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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지정에 ICT업계 다시 논란] “덩치 크다고 재벌과 똑같이 취급하나?”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카카오·네이버·넥슨에 이어 넷마블도 지정...공정위 “법 지키면 사업에 지장 없어” 반박

▎5월 2일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신규 기정된 넷마블의 방준혁 이사회 의장. 사진은 방 의장이 지난해 1월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회사 실적과 해외 시장 진출 계획 등을 설명하는 모습.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5월 2일 게임회사 넷마블을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으로 신규 지정했다. 공정위 집계에 따르면 넷마블 자산총액은 5조7000억원. 이에 따라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 의장은 총수(동일인)로 지정됐다. 넷마블은 지난해 상장으로 2조7000억원 규모의 자금이 유입돼 올해 자산총액이 처음으로 5조원을 넘었다. 이로써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인 중 김범수 카카오 의장,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김정주 넥슨 의장, 방준혁 넷마블 의장이 총수에 이름을 올렸다. 카카오는 2016년, 네이버와 넥슨은 2017년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지정됐다. 이들 기업은 공정위 지정에 공식적으로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4개 기업 중 한 곳의 관계자는 공정위가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법률이 아닌 자의적 판단으로 총수를 지정한 데 불만을 표시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승계를 했던 IT 창업자도 없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었는데, 기업 덩치가 커진다고 기존 재벌과 동일해지는 거라면 왜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공정위가 총수 지정 요건을 법률로 정하고 제재 대상 기업 카테고리를 세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기업집단국 육성권 기업집단정책과장은 “(제재가) 공시하고 사익편취 정도인데 법을 위반하지 않으면 사업상 어려움이 발생하진 않는다”고 반박했다. “동일인(총수) 지정 기준 구체화와 관련해서는 전문가 자문을 받았다. 기업들의 지배형태가 다양하므로 이를 법으로 규정하면 오히려 경제현실과 괴리가 생기고 불명확성을 초래할 수 있다.”

총수 지정은 공정위가 ‘대기업집단 정책의 기준점’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총수의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가 곧 대기업집단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수 지정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건 삼성과 롯데의 총수가 각각 이재용, 신동빈으로 변경된 사항이었다. 그만큼 총수 지정은 민감한 문제다.

총수 지정 피하려던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공정위는 이번에도 자산 5조원 이상의 기업 60개를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자산이 10조원이면 순환출자가 금지된다. 자산 규모는 카카오가 8조5000억원으로 39위, 네이버가 7조1440억원으로 49위, 넥슨이 6조7210억원으로 52위 그리고 신규 진입한 넷마블이 5조6620억원으로 57위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의 핵심은 동일인 지정이다. 민간기업의 경우 총수라고 하는 이 동일인과의 관계에 따라 계열사, 사익편취 등이 판가름 난다. 총수는 계열사가 각종 공시·신고 의무를 위반하면 함께 고발될 수 있다. 계열사들은 기업집단 현황 공시,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비상장회사의 중요 사항 공시, 주식소유현황 신고를 해야 한다. 총수로 지정되면 6촌 이내를 일가로 묶고 일감몰아주기를 포함해 각종 사익편취 규제가 적용된다.

논란은 지난해 네이버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되면서 벌어졌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당시 공정위를 직접 찾아가 자신이 총수가 아니라고 소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네이버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 직원들은 기본적으로 관심도 없지만 자신들이 대기업에 다닌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며 “이해진 의장도 사내에서 전용 엘리베이터도 없고, 직원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다 내리고 나서야 이 의장을 발견한 적도 있을 정도로 재벌 총수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또 “재벌이라면 승계 작업을 떠올리는데 벤처 1세대 창업자들은 기본적으로 그럴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정하는 이유는 승계나 직장 문화를 규제하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불공정한 거래를 막는 것이다. 공정위도 어떤 종류의 기업이든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그에 맞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규제가 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며 이미 지정된 카카오·네이버·넥슨이 총수 지정 이후에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게 공정위 측의 설명이다.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는 올해도 총수로 지정됐다. 공정위 측은 “일부 지분을 팔았다고 해서 이해진 창업자의 영향력이 줄어든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네이버는 ‘임원 독립 경영’을 인정받아 휴맥스 계열을 네이버에서 분리시켰다.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휴맥스의 창업자인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이다. 공정위는 보도자료에서 “올해 4월 시행령 개정으로 임원 독립 경영 인정제도가 시행된 이후 네이버가 최초로 이를 신청했고, 요건 충족 여부를 심사해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시장의 불공정한 거래 막는 게 목적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는 1981년 경제기획원 산하 기관으로 출범했다. 1990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사무를 시작하고, 1994년에는 국무총리 소속 기관으로 개편되면서 소비자 보호 업무도 이관 받았다. 매년 공시대상기업집단을 발표하는데 이때 자산의 증감에 따라 등수가 바뀌기 때문에 재계 서열을 매기는 기관인 셈이다. 공정위가 힘이 센 이유는 전속고발권과 과징금부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가 적발되더라도 공정위의 고발이 없으면 검찰 수사가 시작되지 않는 게 전속고발권이다. 2014년엔 공정위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감사원장, 중소기업청장, 조달청장에게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고발 요청권을 부여했다. 이들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는 해당 사건을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과징금을 자체 조사해 부여하는 것도 공정위의 강력한 무기다. 과징금 규모도 막대하다. 공정위는 2016년 미국 퀄컴이 독과점적 시장 지위와 특허권을 남용했다며 1조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외환위기 직후 직권조사권으로 대기업들에 과징금을 매기던 공정위의 조사국은 2005년 폐지되기 전까지 맹위를 떨쳤다. 김상조 현 공정거래위원장은 부임 전부터 주장해온 조사국 부활을 지난해 사실상 관철시켰다. 과거 조사국의 권한을 지난해 신설한 기업집단국에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공시대상기업집단을 발표한 곳이 기업집단국이다.

[박스기사] 새로 지정된 넷마블은 어떤 회사? - 퍼블리싱 개념 도입하고 모바일로 대박

넷마블은 2000년 방준혁 의장이 창업한 게임회사다. 방 의장은 당시 한 개 회사가 한두 개의 주력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고 운영하던 방식을 ‘퍼블리싱’이라는 개념으로 흔들어놓았다. 게임 퍼블리싱 기업은 외부에서 만든 여러 게임을 가져와 이를 유통하는 회사다. 예를 들어 스포츠 게임 퍼블리싱 회사라면 게임을 직접 다 만들지 않고 야구 게임 전문 개발회사, 축구 게임 전문 개발회사에 개발을 맡기거나 사오는 식이다. 지금은 일반화된 방식이다. 넷마블은 게임 포털의 이름이기도 하다. 방 의장은 2004년 CJ에 지분 대부분을 800억원에 매각한다. 2년 후에는 넷마블을 퇴사했다. 넷마블은 CJ E&M의 게임 부문이 됐고, 이후 흥행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2011년 CJ 측은 방 의장을 재영입해 넷마블 경영을 맡겼다. 방 의장은 경쟁사들이 여전히 온라인 게임에 치중하던 당시 모바일 게임으로 눈을 돌리고 ‘모두의 마블’ 등 히트작을 내놓는다. 방 의장은 CJ로부터 넷마블을 물적분활해 1대 주주가 된다. 방 의장은 2017년 5월 넷마블게임즈를 상장시켰다.

1434호 (201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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