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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신세 1000만 경유차] 경유화물차 제한에 경유세 인상론도 나와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디젤게이트·미세먼지 이슈에 ‘환경 파괴범’으로 전락 … 지방선거서 여야 모두 “노후 경유차 아웃”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야가 한 목소리로 내세운 게 있다. 미세먼지 대책, 특히 미세먼지 유발 주범으로 지목된 ‘노후 경유차 폐차’ 공약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미세먼지 해결’을 5대 핵심 약속으로 제시하면서 “2022년까지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 촉진을 통해 경유차 감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택가를 운행하는 소형 경유화물차의 LPG차 전환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자유한국당도 지방선거 10대 핵심 공약으로 ‘미세먼지 걱정 없는 대한민국’을 발표한 후 노후 경유화물차를 LPG 1t 트럭으로 교체하면 최대 3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10년 이상 된 노후 경유차를 폐차하고 새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경우 개별소비세를 70% 감면하겠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이나 정의당도 이와 유사한 정책을 지방선거 공약으로 채택하는 등 사실상 ‘경유차 퇴출’에 목소리를 높였다.

폐차 지원하고 도심 운행 제한


▎2011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공개된 ‘클린디젤’ 택시.
2017년 기준 등록대수 957만6395대의 경유차가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전방위적으로 경유차 사용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지방선거가 치러진 이튿날, 국회에는 경유차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경유차 사용을 일부 제한하는 내용의 ‘수도권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어린이통학차량 및 택배에 사용되는 소형 화물자동차에 경유자동차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의원 측은 “어린이통학차량 및 택배에 사용되는 소형화물자동차에 경유자동차 사용을 제한해 대기오염이 심각한 수도권 지역의 대기오염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지역주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법안의 기본 취지를 살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4월 환경부는 전기차·수소차는 1등급, 가스차·휘발유차는 제작연도에 따라 1등급을 주고 디젤차의 경우 최신 차는 3등급(2009년 9월 이후 출시), 노후 차는 5등급(2005년 이전 출시)을 매기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5등급 디젤차에 대해선 아예 도심 진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부는 노후 경유차 운행 제한에 더해 주차장 요금과 혼잡통행료 인상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이미 6월부터 경유차 운행 제한을 시행하고 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가 발령되면 오염물질 매출이 많은 2005년 12월 31일 이전에 등록한 모든 경유차의 서울 운행이 금지된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 10만원을 내야 한다. 디젤차가 환경오염의 주범인 만큼 판매가 줄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경유세 증세안도 지방선거 이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유차 선호도를 낮추기 위해선 세금이나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경유세 인상안은 점점 구체화하는 분위기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6월 18일 에너지전환포럼 정기포럼을 통해 경유세 개편안을 제시했다. 경유의 기본 세율과 탄력 세율을 각각 리터당 50원씩 올리는 게 골자다. 현행 경유의 기본 세율은 리터당 340원, 탄력 세율은 리터당 375원이다. 개편안대로 경유세가 오르면 현재 100대 85 수준인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 비율은 100대 91로 좁혀진다. 국제사회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6월 20일 ‘한국경제보고서’ 핵심 권고안을 통해 ‘환경세를 인상해 부분적으로는 경유와 휘발유의 세액 차이를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경유세 인상은 1년 전에도 이슈가 됐던 사안이다. 기재부·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 등 4개 부처가 함께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관련 논의가 나왔고, 조세재정연구원은 연구용역을 통해 경유 가격을 리터당 100~1400원가량 올리는 10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당시 기재부는 경유세 인상설이 보도된 지 이틀 만인 6월 26일 경유세 인상 계획을 백지화했다.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서의 실효성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고, 경제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속내는 강력한 조세 저항을 우려한 것이었다. 이후 정부는 여론을 의식해 경유세 인상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왔지만, 지방선거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확인된 상황에서 방향성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

최근 10년 사이 경유차에 대한 정부 정책은 크게 선회했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경유 승용차 판매를 허용했고, 이명박 정부는 ‘클린디젤’ 정책으로 경유차 구매에 불을 붙였다. 각종 혜택과 지원으로 경유차 생산 확대와 판매를 장려했다. 친환경차로 지정된 경유차는 환경개선부담금이 면제되고, 남산터널 등을 이용할 때 내는 혼잡통행료 50% 감면, 공영주차장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이 제공됐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엔 경유 택시에 유가 보조금까지 지급했다. 정부가 경유차를 친환경차로 지정한 2009년 이후 디젤차 판매량은 5년 만에 33% 급증했다. 당시 경유차 구매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경유차는 휘발유차보다 비싸지만, 그 차이는 휘발유와 경유의 상대가격 차이로 인해 상쇄됐다. 차값과 연료의 가격차를 고려하면 차량 구입 후 5년 정도 타면 초기 비용을 회수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정부 지원까지 더해지면 이득이 커진다. 소비자들이 웃돈을 주고 경유차를 산 이유다.

그러나 2016년 폴크스바겐의 ‘디젤 게이트(배출가스 조작 사건)’ 사태가 불거지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경유차가 휘발유차보다 질소산화물을 23배 이상 배출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클린디젤’을 강조했던 지식경제부의 설명도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경유차에는 공해의 주범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정부의 보급정책에 믿음을 갖고 디젤차를 구입했던 소비자들은 현재 일순간 모든 혜택에서 제외된 것은 물론 미세먼지 배출 차를 모는 ‘민폐’ 운전자라는 눈칫밥까지 먹는 처지가 된 것이다. 여기에 미세먼지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경유차에 대한 사회적 압박은 더 강해졌다. 경유차 규제가 미세먼지 저감에 손 대기 쉬운 대책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미세먼지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도로오염원 외에도 중국발 미세먼지, 공장·발전소 같은 비도로 오염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이들을 규제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영업용 경유차 규제 수준도 논의해야

문제는 경유차를 보유하고 있는 소비자다. 정책 변화에 의해 비싼 차를 사고도 관리 비용은 더 커진 셈이 됐기 때문이다. 7년째 경유차를 몰고 다니는 한 운전자는 “이미 이런저런 명목으로 부담금을 내고 있는데, 이젠 언제 기름값이 오를지 불안감도 커졌다”며 “친환경차로 분류해 구매를 장려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환경 파괴범 취급을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경유차에 대한 날은 세웠지만, 택배·화물차 등 영세 사업자의 생계가 달린 영업용 차량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불명확한 모습이다. 특히 영업용 차량에는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노후 경유차가 많다. 경제활동을 이유로 예외를 적용했다가 ‘공해의 주범을 뺀 대책’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결국 자동차는 경제 논리에 따라 소비자가 선택하는 것”이라며 “소비자들을 친환경차로 얼마나 유인할 수 있을지 정책 뒷받침에 성패가 달렸다”고 말했다.

1441호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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