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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맥주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 가격·맛 경쟁력 앞세워 수입 맥주 파상공세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미국·유럽연합산 맥주에 관세 붙지 않아…맥주 수입액 10년 만에 10배로 늘어

국산 맥주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카스·하이트가 군림하던 국내 맥주시장에 수입 맥주 공세가 거세졌다. 집에서 혼자 술을 즐기는 ‘혼술 문화’를 타고 일부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는 이미 수입 맥주의 매출이 국산 맥주를 앞질렀다. 국내 맥주 업체는 현행 주세 체계가 수입 맥주에 비해 불리하다고 토로한다. 제조원가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국산 맥주와 달리 수입 맥주는 업자가 출고원가를 낮춰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미국·유럽연합(EU)산 맥주 관세가 철폐되면서 국산 맥주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두 차례에 걸친 주세법 개정 등 수제맥주 지원책은 늘었지만 수입 맥주와 대형 유통 업체에 막혀 성장 속도를 못 내는 영세 업체들의 어려움도 살펴봤다.


▎한 대형마트의 수제맥주 코너에 벨기에·미국·일본 등 해외 각지의 수제맥주가 진열돼 있다.
월드컵과 이른 더위가 동시에 찾아온 올 여름은 맥주 시장의 최대 성수기다. 집에서 술과 함께 월드컵을 시청하는 ‘혼술족’이 증가하며 편의점 업계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세븐일레븐은 월드컵 스웨덴전이 열린 6월 18일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3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편의점 CU(씨유)는 멕시코 전이 열린 6월 23일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맥주 판매가 전주보다 2.5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GS25 역시 전국 점포에서 맥주 판매가 전주 대비 287%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 간 희비가 엇갈렸다. 편의점 업계 한 관계자는 “월드컵 특수를 맞아 국산과 수입산 맥주 모두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지만 판매량 증가는 대부분 수입 맥주가 이끌었다”고 말했다.

월드컵 특수도 수입 맥주가 누려


혼술 문화의 확대로 크게 성장한 편의점 맥주시장은 일찍이 수입 맥주가 장악했다. 지난해 편의점 수입 맥주 점유율이 사상 처음으로 국산 맥주를 뛰어넘은 데 이어 올해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CU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판매된 수입 맥주와 국산 맥주의 매출 비중은 각각 59.6%, 40.4%로 나타났다. 이 편의점의 수입 맥주 점유율은 지난 2월 처음으로 60%를 돌파한 후 줄곧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국산 맥주 매출 비중은 2016년 51.8%를 기록한 후 이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CU의 수입 맥주 점유율은 2014년까지만 해도 20% 후반대에 불과했지만 2015년부터 판세가 바뀌었다.

편의점에서 인기있는 수입 맥주 1~3위는 아사히·칭다오·하이네켄 순이다. 올해 상반기 편의점 3사(CU·GS25·세븐일레븐)가 수입 맥주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다. 아사히 맥주의 경우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독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아사히와 롯데칠성음료의 합작사인 롯데아사히주류를 통해 판매되는 아사히 맥주의 경우 롯데라는 안정적인 유통망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쌓았다. 여기에 일본을 방문한 여행객이 급증하면서 친숙함을 느낀 소비자가 많았다는 평이다. 2위인 칭다오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중국 음식점 등에서 인기를 끌면서 성장했다.

편의점 맥주만이 아니다. 대형마트에서는 맥주 매출이 주춤한 가운데 수입 맥주는 선방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올해(1월 1일~6월 20일) 전체 맥주 매출은 지난해보다 1.4%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수입 맥주 성장률은 9.8%를 기록했다. 이와 달리 국산 맥주 매출은 5.6% 감소했다. 이마트도 마찬가지다. 올해 전체 맥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 줄었지만, 수입 맥주는 5.4% 증가했다. 국산 맥주 매출 증가율은 -8.6%를 기록했다. 이렇다 보니 전체 맥주 판매에서 수입 맥주 비중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마트의 수입 맥주 비중은 2013년 32.2%에서 점차 증가해 지난해 51%로 절반을 넘어선 이후 올해 55%(5월 기준)까지 치고 올라왔다. 2014년까지만 해도 약 70%의 점유율로 입지가 탄탄했던 국산 맥주는 해마다 수입 맥주의 공세에 밀리면서 올해 40%대 점유율마저 무너졌다. 매출 신장률을 보더라도 국산 맥주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자릿수에 그쳤지만, 수입 맥주는 2014년부터 매년 40% 이상의 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올해는 수입 맥주 성장률이 최대치였던 지난해(32%)보다는 약간 떨어졌다”면서도 “다양한 나라의 맥주를 맛보려는 소비자들의 수요와 저가 마케팅이 합리적인 소비코드와 맞아 떨어지며 계속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대형마트는 지금 수입 맥주 천하


▎사진:© gettyimagesbank
‘수입 맥주 3강’의 실적도 고공 행진 중이다. 롯데아사히주류의 지난해 매출은 1360억원으로, 2016년(956억원)에 비해 4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4억원에서 90억원으로 510% 급증했다. 칭다오를 수입하는 비어케이의 지난해 매출은 1180억원, 영업이익은 230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19%에 달한다. 매출은 2016년보다 37%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56% 급증했다. 하이네켄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980억원으로 2016년(810억)에 비해 20%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016년 247억원에서 지난해 329억원으로 33% 증가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까지 맥주 수입액은 1억2175만 달러로 전년 대비 29.5% 증가했다. 중량으로는 14만9484t이 수입돼 전년 대비 23.2% 증가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수입 맥주는 10년 전인 2007년 3057만9000달러(약 330억원)어치 수입되는 데 불과했지만 2014년 1억1169만 달러로 올라선 데 이어 지난해엔 2억6309만 달러(약 3000억원)로 10년 만에 10배 수준으로 성장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맥주 수입금액이 3억 달러는 무난히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00년대 초만해도 연간 2만t 안팎에 불과하던 맥주 수입량 역시 2010년대 들어 연간 20~30%씩 급증했다. 2016년 사상 최초로 20만t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30만t을 넘어섰다. 상반기 추세라면 올해도 35만t을 육박할 전망이다.

이처럼 수입 맥주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맛과 함께 가격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국산 맥주는 출고 원가에 원재료 구매비용과 제조비용, 판매관리비, 이윤이 모두 포함된다. 여기에 주세와 교육세,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반면 수입 맥주는 공장 출고가와 운임비 등을 더한 수입 신고가를 기준으로 세율을 부과한다. 특히 업체가 직접 수입 원가를 정부에 신고하기 때문에 수입 원가를 낮게 신고해 적은 세금을 낸 후 이윤을 붙여 판매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산 맥주는 올 1월부터 관세를 내지 않고 있고, 유럽연합(EU) 국가에서 만든 맥주도 7월부터 무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국산 맥주 업계에서 국내 맥주시장이 수입 맥주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불만이 나오는 배경이다. 시장이 커지며 너른 운동장이 됐지만 국산 맥주 업체가 달리기엔 힘에 부치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3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맥주시장에서 수입 맥주의 시장점유율은 아직 10%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정용 맥주시장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류시장은 음식점이나 바·호프 등에서 유통되는 유흥시장과 대형마트·편의점을 통해 소비되는 가정시장으로 나뉜다. 업계에서는 가정시장으로 대표되는 소매점 판매에서는 수입 맥주의 점유율이 이미 과반 이상을 장악했다고 파악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흥업소나 음식점에선 여전히 국산 맥주가 강세지만 안심할 때가 아니다”라며 “소비자들이 수입 맥주를 선호하니 유통 업체에서도 수입 맥주 마케팅에 올인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국내 주류 업체조차 수입 브랜드 들여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해외 맥주 브랜드를 수입하는 것이 더 큰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비맥주는 카스 맥주 못지 않게 본사인 AB인베브의 글로벌 맥주 브랜드 판매에 주력한다. 버드와이저·호가든·스텔라아르투아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일본 산토리의 맥주를 수입해 판매한다. 롯데칠성음료의 주류부문(롯데주류)은 3월 밀러를 공식 수입한 데 이어 블루문, 쿠어스 라이트 등 해외 맥주 브랜드와 독점 수입 계약을 했다. 하이트진로는 기린, 싱하에 이어 지난해 호주 맥주 포엑스골드를 수입했다.

3대 주류 업체, 제품 개발보다 수입에 열중?


3대 주류 회사 외에도 수입 맥주시장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곳은 또 있다. 위스키 회사인 골든블루는 지난 5월부터 덴마크 맥주인 칼스버그를 수입·유통하며 처음으로 맥주시장에 진출했다. 골든블루 측은 “전반적인 주류 소비량 감소에도 수입 맥주시장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매일유업 관계회사인 엠즈베버리지는 삿포로 맥주를 수입·유통하고 있다. 중국 맥주 칭다오를 유통하는 주류 수입 전문 기업 비어케이의 경우 주류 수입·유통으로만 연 120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릴 만큼 성장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제품을 개발하지 않고 맥주 수입에 집중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한다. 한 수제맥주 업체 대표는 “대기업이 유통시장을 장악한 가운데 국산 맥주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 투자하지 않고 맥주를 수입해 이윤을 남기는 데만 집중하는 것은 전체 맥주시장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위기에 빠진 국내 업체는 새로운 시장 개척에 골몰한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필라이트’를 출시해 수입 맥주의 저가 정책에 대응했다. 이 맥주는 수입 맥주보다 저렴한 ‘1만원에 12캔’(대형마트 기준)을 내세웠다. 필라이트가 기존 국산 맥주에 비해 40%가량 값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던 이유는 맥주가 아닌 발포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국내 주세법상으로는 맥아함량이 10% 미만인 술을 ‘기타주류’로 분류한다. 국산 맥주의 맥아 함량은 70% 이상이다. 필라이트는 맥아가 덜 들어간 대신 주세가 맥주(72%)보다 훨씬 싼 30%에 불과하다. 대신 알코올 도수를 일반 맥주와 비슷한 수준인 4.5%에 맞춰 저가 맥주로 인기를 끌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4월부터 1년 간 필라이트 판매량이 약 2억캔(355ml 기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저렴한 가격과 더불어 가성비에 주목한 소비 트렌드에 따라 ‘메가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필라이트가 하이트진로 맥주 사업 부문의 부진을 털어낼 효자상품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하이트진로, 주세법 유리한 발포주로 대박

롯데주류도 맥주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해 5월 신제품 맥주 ‘피츠’를 내놨다. 저가의 발포주 전략 대신 ‘소맥용 맥주’라는 점을 강조해 틈새 마케팅을 펼쳤다. 그러나 필라이트와 달리 예상보다 부진을 겪으며 적자로 이어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필라이트가 발포주와 가성비를 내세워 시장에 안착한 반면, 피츠는 기존 브랜드와의 차별화에 실패했다”며 “국내 맥주 소비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인 상황에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무리하게 증설한 것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피츠의 부진으로 2016년 롯데주류의 영업이익은 274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39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수입 맥주의 시장 잠식으로 국내 맥주산업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중단기적으로 맥주 부문의 적자 기조가 이어져 롯데주류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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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2호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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