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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1년 경제정책 평가해보니] 소득주도 성장 정책 효과 미미 지적 

 

하남현·박진석·심새롬 중앙일보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세계 경제성장률과 격차 벌어져...산업 경쟁력 강화, 규제 완화도 부족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월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한국경제학회와 한국금융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한국 경제의 회고와 전망’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문재인 정부 1년 간 시행된 경제 정책 중 최악의 정책으로 꼽혔다. 이와 달리 ‘갑질 근절 등 공정거래 정책’은 최고의 정책으로 선정됐다. 중앙일보가 경제 전문가 40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 간의 경제 정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조사 결과 ‘최저임금 급격 인상’이 29%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최악의 정책에 선정됐다. ‘공무원 증원 및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소득세 및 법인세율 인상’이 19%씩을 얻어 그 뒤를 이었다. 16.4%인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의 적정성에 대해서도 40명 중 19명이 “다소 높았다”, 15명이 “과도하게 높았다”고 답했다. 최고의 경제정책으로 뽑힌 ‘프랜차이즈 갑질 근절 등 공정거래 정책’도 29%의 득표율을 보였다. ‘한·미 FTA 재협상 등 통상 정책’과 ‘부동산 시장 규제 강화’가 각각 13%씩을 얻어 공동 2위에 올랐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최악의 정책

한국 경제의 리스크 요인으로는 ‘고용 악화’ ‘미·중 무역전쟁 등 통상 환경 악화’(이상 14%), ‘법인세 인상 및 기업경영 규제 강화’ ‘가계부채 심화’ ‘미진한 노동시장 개혁’ ‘저출산’(이상 13%) 등이 지목됐다. 앞으로 정부가 중점을 둬야 할 경제 과제로는 ‘일자리 창출’과 ‘규제 완화 및 성장정책’이 18%씩으로 가장 많이 꼽혔고 ‘노동시장 개혁’이 16%로 뒤를 이었다. 설문조사 대상자들에게 지난 1년 간의 경제 정책을 1점(최하)~10점(최고) 사이의 점수로 평가해 달라고 요청한 결과 평균 5.76점이 나왔다. 6점이 12명으로 가장 많았고 최고점은 8점(3명), 최저점은 3점(1명)이었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반올림해서 58점이다. 전문가의 주관적 견해라곤 하더라도 최소한 경제 운용에서 만큼은 아쉬움이 컸다는 얘기다. 표학길 서울대 명예교수는 “생산성이 가장 낮은 공공부문에 정부 예산을 배정했고 성장잠재력 회복이나 투자 활성화를 등한시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 3.1%다. 2014년 이후 3년 만에 3%대 성장을 회복했다. 올해 1분기 성장률도 전 분기 대비 1.1%로 양호한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1년을 맞아 경제 정책의 성과를 묻는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이 지표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세계 경기와 비교하면 그리 좋은 성적표가 아니어서다. 2014년 한국과 세계 경제 성장률은 3.3%로 같았다. 이후로 한국의 성장률은 줄곧 세계 경제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이 격차는 더 벌어졌다. 2016년에는 0.4%포인트(한국 2.8%, 세계 3.2%) 차이가 났는데, 지난해는 격차가 0.7%포인트(한국 3.1%, 세계 3.8%)였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정책의 성과가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 저조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핵심인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지난 1년 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얘기와 같다. 소득주도 성장은 수출·대기업 주도의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취약계층의 고용과 소득을 끌어올려 소비를 늘리는 방식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개념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대표적인 정책이다. 하지만 2, 3월 취업자 증가수가 두달 연속 10만 명대에 그치는 등 고용 수준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얼어붙은 민간 소비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올 1분기 민간소비는 전 분기보다 0.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증가율로는 4분기 만에 최저치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양극화 및 이중구조가 구조화돼 있는 상황에서 저임금계층의 소득이 실질적으로 늘지 않고, 오히려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성장률 계속 밑돌아


그나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년 간 한국 경제를 지탱한 건 수출과 반도체 등 일부 제조업이다. 비록 4월에 1.5% 줄며 주춤하긴 했지만 한국 수출은 지난 3월까지 18개월 연속 증가하며 3%대 성장을 견인했다. 수출은 대외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세계 경제가 호전되며 교역량이 늘어난 게 한국 수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지난해 전체 수출의 17.1%를 도맡았다. 올 1~4월 이 비중은 20.1%를 도맡았다. 반도체가 이끈 수출 호조가 소득주도 성장 위주 경제 정책의 실패를 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효과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산업 정책은 부재하고 법인세율 인상 등의 정책으로 기업의 경영 환경을 악화했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미국 등 주요국이 법인세율을 경쟁적으로 내리며 자국으로의 투자 유치 및 고용 증가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한국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복지를 무분별하게 늘리고 재원 조달을 위해 법인세율을 인상하며 기업의 투자 위축을 초래했다”라고 말했다. 규제 완화 수준도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정책이 경제구조 및 산업환경의 세부적인 다양성을 투영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라며 “산업·노동 환경 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획일적인 규제 등으로 인해 정부의 산업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향후 경기 전망은 불투명하다. 이미 일부 지표에선 경고등이 켜졌다. 3월 전체 산업생산은 전달보다 1.2% 떨어졌다. 2006년 1월(1.2% 감소)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무엇보다 수출 호조에 기여했던 세계 경제의 호황세가 잦아들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 경제의 확장 국면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여기에 내년 중국 내부의 구조조정이 글로벌 경기 침체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규제 완화와 성장에 집중해야

특히 현재의 정책이 지속할 경우 부작용이 쌓여 향후 한국 경제에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있었다. 설문에 참여한 응답자 40명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복수 응답 가능)로 통상환경 악화(17명)와 함께 고용시장 악화(17명), 법인세 인상 및 기업 경영 규제 강화(16명), 미진한 노동시장 개혁(15명) 등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성장 정책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응답자의 절반인 20명은 향후 정부가 중점을 둬야 할 경제 정책(복수응답 가능)으로 ‘규제 완화 및 성장 정책’을 꼽았다. 노동시장 개혁(18명)과 같은 구조적 문제 해결에도 힘써야 한다는 진단이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일자리 창출, 소득 증대를 위해서도 성장 엔진의 재점화는 필수 불가결하다”고 말했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에 대한 규제를 줄여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방선거 이후에는 노동개혁·연금개혁 등 ‘비인기 정책’도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스기사] 부동산 정책 따져보니 - “대출규제 잘해” 45% “재건축규제 잘못” 38%

“요즘에는 하루에 전화 1~2통 받기가 힘들어요. 집을 팔려는 사람도 사려는 사람도 확 줄었습니다.” 서울 잠실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소 대표의 얘기다. 지난 5월 3~5일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 있는 10여 곳의 공인중개소에 문의했지만 답은 비슷했다. 지난 1년 간 ‘다주택자·강남·투기’와 전쟁을 벌였던 문재인 정부가 고전 끝에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강도 규제를 비웃듯 치솟던 강남권 집값이 4월 들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다. 강여정 한국감정원 주택통계부장은 “8·2 부동산 대책과 가계부채 종합대책 등이 순차적으로 정책 효과를 나타내면서 부동산시장이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부동산시장 안정과 실수요자 보호를 정책 목표로 내걸고 여섯 차례 대책을 내놨다. 특히 8·2 대책에서는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규제를 총동원했다. 투기과열지구 부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시행, 다주택자 양도세 부과 등 굵직한 규제만 14개였다. 10·24 가계부채 대책 때는 다주택자와 갭투자자를 겨냥한 신(新)총부채상환비율(DTI)과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도입을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을 억누를수록 용수철 효과가 나타났다. 강남 재건축·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급등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 4월까지 강남 4구의 주택 매매 가격 상승률은 9.66%다. 1년 새 30% 안팎 오른 아파트도 많았다. 같은 기간 전국 상승률은 1.67%였다. 강남 집값은 4월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고 나서야 진정되는 분위기다. 지난 1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성과에 대해 설문에 응한 경제 전문가 40명의 견해는 엇갈렸다. ‘보통’으로 평가한 응답자가 17명(42.5%)으로 가장 많았다. ‘매우 만족’(1명)을 포함한 ‘만족’은 11명(27.5%)이다. ‘매우 미흡’(3명)을 포함해 ‘미흡하다’는 응답은 12명(30%)이었다. 잘한 부동산 정책으로 응답자 중 18명(복수응답)은 DSR 등 대출 규제를 꼽았다. 다음은 공공임대주택 확대(17명),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15명) 순이었다. 잘못한 정책으로는 재건축 규제(15명)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은 양도세 중과(11명), 청약제도 개편(8명) 순이었다. 청약 가점제 확대로 무주택자의 분양 주택 당첨 비율이 90%대로 높아진 것에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공공주택 100만 가구 공급 등 주거복지정책도 방향을 잘 잡았다는 평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팀장은 “갭투자 등 투기적인 가수요를 시장에서 걷어냈다는 부분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도한 분양가 통제로 로또 아파트를 양산하고 재건축 규제로 서울이나 강남 등 특정 지역 가격만 오르는 쏠림현상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많다. 수요 억제책이 장기적으로 공급 부족을 일으켜 향후 집값이 재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향후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설문 응답자 40명 중 26명이 주택 공급 확대를 꼽은 이유다. 특히 서울과 지방 간 부동산 시장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 실장은 “지방 주택시장의 경착륙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김태윤·황의영 중앙일보 기자

1434호 (201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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