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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 코드 도입하는 국민연금] 정치권 외압 배제해야 효과 재계는 경영 악영향 우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의결위 역할·전문성 강화 병행해야 … 올 들어 투자기업에 의결권 적극 행사

▎전북 전주의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건물 1층 현관에서 직원들이 이삿짐을 나르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사한 본부 측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관련해서 또 한 차례 변혁의 시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왔던 국민연금의 변신이 초읽기 단계에 들어갔다. 이르면 7월 말 국민연금공단의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도입이 결정될 것으로 보여서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등 주주권 행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자율 지침을 일컫는다. 마치 집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처럼, 돈을 맡긴 소비자를 대신해 투자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면서 그 결과도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국민연금은 올 3월 기준으로 국민의 노후 자금 약 626조원을 관리하고 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오는 7월 23일 박능후 장관 주재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안건을 처리할 방침”이라고 지난 6월 25일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금껏 논의한 바에 따르면 안건의 부결 가능성은 작다”며 “곧바로 시행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운 바 있다. 사회적으로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방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진 상황에서, 소비자인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투자 기업의 가치와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는 국민연금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현 정부의 생각이다.

예컨대 지금까지 국민연금은 공식적으로 ‘수익성·안전성·공공성·유동성·운용독립성’의 5대 원칙을 갖고 기금 운용을 해왔지만, 이런 원칙을 도외시한 채 정작 국민의 이익에 반할 소지가 있는 운용을 일부 진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곤 했다. 박근혜 정부 때 외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개입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본 정황이 드러난 예가 대표적이다. 앞서 국민연금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외부 인사로 구성된 의결권전문위원회에 의결권 행사를 요청하지 않았다. 대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내 투자위원회 기명 표결로 합병에 찬성했다.

복지부, 장관 주재로 7월 말 도입 안건 처리키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특검은 당시 청와대와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이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게 의결위를 거치지 않고 이 같은 식으로 투자위에서 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할 땐 ‘기금운용본부가 찬성 또는 반대하기 곤란한 안건의 경우 의결위에 의결을 요청할 수 있다’는 규정을 따르게 되어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런 선택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발표 이후 올해 4월까지 약 3161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이 내세운 수익성·안전성 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와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생기지 않으려면 국민연금이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게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찬성론자들의 목소리다.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에 적극적으로 의결권 행사를 하게 되면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성 강화 등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주주의 이익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에 돈을 맡긴 국민 모두의 수익률 향상으로도 이어진다는 얘기다. 이미 정치권에서도 찬성 목소리가 높다.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3월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서면 질의에서 “기업들의 배당성향이 보수적이고 지배구조 역시 투명하지 않은 국내 특성상 재벌의 전횡을 막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에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천 의원은 일본을 예로 들었다. 일본은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지난해 기준 2540개 기업이 이를 채택했다. 일본 정부는 사내 유보금을 대규모로 쌓아두면서도 투자와 배당에 소극적인 다수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주주행동주의 장려 차원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택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 3년 간 배당 등의 주주이익환원 사례가 증가했고, 기관투자가의 사회책임투자(사회적으로 해로운 계약이나 기업엔 투자하지 않는 선별적 투자) 사례 또한 증가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일본 외에도 미국과 영국 등 20여 개국에서 이런 제도가 다양한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취지엔 동의하면서도, 보다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시선이 적잖다. 복지부 계획대로 국민연금의 변신이 진행될 경우 각종 한계와 부작용이 따를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다. 우선 정부 정책 등과 무관하게 연금 가입자인 국민의 이익만 고려해 기금을 운용하는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국내 실정상 스튜어드십 코드의 대표적 순기능인 ‘외압 배제’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공단 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공단 이사장도 임명하는 현 구조상 결국은 정부나 정치권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는 얘기다. 국민연금 측이 운용독립성을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더라도 실제로는 보장되기 힘든 구조에서,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 참여 강화가 결국은 정부나 정치권이 연금을 통해 특정 기업을 통제하는 이른바 ‘연금사회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광범위한 도입보다 신중한 도입에 초점 둬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오는 7월 23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안건을 처리할 계획이다.
이 경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기업의 경영에 부담감만 안겨주는 요인으로 작용,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복지부가 최근 국민연금 의결위에 속한 8인의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받은 개인 의견서에 따르면, 이들 중 다수는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인태 의결위원장(중앙대 교수)은 “위원 대부분이 초기 단계에서 광범위한 도입보다는 신중한 도입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전했다. 국민연금이 큰 틀에서의 원칙만 제시하되 구체적인 사례가 나올 때마다 선례를 만들고 필요한 경우 규정을 바꿔야 하며, 기업 경영에 어떤 식으로든 악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예를 들어 국내 기업을 종종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는 의혹을 받는 엘리엇매니지먼트 같은 외국계 헤지펀드(단기간 고수익을 목표로 글로벌 시장에 대규모 투자하는 회사, 나쁜 의미로는 투기자본)의 공세에 힘을 실어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에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다른 주주들의 영향력이 커진 틈을 탄 이들 헤지펀드가 그 틈에 섞여 과도한 배당을 요구하거나 경영 간섭을 통한 시세차익(주가 변동 등에 기인) 실현을 노리는 식으로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 후 철수하는 것을 돕는 결과만 가져올 수 있다.

이 때문에 재계는 정부가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채택과 이행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의 경영진 구성과 사업 계획 등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며 “투자 기업에 대한 모니터링 범위에 재무구조 외에 경영 전략과 리스크 관리 같은 비(非)재무적 요소까지 포함된다는 점, 그리고 국민연금의 시장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경총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이 향상될 것이라는 일부 분석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의결권 행사와 수익률 간 상관관계가 명확히 밝혀진 바 없으며, 기업 가치가 헤지펀드의 공세 강화 등 여러 요인을 통해 낮아지면 되레 수익률이 지금까지보다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에도 국민연금은 올 들어 예년보다 적극적으로 투자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 나서면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위한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공단에 따르면 지난 1분기에 2561건의 의결권을 행사했는데 이 가운데 20.5%인 524건이 반대 의견이었다. 최근 4년 간 최고치의 반대율이다(2016년엔 10.07%, 지난해는 12.87%). 사유별로는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보수 한도 승인에 반대한 경우가 228건(43.5%)으로 가장 많았고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 반대 220건(42.0%), 정관 변경 반대 43건(8.2%) 등이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두고 기존의 수동적인 주주 역할에서 벗어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기업들에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의결위 역시 올 들어 역대 최다 안건을 심의했다. 삼성물산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 반대 의결권 행사를 결정했고 KB금융지주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 안건과 정관 변경 안건, KT&G 사장과 사외이사 선임 안건, 에이블씨엔씨 사외이사 선임 안건 등도 심의했다. 정부와 각계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향후 최대한 독립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의결위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취지를 살리면서 국민연금이 정치 논리에 좌우되지 않도록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의결위의 역할을 강조했다.

국민연금 지분율 높은 기업들 예의주시


▎신세계는 국민연금 지분율이 높은 상장사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은 서울 중구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일대.
반면 일각에선 국민연금 자체 인력의 보강과 전문성 확충에도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연간 수천 건에 달하는 의결권 행사를 해야 하는데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매사 전문성을 갖춘 의결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고강도 지원책 마련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편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몰고 올 파장을 미리 예상해보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 지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지분율이 높을수록 의결권 행사 때 그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국내 기업은 총 299곳, 이 가운데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기업만 해도 96곳에 달한다. 신세계(13.48%)·삼성전기(10.77%)·SK이노베이션(10.00%)·LG화학(9.74%) 등이 국민연금 지분율이 높은 상장사로 꼽힌다. 대부분이 오너 경영 체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룹사다. 그중 이미 국민연금의 세진 ‘입김’을 경험하면서 잔뜩 긴장한 기업도 있다. 대한항공(12.45%)이다. 최근 오너 일가가 ‘갑질’ 논란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선언하면서 경영진 면담 계획을 발표해서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추천, 주주대표 소송(경영진의 결정이 주주의 이익과 어긋날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표해 회사에 손실을 끼친 경영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 경영진 면담, 지배구조 취약 기업에 대한 중점 관리 등 적극적 경영 참여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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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2호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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