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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핑크택스가 뭐길래] “소비 불평등 해소” vs “수급에 따른 가격”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여성 1인가구 소비 남성보다 많아...핑크전략, 기업 이미지에 독 될 수도

▎사진:© gettyimagesbank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른바 ‘핑크택스’를 두고 찬반논란이 뜨겁다. 지난 6월 말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PINK TAX(핑크택스)를 아십니까”라는 글이 올라오면서다. 핑크택스는 동일한 상품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현상을 뜻한다. 같은 상품이라도 여성용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좀 더 비싸지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기업들이 여성용 제품에 분홍색을 주로 사용해 붙여진 명칭이다. 실제로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동일 재화와 서비스를 남성보다 더 비싸게 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같은 미용실에 가도 남성보다 헤어커트나 펌, 염색이 더 비싸고 화장품 매장에서는 여성 기초 화장품이 남성 제품보다 비싸다.

핑크택스 논란은 지난 2015년 말 뉴욕에서 시작됐다. 뉴욕시 소비자보호원이 90개 브랜드, 800개 제품의 남녀 용품 가격 차이를 비교한 결과 여성용이 비싼 제품은 42%로 나타난 반면 남성용이 비싼 제품은 18%에 불과했다. 영국에서도 2016년 업체와 성능 규격이 동일한 물품을 두고 조사했는데, 여성 용품이 남성용품보다 최대 두 배가량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영국시민은 지난 2016년 핑크택스를 반대하는 청원에 4만3000명 이상이 서명을 했고 이 문제는 의회에서 제기됐다.

소비 중단하는 ‘여성소비총파업’ 운동 돌입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여성인권 향상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핑크택스 문제가 불거졌다. 여성소비자들은 핑크택스가 성차별이라며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6월 19일에는 ‘우리가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는 슬로건을 내건 ‘여성소비총파업’ 공식 트위터·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계정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7월 1일 ‘여성소비총파업’ 운동에 돌입했다. 하루 동안 소비와 지출을 중단하면서 여성인구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성차별 철폐를 촉구하겠다는 것이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다양한 영역에서 주 소비층을 구성하는 여성이 정해진 날짜에 맞춰 함께 소비 행동을 파업해 여성 소비자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드러내야 한다”며 운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우리가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는 표어는 지난 1975년 아이슬란드에서 벌어진 ‘여성총파업’과 지난 3월 8일 스페인 여성동맹파업에서 따온 구호다. 아이슬란드 여성총파업 당시 여성노동자 90%가 직장에 가지 않거나 가사노동·육아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성평등을 요구해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을 이끌어 낸 바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여성으로부터는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지만, 업계의 반론도 만만찮다. 뷰티에 더 관심 많은 여성이 지불할 의사가 더 크고, 기업은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가격을 달리 책정할 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여성 소비가 남성보다 많은 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는 194만6000원으로 2008년(141만 3000원)보다 37.7% 늘었다. 여성 1인 청년 가구(25~39세) 월 평균 소비지출은 125만원으로 남성(110만원)보다 씀씀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이 독립적인 경제주체의 지위를 확보하면서 자신을 위한 소비를 점점 늘리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과거 화장품·패션 업계에만 국한됐던 여성 소비 분야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여행 업계에서는 여성 고객이 남성 고객 비율을 추월했다. 한국여행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출국한 여성은 1245만 명으로 남성(1238만 명)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특히 20대 출국자 462만 명 가운데 여성은 279만 명으로 전체의 60%를 넘었다. 의류회사 한 관계자는 “옷이나 가방 같은 소비수요는 남성보다 여성이 월등히 많다”며 “여자 옷은 남자 옷보다 디자인이나 유행 트렌드에 민감하기 때문에 의류 제작 기간이나 비용, 인원이 더 많이 필요한 만큼 가격이 그만큼 비싸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일각에서는 제품 구입은 개인의 선택 문제인 만큼 반응이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격을 결정하는 변수는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성별에 따른 가격 차이만을 가지고 핑크택스 현상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영국에 성중립 가격 미용실 생겨

업계에서는 여성을 내세우는 마케팅이 자칫 돈벌이 수단이 돼 ‘여성을 위한다’는 본질이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올 초 미국의 펩시코는 ‘레이디 도리토스’를 만들겠다고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공공장소에서도 씹는 소리가 나지 않고, 손에 양념이 잘 안 묻는 과자로 소개됐다. 하지만 ‘여성들은 과자를 조용하고 깨끗하게 먹어야 한다’는 편견이 암시돼 있다는 반발을 불러왔다.

한편 우리나라보다 일찍 핑크택스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던 나라들은 이에 대한 개선책이 마련됐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성차별적 가격을 책정한 기업에 최대 4000달러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핑크택스 문제 해결에 앞장 서는 모습이다. 면도날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수익모델로 성공한 미국 벤처기업 달러셰이브클럽(Dollar shave club)은 제품 성별을 구분하지 않아 호평을 받았다. 영국의 대형 유통 업체 테스코, 미국 온라인 소매업체 박스드(Boxed)는 여성용 제품 가격을 남성용과 동일한 수준으로 인하했다. 또 영국에는 성중립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미용실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성 중립 가격이란 성별과 무관하게 스타일에 따라 비용을 달리 청구하는 방식이다.

1442호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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