번 비핵화의 반대급부로 요구하는 사안이다. 1995년 제네바 합의에서는 경수로를 지원하는 합의가 있었다. 2002년 북한의 핵개발 의혹으로 경수로 지원이 중단된 이후로는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도출할 때 남측에서 200만㎾ 전력을 송전하는 이른바 ‘중대 제안’이 북한에 전달되기도 했다.

북한 발전량, 남한의 20분의 1 수준


북한에게 전력 공급 개선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현재 북한의 고질적인 전력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6년 기준 북한의 발전설비용량(모든 발전소를 1시간 동안 완전히 가동할 때의 전력 생산능력의 합)은 766만kW로 한국(1억586만kW)의 7.2%에 불과하다. 총 발전량은 239kWh로 남한 총발전량(5404억kWh)의 4.4% 수준에 그친다. 그나마 노후화된 송·배전 시스템까지 감안하면 실제 사용 가능한 전력량은 이보다 훨씬 적다. 북한의 송배전 손실율은 20%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발전소에서 100의 전기를 생산하더라도 변압기, 송·배전선로를 거쳐 사용지점에 이르는 동안 20% 이상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지상의 공장에 비해 30% 정도 추가 전력이 소요되는 지하 군수공장의 운영 등이 전력난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그나마 있는 발전소도 제 역할을 못하는 상태다. 북한은 전력난 해결을 위해 수력·화력 발전소를 건설해왔다. 추정되는 대형 발전소는 68개, 중소형 발전소를 포함하면 약 1180개 발전소가 있다. 하지만 이용률이 수력·화력 모두 합쳐도 30%에 불과하다. 남한이 70~80%의 발전 설비 이용률을 유지 하는 것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다. 대부분 노후화돼 제 기능을 못할뿐더러 부품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보수·정비를 하지 못한 탓이다. 또 화력발전소는 연료 공급에도 차질을 빚고 있고, 수력발전소는 잦은 홍수와 가뭄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삼정KPMG가 최근 발간한 [북한 비즈니스 진출전략]에 따르면 북한의 화력발전소는 30년 이상 된 설비가 78%를 차지한다. 화력발전용량의 65%가 대규모 개·보수, 폐지 또는 리파워링 대상이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북한의 수력발전 설비는 노후화가 심각해 53%가 전면교체 대상이다.

북한의 경제난은 근본적으로 체제의 비효율성과 군사적 긴장관계에 기인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전력 공급 부족에 따른 악순환이 큰 원인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북한에서 제조업 가동률이 저조한 주요 원인도 전력 부족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기술 수준이 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자체 역량만으로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외국과의 협력이나 지원이 필요하지만, 과감한 대북투자를 할 만한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결국 남한 기술과 자본으로 북한의 노후한 발전소를 개·보수 해야만 본격적인 경협을 시작할 수 있는 셈이다. 따라서 향후 남북 관계가 개선돼 경제협력이 추진되면 발전소 문제가 우선적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올 가을로 약속된 다음 정상회담 전이라도 북한이 먼저 정치적 부담이 비교적 덜한 에너지 협력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윤재영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북한 전력산업 현황 및 독일통합 사례’보고서에서 “통일비용의 절감 차원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북한의 전력산업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경협이 진행되더라도 당장 북한에 대형 발전소를 지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치적 부담은 차치하더라도 경제적 실효성이 적다. 대규모 발전소는 현재 북한의 전원 규모나 낡은 송·배전망으로는 원활하게 가동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송배전 설비의 현대화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추가적인 발전설비를 짓지 않아도 전력 손실을 감소시키는 것만으로도 전력난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북한 비즈니스 진출전략]은 “북한은 전력을 원하지만 정보 교환은 꺼리는 측면이 있고, 남한은 지원 전력의 군수 활용 등이 염려돼 직접적 전력 지원을 기피하는 측면이 있다”며 “송배전 설비 현대화는 양측 모두 거부감을 갖지 않을 수 있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송·배전 인프라가 확보되고 남북 관계 개선 이후에도 신규 발전설비를 짓기보다는 일단 노후화된 발전소를 개·보수하는 작업을 먼저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 ‘가정용 태양광’ 지원 가능성도

일각에서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북한 당국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크다. 북한은 2013년 ‘재생에네르기법’을 신설하고 2044년까지 500만kW 신재생 전력생산이라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신재생에너지는 소규모로 개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 실수요와 근접한 위치에 있을수록 경제성이 높아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당장 송전선로가 전국으로 뻗어 있지 않고 송배전 손실률도 높은 북한 입장에서는 대형 발전소 건설보다는 전기를 생산해서 소비지까지 보내는 과정을 최소화해 전력 손실률을 낮출 수 있는 소형의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더 적합한 대안이라는 분석이다. 협력을 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도 원자력 등의 발전소에 비해 정치적 부담이 적고, 생산된 전기가 군수용으로 전용될 소지가 적어 민생용 중심의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남북 관계를 고려할 때 우선 인도적 차원에서 가정용 태양광 패널을 공급하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과의 에너지 협력은 국내 기업의 사업 기회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전선 업계는 인프라 사업 참여가 유력하게 점쳐지면서 남북한 경제협력을 환영하고 있다. 새로운 전력망을 구축할 경우 필요한 대규모 케이블, 통신망 구축시 요구되는 별도의 광케이블, 산업단지 구축용 산업용 케이블 등 인프라 분야 전방에서 기회가 생길 것이란 전망이다. 신재생에너지 업체들도 남북경협의 진행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국내 태양광 업체 사이에서도 북한이라는 새 시장이 열리면 공급 과잉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1433호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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