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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전문가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한국도 북한이 짠 ‘경매’에 뛰어들어야”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북·미 정상회담은 긴 타이틀 매치의 1라운드...실질적 중재자 지위 중국으로 넘어갈 우려

▎박상기 대표는 “긴 시각에서 싱가포르 회담은 북한과 미국이 ‘윈-윈’한 협상”이라고 말했다. / 사진:BNE글로벌협상컨설팅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이뤄졌다. 5월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신으로 회담 자체를 취소하는 등 좌초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북한 측의 다소 유화적인 성명과 전격적인 남·북 정상의 만남 등으로 협상이 다시 본궤도에 올라 마침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회담을 가졌다.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부족하고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가 빠진 완전한 비핵화만이 언급되었다는 점, 북한의 인권문제를 언급하거나 개선하지 않은 채 합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달리 일각에서는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와 가치를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한다. 치열한 암투 속에서 각국은 무엇을 노렸고, 무엇을 얻었을까. 이를 위해 어떤 수싸움이 오갔을까.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협상 전략을 알아보기 위해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의 얘기를 들어봤다. 박상기 대표는 국내의 대표적인 국제협상 전문가다.

트럼프-김정은, 좋은 스타트 끊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긴 시각에서 싱가포르 회담은 북한과 미국이 서로 ‘윈-윈’ 했다고 본다. 협상 초기에 필요한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상대가 협상에 임하도록 마음을 잡아두는 것과 신뢰와 호감을 주는 작업이다. 이번에 트럼프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서라도 체제 안정과 경제 지원을 받고 외교무대로 복귀하도록 마음 먹게 하는 데 성공했다. 김정은은 세상으로부터 ‘미치광이 공산 독재자’ 이미지를 벗었고, 트럼프에게도 ‘대화가 통하는 사람’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싱가포르 회담은 단판의 결승전이 아니다. 긴 타이틀 매치의 1라운드가 막 지났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두 정상이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비핵화의 구체적 약속이 빠졌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번 회담만 놓고 본다면 미국은 싱가포르에서 애초에 기대한 것의 60% 정도만 얻은 것으로 보인다.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같은 단어를 반복하거나 말을 빠르게 하면서도 길게 늘어놓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혹시 당한 건가’라는 초조함이 느껴졌다. 미국이 가장 원하는 건 한 번의 협상에서 비핵화를 끝내는 일괄타결이다. 이와 달리 북한이 바라는 건 ‘액션-투-액션’이다. 단계별로 시행하고 검증하고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방식이다. 심지어 북한은 그 순서도 바꿨다. 보상을 먼저 주면 시행·검증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 간극을 좁히는 게 앞으로의 과제다. 그래도 긍정적인 건 트럼프와 김정은이 각자의 사정 때문에 협상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후속회담에 속도를 낼 것이고 김정은도 그 속도를 맞춰 나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이 아닌, ‘트럼프’와 ‘김정은’은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미국은 11월 중간선거가 있다. 트럼프에게는 권력 유지의 기로의 순간이다. 트럼프는 이미 대선 과정에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적행위 혐의를 받고 있다. 뭔가 특별한 성과를 내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다. 성과를 내기에 북한만큼 좋은 상대가 없다. 미국인들은 본토를 공격 받는 것에 대한 공포가 강하다.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자 ‘대통령 뭐하냐’는 반응이 쏟아진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이 문제만 잘 해결하면 선거에서 재신임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정은도 불안한 상황이다. 몇 달 전만 해도 미국이 ‘군사행동의 1차 목표는 김정은’이라고 못 박으면서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또 체제 안정을 위해선 경제 개발을 해야 하는데, 도와줄 이도 없다. 중국은 얼마 전까지 미국 편에서 서서 경제 제재에 방점을 찍었다. 내부적으로는 군부의 불만도 불안 요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미국과의 협상은 경제적 실익을 챙기면서 군부의 불만도 누를 수 있는 해법인 셈이다.”

북·미 정상회담은 중도에 취소가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트럼프가 쓴 건 ‘릴럭턴트 셀러(reluctant seller)’라는 협상 기법이다. 절박하지만 절박하지 않은 척, 급하지만 급하지 않은 척, 거래에 관심 없는 척 하면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방법이다. 협상이 본 궤도에 오르기 전부터 결렬에 대한 압박을 쓰는 독특한 상황이었다. 트럼프가 ‘난 안 해도 돼. 넌 좀 불안할텐데. 그러지 말고 내 요구 좀 잘 들어봐’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공을 넘겨 받은 북한은 일단 이를 받아들였다. 다만 호락호락 당한 게 아니라 이 때 역으로 ‘말 바꾸기 전략’을 썼을 거라고 본다. 북한에 온 폼페이오에게 ‘다 해줄게’라고 약속하고 협상을 재개한 후 막상 협상테이블에서는 다른 요구를 했을 것이다. 이는 공산주의 국가의 전통적인 협상법이다. 과거 미국과 소련 간 군축 협상에서도 이런 장면이 자주 나온다. 상대의 요구를 약속하고 돌이킬 수 없는 호혜적 양보를 확보한 후 막판에 상대가 절대 못 받아들일 제안을 해서 협상을 결렬시켜버리는 것이다. 내부나 국제적인 비난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정상회담을 전후로 김정은이 중국을 세 차례 방문했다. 어떤 의미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국은 북한이 미국의 ‘영역’이 되는 걸 묵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미국과 맞부딪치기도 어렵다. 중국 경제는 아직 미국에 의존하는 바가 크고, 미국의 지도자가 과거처럼 고분고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을 자기쪽으로 당겨야 한다. 그래서 계속 불러 앞으로 자신과 대화하고 협의하면 원하는 걸 준다고 설득하는 중일 것이다.”

북한 핵 미사일 값어치 점점 올라가

북한은 원하는 바를 얻었다고 봐야 하나.

“지금 상황에선 100% 만족할 만하다. 무엇보다 북한은 외교적 ‘무풍지대’가 됐다. 미국도 당기고 중국도 당기면서 북한에 대해 강대국 둘이 힘의 균형을 맞출 수밖에 없게 됐다. 바꿔 말하면 미국도 중국도 힘을 못쓰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경쟁도 붙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북한에게 더 주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북한이 외교무대의 시드머니로 쓴 핵 미사일의 가격은 점점 올라가는 셈이다. 협상에서는 ‘에스컬레이팅(escalating)’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두 명의 적과 동침하면서 경쟁을 부추겨 실속을 챙기는 기막힌 외교 전략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상황인가.

“한국의 중재자 역할이 퇴색됐다. 실질적인 중재자 지위가 중국으로 넘어갔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있는 중국이 북한의 보호자를 자처하면서다. 한국이 중개 수수료를 챙기지 못할 수도 있게 됐다. 다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미국은 한국에게 ‘중재를 넘어 촉진제가 되달라’고 요구했다. 협상에서 김정은에게 의외의 역습을 받고 중국이 본격적으로 나서자 한국에게 더 적극적으로 북한에 자신의 입장을 전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상 ‘코리아 패싱’의 눈앞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앞으로 어떤 전략을 세울 수 있을까.

“북한은 한국 경제에도 중요하다. 중국을 대체할 생산 기반을 구축할 수 있고, 북한에 풍부한 에너지·노동력 자립을 통해 안정적인 내수시장 성장을 꾀해볼 만하다. 다만 지금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향후 북한에게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할 구실이 없다. 북한은 향후 경협 지분을 두고도 레버리지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도 지금부터 북한이 판을 짠 경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견적서를 뽑아 다른 나라보다 한국이 더 많이 줄 수 있는 것도 강조하는 한편, 경쟁자 흠집도 낼 줄 아는 현실적인 대응이 필요한 때다.”

1440호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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