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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가 만난 사람(4)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법정관리 후 회사가 더 단단해졌죠” 

 

이필재
신제품 듀오스팀 ‘대박’ ... 법정관리 조기 졸업은 구조적 효율화 덕

▎사진:원동현 객원기자
“한경희생활과학이 더 단단해졌습니다. 회사가 더 커지고서 이런 일을 겪었다면 진짜 큰일 났을지도 몰라요. 많이 배웠고, 회사의 성장에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경험을 했어요.” 지난 3월 법정관리를 조기졸업한 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 대표는 “이번 위기를 디딤돌로 이제 정말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전 국민에게 죽을죄를 지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정말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회사 같은 가전기업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애프터서비스 등에 대한 우려로 매출이 급감합니다. 그런데 ‘한경희 그 회사가 어렵다는데 내가 물건을 사줘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고객이 적지 않았어요.”

한 대표는 “자금 운용을 위해 잘나가는 제품 위주로 공급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제품 공급이 원활치 못해 매출이 줄기는 했지만 고객들이 외면한 탓은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386세대의 일원으로 저 나름으로는 이상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비즈니스의 세계는 이상주의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워요. 법정관리를 겪으면서 이상을 버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성적인 경영을 하는 그런 기업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가지 더, 기업은 고용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 사회에 엄청난 기여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소비자와 협력사의 신뢰 무너지지 않아

한경희생활과학을 좋은 회사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인가요?

“회사의 구성원이 저마다 자기 인생에서 성공하는 그런 회사입니다. 모름지기 기업은 구성원이 업무에서 보람을 느끼고 가정적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CEO가 회사를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구성원에게 급여를 제대로 줄 수 있어야죠. 지속적인 성장이 없는 기업은 저는 차츰 사망해가는 거라고 봅니다. 기업 경영의 현장은 한 순간도 나태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되는 치열한 전장이에요.”

기업회생절차를 조기에 졸업한 나름의 비결이 뭔가요?

“회사를 구조적으로 효율화한 것입니다. 회사의 펀더멘털 자체가 나빴던 건 아니거든요. 소비자와 협력사의 신뢰 덕도 컸고요. 회생절차에 들어간 기업은 잘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회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기업회생 과정에서 이른바 구조조정을 얼마나 했나요?

“회생절차 개시 전 약 100명이었는데 그 절반 수준인 50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익이 나더군요. 회생절차는 말하자면 지속가능성 위기에 처한 기업이 재기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는 회사가 어려울 때 자기 발로 떠난 사람들 말고 어려웠던 회사 형편 탓에 타의로 떠난 사람들과는 언젠가 다시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경희생활과학은 얼마 전 ‘듀오스팀’이라는 새 제품을 내놓았다. 무릎 꿇고 손걸레질하는 나라에 ‘서서’ 청소하는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이 회사가 개발한 ‘스탠드형’ 다리미로 세탁소에서 쓰는 압력식 다리미를 가정용으로 개발한 것이다. 기존의 스탠드형 다리미와 달리 칼주름을 잡을 수 있고 강력한 분사력으로 두꺼운 청바지도 쉽게 다릴 수 있다. 그는 “스팀은 우리 회사가 가장 자신 있고 전문성을 확보한 기술로, 듀오스팀은 옷 한 벌을 1~2분이면 다릴 수 있는 스팀 다리미의 완결판”이라고 말했다. 이 제품은 홈쇼핑에서 론칭한 날 추가 물량까지 ‘완판’됐다. “회생에 들어간 기업이 새로운 도약을 하려면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개발해야 돼요. 그래서 이번에 듀오스팀으로 압력식 다리미라는 새 시장을 창출했는데 고객 만족도가 높아 200만대 이상 팔릴 거로 봅니다.”

이어서 시장에 선보일 비장의 무기가 뭔가요?

“전기 레인지, 의류 건조기 등입니다.”

‘외도’ 아닌가요?

“한경희는 다이슨처럼 청소기 회사가 아닙니다. 주부와 가족에게 꼭 필요한 제품을 내놓아 주부의 삶의 질을 높이는 회사죠. 주부의 머릿속 생각만으로 존재하는 제품을 눈앞의 현실로 구현하는 게 저희 회사의 비전이자 경쟁력이죠.”

법정관리를 통해 얻은 교훈이 뭔가요?

“신규사업에서 적자가 났지만 주력 제품은 여전히 잘 나가 곧 좋아질 거라 생각한 게 패착입니다. 이익이 나는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는 한 흑자도산의 가능성은 어느 기업도 배제할 수 없어요. 그래서 새 사업에 투자를 할 땐 사전에 투자액과 기한을 정해 그 한도를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새 사업이라고 절대 목숨 걸 듯 올인하면 안 돼요. 기한까지 이익이 안 나면 손절매 하듯이 사업을 접어야 합니다. 또 외부와의 계약 때 책임을 질 수 있는 문서가 아니면 CEO가 절대 사인을 하면 안 됩니다. 서류 작성을 신중하게 해야 돼요. 말은 사라지고 서류만 남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기술력과 고객 기반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지난해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했었다. 당시 고소인은 그가 회사채를 발행해 8억여원을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그 후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로 종결됐다. 법정관리는 이 과정에서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그는 “사기는 오히려 제가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정의가 이긴다’는 신념으로 한 번도 회사를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직원들도 제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은 게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문제는 우리 법제도 하에서는 사기를 당하고도 저처럼 사기꾼으로 몰릴 수 있다는 거예요. 아니 어쩌면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여봐란 듯이 경영을 잘해 저희 회사가 잘되는 게 그 억울함을 푸는 길이라고 스스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사기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사기 백과사전’을 펴내고 싶다고 말했다. “사기는 보통 신뢰하는 사람에게 당합니다. 그래서 사기를 당하면 정신이 피폐해지고 대부분 재기 불능 상태에 빠져요. 경제적 피해 못지않게 정신적 피해가 크다는 거죠. 엄청난 스트레스 탓에 암에 걸리거나 피해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요. 그런 피해를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당하지 않도록 돕고 싶어요. 사기 사건은 흑백으로 나누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사기 백과사전을 낸다면 쌍방의 입장을 다 다루려 합니다. 중요한 건 문서만 남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절대 아무 문서에나 도장을 찍으면 안 됩니다.”

“여성들 위해 ‘사기 백과사전’ 펴내고 싶다”

그는 앞으로 재고 부담이 큰 홈쇼핑보다 1 대 1 대면 판매 등 직접 유통과 렌털 사업에 치중하겠다고 밝혔다. “6월께 수도권에서 직판 유통을 시작해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렌털 시장은 지난 4~5년 급속도로 성장했고 어느 정도 안정화됐다고 봅니다. 소비자들의 인식도 좋고요. 렌털 사업의 비중을 장차 20% 이상으로 키우려 해요.”

채무 상환은 어떻게 하나요?

“인가를 받은 회생계획안엔 10년에 걸쳐 상환을 하게 돼 있습니다. 착실히 갚아 나가겠지만 가급적 5년 안에 상환하려 합니다.”

1433호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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