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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근로시간 단축 현황은] 유럽의 주 30시간 “하루 8시간도 길다” 

 

허정연 기자 jypowr@joongang.co.kr
경영위기 극복 수단에서 워라밸 실현까지… 일본, 인구구조 변화에 주 4일제 도입 시도

“나 같은 중산층도 일자리를 잃으면 아무 대책이 없어. 잘리지 않으려고 휴일에도 죽어라 일할 수밖에.” 미국 시카고에서 로펌을 운영하는 변호사 토머스 게이건은 저서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에서 이렇게 푸념한다. 그러면서 1년에 6주의 휴가가 보장되는 독일인의 삶을 부러워한다. 독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휴가가 가장 긴 나라 중 하나다. 신입사원의 법정휴가 기간이 24일부터 시작한다. 이와 달리 독일 직장인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363시간(2016년 기준)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적다. 독일은 1967년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이후 1995년부터 전 산업군에 걸쳐 주 38.5시간 근무제를 시행했다. 특히 제조업 직군인 금속·철강산업의 경우 주 35시간의 근로시간을 적용했다. 일하는 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 사람이 어떻게 가장 긴 휴가를 즐길 수 있을까.

독일 근로자는 업무시간을 저축할 수 있다. 일명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다. 회사와 계약한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한 만큼의 시간을 저축해 뒀다가 휴가 등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제도다. 하루 8시간 일하기로 한 직원이 어느날 10시간을 일했다면 2시간은 계좌에 저축한 것이다. 반대로 휴가를 미리 쓰고 나중에 그만큼 시간을 더 일하는 ‘마이너스 계좌제’도 있다. 초과 근로를 임금이 아닌 휴가로 보상하는 셈이다. 독일 전체 기업의 절반가량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기업의 경우 90%가 시행한다. 독일 노동법은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1일 근로 8시간을 넘기면 안 된다고 명시한다. 그렇지만 1주간 최장 근로시간은 규정돼 있지 않다. 근로시간 계좌제 시행에 따라 연장근로는 6개월 간 1일 평균 근로시간이 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하루 10시간까지 허용한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올 초부터 주 28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이 지역은 벤츠·보쉬 등 독일의 글로벌 기업이 모여있다. 이곳 근로자 가운데 육아나 학업 등을 이유로 근로 시간을 줄이길 원하는 사람은 최대 2년 간 주 28시간만 근무할 수 있다. 임금은 근무시간에 비례해 줄어들지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근로자는 권리를 보장 받으며 일할 수 있다. 일찍이 폴크스바겐은 이와 유사한 제도로 경영난을 극복한 적이 있다. 1993년 경영난으로 3만여 명의 직원을 감축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자 전 임직원의 근로시간을 주 28.8시간까지 축소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경기가 회복되자 다시 주 5일제를 기본으로 했지만 ‘짧고 유연한 근무시간’이라는 큰 틀은 뒤집지 않았다. 현재도 폴크스바겐은 어린 자녀를 둔 직원의 경우 근무시간을 25~30시간 수준으로 줄였다가 가능한 시기에 다시 근무시간을 늘리는 ‘가족 근로시간 모델’을 적용하는 등 다양한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 대기업 90%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시행

독일뿐 아니라 네덜란드·덴마크·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28~33시간으로, 주 4일제가 이미 일상화됐다. 네덜란드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줄인 경우다. 1980년대 초 실업률이 13%까지 치솟자 네덜란드는 임금 동결과 고용 안정 내용을 담은 ‘바세나르 협약’을 맺었다. 핵심은 노조가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를 억제하는 대신 기업이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기업은 평균 주당 40시간이던 근로시간을 주당 38시간으로 단축하고, 시간제 근무를 중심으로 일자리를 늘렸다. 정부도 법정 노동시간을 주 36시간으로 줄이고, 시간제 근로자가 종일제 근로자와 동일한 노동을 하는 경우 급여 체계와 연차를 비롯한 각종 복지 혜택을 동등하게 받도록 법제화했다. 그 결과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청년과 여성의 고용률이 크게 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네달란드의 고용률은 5% 이상 증가했으며 경제 성장률은 3.1%로 유럽연합(EU) 평균인 2.1%을 넘어섰다.

스웨덴에서는 시간 단위 탄력근무제가 이미 정착됐다. 전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이케아는 종일제와 시간제 직원으로 구분된다. 시간제 정규직의 경우 주당 16~32시간까지 탄력적으로 근무가 가능하다. 근로시간에 비례해 임금 차이는 있지만 복지 혜택 등 나머지 처우는 주 40시간 일하는 종일제 정규직과 동일하다. 주 40시간을 넘어 주 30시간까지 노동 시간을 줄이려는 시도도 계속된다. 주 5일제 기준 하루 6시간만 근무하는 것이다. 스웨덴 ‘제 2의 도시’인 예테보리에서는 정부 차원의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예테보리시는 2015년부터 약 2년 간 시내 병원과 양로원에 근무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주 30시간만 근무하게 했다. 단 임금은 주 40시간과 같게 유지했다. 그 결과 직원의 병가가 4.7% 감소했고, 결근 역시 줄어 생산성이 오히려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테보리에 있는 도요타 서비스센터는 2013년부터 하루 6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앞서 2000년대 초반부터 공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루 6시간 근무하게 한 결과 생산적인 방식이라는 판단에서다. 회사 측은 이후 시간당 생산이익이 25%가량 상승했다고 밝혔다. 반면 비용 역시 22% 증가해 효율성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병원과 서비스 센터 등 강도 높은 업무를 하는 직군을 중심으로 근로시간 단축 정책을 시행할 계획이다.

유럽에 비해 노동시간이 긴 미국 역시 주 40시간 근무가 기본이다. 이를 넘기면 시간 외 수당으로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한다. 단 관리직과 행정직·외근영업직·컴퓨터직을 비롯한 일부 전문직(화이트칼라)은 시간 외 근무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는 예외조항이 있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 등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아마존은 2016년 9월부터 시간제 근로자를 대상으로 주 4일제(주당 30시간)를 시행했다. 이들은 근무시간은 짧지만 주 40시간 근로자와 똑같은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구글은 근무시간을 줄이되 각자가 업무 효율성이 가장 높은 시간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업무 몰입도를 높였다. 모든 직원에게 일주일 중 하루는 자신의 담당 업무 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시간을 허용하고, 적극 지원한다. 유연한 근무시간을 가진 후 자가 평가와 동료 평가 등 평가툴을 세분화해 생산성과 업무 효율성을 유지하도록 했다.

업무 효율 높일 방안도 고민해야

우리와 마찬가지로 ‘세계에서 근무시간이 가장 긴 나라’로 꼽혔던 일본도 근무 형태에 변화를 주고 있다. 달라진 인구구조에 대응하고, 경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일본의 법적 근로시간도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다. 법정 근로시간을 넘기면 25% 이상의 가산임금을 줘야 한다. 다만 1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 등은 1주 44시간의 특례 조항을 두고 있다. 일본 기업 중 주 4일제를 도입한 비율은 10%(2015년 기준)를 밑돌아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러나 대기업을 중심으로 근무시간 줄이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일본 패션 업체 유니클로는 2015년 10월부터 희망자에 한해 주 4일제를 시행 중이다. 원할 경우 희망자에 한해 6개월마다 주 5일제와 주 4일제를 선택할 수도 있다. 단 일주일에 4일만 일하더라도 주 40시간을 채워야 한다. 주 4일제 근무자의 경우 하루 근무시간이 8시간에서 10시간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의 경우에서 보듯 근로시간 단축은 양날의 검과 같다”며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논의와 함께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려면 산업별 성격을 고려해 근무시간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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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8호 (20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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