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블록체인으로 행정도 바꿀 수 있을까?] 지자체보단 선거제도 혁신에 유용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IBM 설문에서 10개 나라 중 9곳 “연내 행정에 일부 도입”…시범 도입한 서울시는 검토 중

▎사진:© gettyimagesbank
19세기 중반 미국 철도회사·정유회사들은 독점과 담합을 통해서 월가 투자자들을 만족시켰다. 세금도 잘 걷히니 정부도 굳이 막을 필요는 없었다. 철도회사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가격 담합을 하면서 수익은 극대화됐고, 오히려 철도회사가 난립하는 이유가 됐다. 결국 철도회사들은 줄도산 했고 1873년 미국 금융 공황의 원인이 됐다. 이후 미 정부는 이들 기업을 고소했고 의회는 독점금지법을 만들었다. 독점과 담합의 정의는 최근 들어 다시 바뀌고 있다. 2014년 월스트리트저널은 ‘독점의 경제학’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스타트업 기업들은 경쟁의 규모를 축소해 시장을 지배하는 것처럼 포장한다”며 이들을 ‘독점을 하지 못한 시장의 실패자들’로 묘사한 듯한 보도를 했다. 이들의 독점과 담합은 과거완 다른 방법으로 진행된다. 앞선 기술, 공격적 경영, 투자로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물리치면서 마이크로소프트·구글과 같은 사실상의 독점 기업이 늘어나게 됐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도 비슷한 과정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암호화폐에 관한 규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암호화폐 매매가격은 폭락을 거듭했다. 한국 정부의 규제 강화 의지가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은 키우고 암호화폐 시장은 진정시키겠다고 밝히곤 했다. 그러나 정부는 암호화폐가 도박판과 다름 없다고 비난하던 입장에서 선회했다. 지난 2월 20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규제 강화가 아니라 정상적인 거래가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암호화폐·블록체인을 바라보는 확정된 시각은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제화가 없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지난해 11월 블록체인 시험 도입

각국 정부는 블록체인을 행정에 활용하는 데는 무척 진취적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자사 경제 예측 전문 리서치 회사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IBM과 지난해 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각국 정부 기관 10곳 중 9곳이 연내 금융거래 관리, 자산 관리, 계약 관리 및 규정 준수 등에 블록체인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도입한 곳도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블록체인을 시범적으로 도입해 시험 중이다. 서울시 블록체인팀 관계자는 “(블록체인을 행정에 도입해) 어떤 부분이 개설될지는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며 “5월에 본격적으로 블록체인 컨설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블록체인 기반 시정혁신을 위한 정보화전략계획 수립’ 사업은 삼성SDS가 수주했다. 두바이 정부는 2020년까지 블록체인에 기반한 행정을 구현할 계획이다. 공과금 납부, 비자 발급, 자격증 갱신 등에 쓰겠다는 계획이다. 시정부는 이를 통해 연간 최대 15억 달러가 절약될 것으로 기대한다. 에스토니아의 사례는 많이 알려져 있다. 에스토니아는 이미 2008년 블록체인을 행정에 도입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선정했고, 2012년부터 실제 블록체인 상에서 일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주민등록증 체계인 ID-Kaarts가 대표적이다. 미국에선 주정부 차원에서 블록체인 도입이 이뤄지고 있다. 일리노아주는 출생증명서와 주민증 시스템에 블록체인을 도입할 계획을 발표하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미 국방부와 정보기관들도 블록체인에 공개적으로 관심을 표하고 있지만, 이는 해킹이 불가능한 암호 전달 시스템 개발이라는 한정된 영역이다.

중앙정부가 아직도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관해 색안경을 쓰고 주시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장에 도전하는 예비 후보들은 지역에서 통용되는 암호화폐를 만들겠다거나 블록체인을 행정에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지역 기반 암호화폐를 만들 수 있고 행정 서비스를 블록체인 상에서 구현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대표적인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기반 기술이다. 비트코인은 과거의 거래 내역 등 원장을 모두 암호화 해 한 블록에 담는데 이 내역은 중앙화 된 서버에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분산돼 보관되므로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참여자들은 이 내역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끊임 없이 각자가 지닌 블록을 대조해 보는 방식으로 신뢰를 확보한다. 그런데 거래내역, 수정, 이체 등의 내용을 담게 될 블록은 꾸준히 생산(채굴)돼야 하기 때문에 이 블록을 만드는 보상으로 채굴자들은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받게 된다. 이처럼 자율 참여와 보상 그리고 분산화로 이루어진 것을 퍼블릭(공개형) 블록체인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허가된 사람들만 원장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을 프라이빗(폐쇄형) 블록체인이라고 한다.

정부가 블록체인을 도입한다는 건 토지대장·주민증 등 온갖 행정 서비스를 블록체인 상에 올려 이를 공개하고 분산해서 보관하겠다는 얘기다. 또한 중앙은행이나 지자체가 지역 내에서 화폐처럼 쓸 수 있는 암호화폐를 만들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공약을 내세운 후보들도 많다. 박원재 정보화진흥원 수석연구원은 “정부 서비스는 대부분 정보시스템에 기반해 제공되는 데 서비스 제공의 안정성 확보, 정보보호 등을 위해 상당한 자원이 투입되고 있다”며 “블록체인을 도입하면 보안에도 도움이 되고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을 절감하며 정보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어 서비스의 질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스마트시티 사업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워

블록체인을 행정에 도입하면 비용 절감, 신뢰 확보와 같은 효과와 함께 작은 정부가 실현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블록체인 기술 서비스 기업인 에피토미씨엘의 정유표 기업윤리담당 이사는 “양적인 측면에서 행정 비용의 절감, 질적인 측면에선 대국민 신뢰도가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직무의 공무원도 필요 없게 돼 정부 조직도 지각변동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방선거를 노리고 잇따라 블록체인을 도입하겠다는 지자체장 후보자들이 간과하는 게 하나 있다. 선거야 말로 우리가 공공영역의 블록체인 도입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대표적인 개혁 대상이라는 점이다. 사단법인 코드 이사장인 윤종수 변호사는 “(블록체인을 선거에 도입하면) 분명 장점이 있다”며 “공적 영역의 ID와 블록체인상의 ID를 연결하면 어디서든 투표가 가능하고,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며, 검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원재 수석연구원도 “선거비용이나 공정성의 관점에서 블록체인이 선거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달리 블록체인 기반의 선거 시스템에도 약점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윤종수 변호사는 기술에 익숙지 않은 유권자들의 투표를 방해하는 장벽이 될 수 있고 비밀투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유표 이사는 평등선거와 비밀선거라는 원칙이 퍼블릭 블록체인 상의 익명성 때문에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부터 블록체인을 활용한 시정을 연구 중인 서울시는 “블록체인의 최대 장점인 투명성에 초점을 맞춰서 시정을 혁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신도시급으로 조성하기로 한 스마트시티에도 블록체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아직 기획도 안 됐다. 과제는 상반기에 결정되고, 지역 선정 공고는 하반기에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단 블록체인을 행정에 도입하려는 시도 자체는 아직 중앙정부에는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블록체인은 인프라에 속하기 때문에 이를 도입할 경우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1438호 (2018.06.18)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