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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어쩌다 돈 좀 벌었다고 우쭐대지 말라 

 

서명수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
통제의 환상과 ‘늑대의 그림자’…주식 관련 지식 쌓이면 부풀어 오르는 낙관주의

기원 전 6세기 그리스의 노예 이솝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이솝 우화]는 인간의 심리를 동물의 행동에 투영한 우화집니다. 이솝은 정글의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약자가 살아남는 비법을 번득이는 재치로 풀어내고 있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은 이솝 우화의 “숲 속의 두 마리 새보다 손 안의 한 마리 새가 낫다”를 인용하며 비효율적 숲 이론을 제시했다. 투자자 행동과 관련이 있는 이솝 우화 이야기를 읽으며 성공 투자의 길을 모색해본다.


▎사진:© gettyimagesbank
푸른 초원의 저녁. 저물어 가는 태양은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 때 늑대 한 마리가 들판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늑대는 부드러운 저녁 바람을 맞으며 평화로운 산책을 즐겼다. 그러다가 문득 땅위에 길게 드리운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 그림자는 마치 사슴처럼 긴 다리와 황소처럼 커다란 덩치와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 어떤 동물도 그보다 더 용맹하고 씩씩한 모습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의 우람한 몸집 좀 봐. 이 정도 몸집이라면 사자도 결코 무섭지 않아. 나라고 동물의 왕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사자도 이런 그림자는 갖지 못할 거야.” 늑대는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전혀 없다는 기분이 들어 의기양양한 태도로 들판을 걸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사자가 잘 다니는 길목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잔뜩 자만심에 부푼 늑대는 지금 당장 사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 바로 그때 사자가 나타났다. 사자는 늑대의 그림자를 보고 달아나기는커녕 엄청난 힘으로 늑대를 단숨에 쓰러뜨리고 말았다.

가끔 자기 나름대로 기업을 분석한 자료라며 해당 주식을 사보라고 말하는 후배가 있다. 가치가 높은 주식인데 주가가 저평가돼 있으니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물론 이런 권유는 시장이 좋을 때만으로 국한된다. 시장이 내리막길일 때 그는 잠수모드로 바뀐다. 이 후배의 분석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몸 담은 직업이 주식과 상관이 없고 금융상품과 관련한 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주식 매매를 업으로 하는 전문가보다 투자를 잘한다고 자랑한다. 후배는 어째서 위험한 주식시장에서 우화의 늑대처럼 자만에 빠지게 된 것일까.

과잉 낙관을 부르는 통제의 환상

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할수록 경솔한 태도를 보인다. 심리학에선 이를 ‘통제의 환상’이라고 한다. 통제의 환상은 사람들이 자신을 통제할 수 있거나 외부환경을 자신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사기꾼은 이런 심리를 파고들어 순진한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간다.

2013년에 출간된 베스트셀러 [감정독재]의 저자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여러 가지 예를 들어 통제의 환상에 대해 설명했다. 예컨대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 1등이 많이 나온 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그간 나온 당첨번호를 분석하는 등 다양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하버드대학 심리학자 엘렌 랑거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직접 선택한 번호의 로또를, B그룹의 사람들에게는 기계에서 자동 선택된 로또를 각각 1달러어치씩 사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참가자들에게 “이웃 사무실에서 꼭 로또를 사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남은 로또가 없다. 혹시 로또를 팔 생각이 있는지, 판다면 얼마에 팔고 싶은지 적어 달라”고 말했다. 자동 선택된 번호의 로또를 구매한 B그룹은 약 19%가 팔지 않겠다고 답한 반면 자신이 선택한 번호의 로또를 구매한 A그룹의 사람들은 B그룹의 2배 수준인 39%가 팔지 않겠다고 했다.

이렇듯 큰 차이를 보인 것은 기계에서 나온 숫자보다는 자신이 직접 선택한 숫자의 당첨 가능성이 클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인데, 자신이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게 바로 통제의 환상이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에서 투자자가 통제의 환상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주식투자자들도 대부분 자신이 보통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만한다. 그렇지 않다면 주식투자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쁜 일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모든 상황을 맘 먹기에 따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이런 투자자들에게 기술적 분석이나 종목 분석은 통제의 환상을 부추기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래서 관련 지식을 쌓아갈수록 통제의 환상이 심해져 시장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하고 돈을 벌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사실 기술적 분석이니 종목 분석이니 하는 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 대상이다. 가치투자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주가수익비율(PER)만 해도 이미 기업이 일궈낸 순이익이 바탕이 된다. W형·이동평균선 따위도 주가가 지나온 발자취다. 이들 지표는 주가의 앞날이 미리 결정된 것처럼 보이게 해 투자자가 미래의 시세를 알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제 투자자는 모든 걸 통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욕망에 불을 지른다. 욕망은 증시가 호황일 때, 그리고 어쩌다 투자한 주식이 올랐을 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러다 있는 재산을 다 날리고 한숨의 나날을 보내는 투자자가 셀 수 없이 많다. 주식으로 돈 벌었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주가 변동은 우연한 사건이다. 과거의 흐름이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 현재의 주가도 과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금리 하락, 재난, 전쟁, 악천후, 선거 결과 등 증시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건은 현재의 작품이다. 기술적 분석이나 종목 분석으론 답을 얻지 못하는 변수다. 결국 투자의 성패를 판가름 하는 것은 주식시장에 관한 지식의 해박함이 아니다. 투자자의 시장에 대한 공포와 탐욕, 그리고 매매행태가 지금의 주가를 좌우한다고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펀드매니저의 투자수익률이 개인투자자보다 좀 더 높다. 주된 이유를 알고 보면 그들이 개인보다 전문 지식이 더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개인이 빠지기 쉬운 심리적 함정에서 한걸음 물러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펀드매니저는 상대적으로 장기 투자를 하므로 시장 상황에 일희일비 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개인들은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며 단기 승부를 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한 증권사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개인들이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이용해 단타하기 전후의 투자수익률을 보면 HTS 사용 전에는 연평균 -0.06% 였지만 HTS 사용 후에는 놀랍게도 -30.72%라는 쪽박 수준의 투자수익률이 나왔다고 한다.

개인들을 단타매매에 빠지게 한 HTS

이처럼 기술적 분석과 종목 분석을 용이하게 해 주식매매의 과학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은 HTS가 아이러니하게도 투자를 망치는 괴물로 둔갑했다. 이건 HTS가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개인의 문제로 봐야 한다. 투자자는 주식과 관련한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 자만에 빠지기 쉽다. 이는 주식매매에서 과잉 낙관을 불러일으켜 경솔한 판단을 하게 돼 잦은 매매를 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거래가 잦아지면 수익률도 수익률이지만 수수료 등의 비용 발생을 늘려 결국 전체 실질 수익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개인들은 투자 실패를 최소화하려면 자신이 주식시장에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주식 관련 공부를 좀 했다고 해서 통제의 환상에 빠져 자신이 마치 고수가 된 양 함부로 투자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1437호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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