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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 줄일 묘수는?] 시간제 일자리로 워킹맘 늘릴 수 있어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30대 후반 여성 경제참여율 58% 그쳐...공공 보육서비스, 양성문화 평등 개선도 필요

20대 후반 70%가 넘는 여성의 경제참여율은 30대 후반에는 58%로 뚝 떨어진다. 결혼이 늦어지면서 출산과 육아로 회사를 그만두는 30대 여성이 늘고 있어서다. 이른바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증가하면서 한국의 남녀 경제활동참가율 격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4번째로 높아졌다. 결혼·출산·육아를 거치며 ‘명함’을 잃은 경단녀가 사회로 다시 진출하기란 쉽지 않다. 취업의 문턱이 높고 문도 좁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늘리고, 아이 돌봄 지원도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해외 선진국은 어떨까. 여성 경제활동참여율이 높은 유럽에서는 시간제 일자리로 여성의 경력단절을 끊어내고 있다. OECD 평균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63.6%다. 아이슬란드와 스웨덴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80%가 넘었다. 이들의 성공 비결과 경단녀들이 들려주는 재취업 성공기를 살펴봤다.


올해 37세인 김경미씨는 8년 간 보험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했다. 3년 전 첫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에 들어갔던 그는 2016년 복직을 포기했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올해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재취업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김씨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복직하고 계속 회사에 다녔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본다”며 “엄마로 불릴수록 내 이름 석자는 잊혀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올 들어 그는 짬이 날 때마다 일자리 박람회에 가고 있다. 하지만 사무직 경력 밖에 없는 김씨를 채용하려는 회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3월 초 지인의 소개로 한 무역회사의 면접을 봤지만 야근이 잦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그는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기기도 어렵고,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을 구하자니 비용이 만만찮을 듯하다”며 “재취업했다는 주변 엄마들의 얘기를 들으면 부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김경미씨와 같은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은 180만 명(2017년 4월 기준)에 달한다. 경단녀를 연령대 별로 나눠보면 30∼39세가 92만8000명(51.2%)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40∼49세(59만 명, 32.6%), 50∼54세(14만7000명, 8.1%), 15∼29세(14만7000명, 8.1%) 순이다. 경력단절 이유로는 결혼이 34.5%로 가장 많았고, 육아가 32.1%, 임신·출산이 24.9%였다.

경단녀가 늘면서 한국의 남녀 경제활동 참가율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남녀 경제활동참가율은 남성(78.9%)이 여성(58.4%)보다 20.5%포인트 높았다.

이 같은 남녀 간 격차는 35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터키(41.4%포인트)·멕시코(34.9%포인트)·칠레(21.2%포인트)에 이어 4번째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 후반에 75%였던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30대 전반은 62%, 30대 후반에는 58%로 줄었다. OECD 회원국의 30대 전반과 후반 여성의 평균 참가율은 각각 72%, 73%다. 한국은행은 “아이를 맘 놓고 맡길 곳이 부족하고,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가 버거워진 30대 여성이 취업전선에서 물러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경력단절은 출산이나 유아 보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도 직장 여성에게 매우 힘든 시기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돌봄교실이 대부분 오후 5시 이전에 끝나다 보니 아이를 돌보는 데 공백이 생긴다. 직장과 가정에서 전쟁 치르듯 생활하는 여성들은 초등생 자녀 뒷바라지에 지쳐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퇴직한 여성은 2016년 한 해에만 33만2000여 명에 달했다. 경단녀 증가는 사회적으로도 문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여성의 경력 단절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최대 1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LG경제연구원은 여성의 경력단절로 인한 잠재소득 손실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9%로 추정했다.

경단녀, 재취업까지 평균 8.4년 걸려

결혼·출산·육아를 거치며 ‘명함’을 잃은 경단녀들의 사회 재 진출도 만만치 않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는 커지지만 취업 문턱이 높고 취업 문이 좁아서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경단녀가 재취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8.4년(2016년 기준)이다. 경력단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제조업(23.1%)에서 상용직 근로자(81.7%)로서 안정적으로 일했지만, 경력단절 이후에는 제조업에서 일하는 이들은 13.1%로 줄었다. 근로형태도 상용직(45.4%)은 줄고 임시직(24.5%)과 자영업(15.2%) 형태가 늘었다. 일단 경력이 단절되면 이전 경력을 살리지 못하고 저임금·저부가가치 일자리로 유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의 유일한 경단녀 취업 지원 기관인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에도 경력을 살려 일할 수 있는 사무직 업무보다 단순 사무, 조리 업무, 사회 복지, 판매원 등의 업무가 많았다.

소득도 줄어든다. 신한은행이 지난 3월에 발표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30~40대 경단녀들이 재취업했을 때 평균 월급은 170만원으로 나타났다.

경력단절이 없었던 여성의 평균 월급(274만원)보다 100만원이나 적었다. 경력단절 기간이 1년 미만이어도 63만원 적었고, 7년 이상으로 길어지면 127만원 적게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지연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성은 남성보다 근속 기간이 짧고 육아기에 일정 기간 미취업자 상태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어, 직장이동이 임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사실 경단녀 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지자체는 경단녀들이 재취업할 수 있도록 교육 지원을 해왔고, 기업들도 임산부·워킹맘(사회 활동과 가정을 병행하는 여성)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노력도 해왔다.

그러나 30대의 여성 경제활동참여율을 높이기엔 역부족이었다. 형식적이고 허울뿐인 지원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경단녀 문제는 해법없는 고질적인 사회 문제가 됐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막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기 위해 하루 4∼6시간 일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를 장려했다. 당시 삼성·LG 등 10대 그룹은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어 채용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KB국민은행 등도 경단녀를 채용했다.

기업 10곳 중 4곳 “경단녀 채용 부담”


성과도 있었다. 2014년 213만9000명이었던 경단녀 숫자는 2016년에는 190만6000명으로 줄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시간제 일자리처럼 육아·가사를 병행하면서 다시 취업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면서 경단녀가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차별 없는 양질의 여성일자리 확충을 위한 ‘여성 일자리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내년부터 경단녀를 재고용한 기업들은 인건비 세액공제을 받을 수 있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은 각각 해당 인건비의 30%, 15% 세액 공제가 가능하다. 또 내년 하반기부터 ‘다함께 돌봄’(복지부·행정안전부)과 ‘초등돌봄교실’(교육부), ‘공동육아나눔터’(여가부)로 나뉘어 있는 초등 돌봄 체계를 하나로 통합해 전국 지자체에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내년 7월부터는 두 번째 육아휴직자가 남편일 경우 육아휴직급여 상한액을 기존 1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우선 지원의 폭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개선해야 하는 부분도 적지 않아. 바로 일자리 형태다. 우리나라의 일자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되어 있다. 때문에 일자리가 늘어나도 단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은 여전히 경단녀 채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민간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기업 525개사를 대상으로 ‘경력단절여성 채용 부담 여부’에 대해 조사한 결과 40%가 ‘경단녀 채용에 부담 느낀다’고 응답했다. 3년 전 조사 때보다 10%포인트 증가했다.

그 이유로는 ‘가정사로 자리를 자주 비울 것 같아서’라는 답이 59%였다. ‘야근, 출장 등이 어려울 것 같아서’(34.1%), ‘쉽게 퇴사할 것 같아서’(25.5%) 순으로 답했다. 한 중소기업 CEO는 “능력이 좋아도 육아로 인해 업무 시간의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단녀를 선뜻 뽑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가정을 돌봐야 하는 여성들에겐 이런 노동 구조는 매우 불리하다. 때문에 경단녀 재취업을 위해서는 시간선택제 고용을 늘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간선택제는 국내 민간기업에서도 부분적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곳도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시간선택제 도입 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시간선택제를 도입한 이유에 대해 묻자 ‘피크타임 때의 업무를 분산하기 위해(34.3%)’ ‘인력 운영의 효율화를 위해(34.3%)’라는 응답이 많았다.

실제로 스타벅스코리아 같은 대기업을 비롯해 대부분의 시간선택제 도입 기업에서 퇴사율과 이직률은 도입 이전에 비해 절반 미만으로 하락했다. 업계 관계자는 “경력 단절자의 일자리 복귀를 위해 좀 더 안정적인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늘어나야 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시간선택제와 전일제 전환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임신 근로자의 경력 단절 등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유럽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여성의 시간선택제 고용 비중은 25.8%로 매년 상승하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여성 10명 중 6명이 시간제 일자리로 생활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시간선택제 비중 갈수록 늘어

서비스업에만 집중된 한국과는 달리 전문직을 포함해 모든 업종에 시간제 근로가 도입됐다. 네덜란드 대표 은행인 ING에는 3000여 명이 시간선택제로 일하고 있다. 독일은 시간선택제로 일하는 근로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 영국·일본·독일 등은 시간제 일자리 비중을 늘리면서 30~40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늘고 있다.

물론 시간선택제 일자리만이 경단녀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보육 지원과 노동시간에 따른 차별 금지, 양성문화 평등 개선과 같은 대책도 필요하다. 양성평등 문화가 세계 1위인 아이슬란드는 올 1월부터는 세계 최초로 남녀 동일노동·동일임금 인증제를 시행했다. 네덜란드는 지난 1996년 시간제와 전일제 근로자 간 시간당 임금, 휴가기간, 상여금 등에서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는 ‘노동시간에 따른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여성의 43%가 시간선택제로 근무하는 일본은 시간선택제 근로 차별 금지에 나서고 있다.

고용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바꾸거나 인재 육성, 처우 개선을 하는 기업에게는 지원금도 지급한다. 영국도 ‘시간제 근로자법’ ‘일·가정법’ 등을 도입한 데 이어 시간제와 전일제 간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하기 시작했다. 김상우 한국은행 조사국 과장은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중요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유럽 국가들처럼 보육 지원 제도를 늘리고 양성평등 문화를 확산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433호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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