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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맥주에 불리한 주세 체계 개편되면] ‘4캔에 1만원’ 수입 맥주 할인 사라질까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국산맥주 역차별 논란에 종량세 전환 움직임… 가격 인상 우려에 소비자 “품질로 경쟁해야”

▎국내 맥주 업계는 수입 맥주에 비해 주세 체계가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수입 맥주 할인행사 중인 편의점. / 사진:BGF리테일 제공
한국과 독일의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를 앞둔 6월 27일 오후, 서울 성수동의 이마트 주류 코너는 맥주를 사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수입 맥주 코너 앞을 서성이던 사람들은 대부분 ‘4캔에 9400원’인 맥주캔을 종류별로 장바구니에 넣기 바빴다.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의 국산 맥주 코너와는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인근 대학에 다니는 이수현(23)씨는 “친구들과 집에서 월드컵 경기를 보기 전에 장을 보러 왔다”며 “국산 맥주에 비해 맛있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아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수입 맥주를 자주 구입한다“고 말했다.

700종이 넘는 수입 맥주를 취급하는 이 대형마트 전체 맥주 매출 가운데 54%가량(4월 기준)은 수입 맥주에서 나온다. 2013년 32.2%에서 지난해 처음 절반을 넘어선 이후 줄곧 수입산이 국산을 앞지르고 있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이마트는 상시적으로 4캔에 1만원도 채 안되는 가격에 수입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입 맥주 4캔을 5000원에 판매하는 유통 업체가 등장할 정도로 가격이 낮아졌다. 물 건너 온 맥주가 국산 맥주보다 저렴하게 판매될 수 있는 까닭은 세금 부과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생산·판매되는 맥주는 국세청에 제조원가를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출고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도 없다. 주류 거래금액의 5%를 넘는 할인은 국세청 주류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에 따라 금지돼 있다.

수입 신고가 ‘부르는 게 값’


국산 맥주는 출고원가에 원재료 구매비용과 제조비용, 판매관리비, 이윤이 모두 포함된다. 여기에 주세(출고원가의 72%)와 교육세(주세의 30%), 부가가치세(출고원가와 주세·교육세를 합친 가격의 10%)가 붙는 방식이다. 하이트 맥주 1병(500ml)의 원가는 538.44원이지만 주세(387.68원)와 교육세(116.3원), 부가가치세(104.24원)가 붙으면 최종 출고가는 1146.66원으로 올라간다. 국세청 고시에 따라 최대한 할인을 하더라도 50원 정도가 전부다. 이와 달리 수입 맥주는 공장 출고가와 운임비 등을 더한 수입 신고가를 기준으로 세율을 부과한다. 이때 업체가 직접 수입 원가를 정부에 신고하기 때문에 정확한 가격을 알기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수입 원가를 낮게 신고해 적은 세금을 낸 후 이윤을 붙여 판매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입 원가를 밝힐 수 없다”면서도 “원가를 낮춰 신고하면 얼마든지 적은 세금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가격 결정폭이 넓다”고 말했다.

결국 수입 맥주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주세 적용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주류산업협회 측은 “수입 맥주와 국산 맥주의 판매가격이 같다고 가정할 경우 국산 맥주에 부과되는 세금이 최대 20% 많다”고 주장했다. 출고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 없는 국내 맥주 업체에 불리한 구조라는 입장이다.

일부 수입 맥주는 관세도 내지 않는다. 미국산 맥주는 올 1월부터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유럽연합(EU) 국가에서 만든 맥주도 7월부터 무관세를 적용받는다. 국산 맥주에 비해 수입 맥주의 가격 경쟁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역차별은 국내 맥주산업을 위축시키고 있다. 글로벌 주류회사인 AB인베브의 자회사인 오비맥주는 미국에서 생산한 ‘러시아 월드컵 한정판’ 카스를 6월에 국내로 들여왔다. 이 맥주 가격은 3500원(740ml 용량)으로, 100ml당 가격이 473원이다. 국산 카스(500ml 용량)가 100ml당 540원인 것과 비교하면 67원 저렴하다. 똑같은 브랜드의 맥주라도 해외에서 생산해 들여오는 가격이 국산보다 싸게 책정됐다. 이에 대해 오비맥주 측은 “국내에 740ml 생산 라인이 없어 해외에서 들여왔다”며 “월드컵 특수를 앞두고 마케팅 차원에서 가격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현행 주세 체계의 불합리함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는 반응이다.

주세법 구조상 수입 맥주에 유리해 국내 맥주 업체들이 역차별받고 있다는 여론이 들끓자 정부가 주세법 개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맥주 주세는 가격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하는 종가세를 적용받는다. 이를 양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로 바꾸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종량세는 과세 대상의 무게나 부피·농도·개수 등의 기준으로 일정액을 세율로 책정하는 방식이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은 주류나 담배·유류 등에 대해 종량세 과세 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담배와 유류 등에는 종량세를 매기지만 주세는 종가세 방식으로 세율을 매기고 있다.

지난 6월 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서는 종량제 중에서도 알코올 도수와 함량을 기준으로 과세하자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이는 검토 대상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알코올 도수에 따른 과세보다 주종별 출고량 기준으로 과세를 매기는 방식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종량세 과세 체계 중에서도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면서도 “주세 개편 여부는 물론 주세 개편 방향 등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 관계자는 “맥주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소주 등 고도주에 대한 세율을 대폭 인상할 경우 부작용이 우려돼 알코올 도수로 과세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검토한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절충안으로 세율 적용의 기준이 되는 출고원가에서 판매관리비, 판매이윤 등을 제외하고 순수한 제조원가에 따라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수입 원가에 관세만 더해 세율을 책정하는 수입 맥주와 가격 차이를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산 이어 유럽산 맥주도 무관세 적용

주세 체계가 개정될 경우 수입 맥주가 현재와 같은 가격 경쟁력을 갖긴 어려울 전망이다. 수입 맥주에 부과되는 세금이 늘어나면 그만큼 소비자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맥주산업 보호와는 별개로 수입 맥주 가격 상승은 적은 돈으로 대형마트나 편의점을 통해 다양한 맥주를 저렴하게 즐기는 소비자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한 주류 업체 관계자는 “수입 맥주가 국산 맥주에 비해 인기가 있는 것이 단순히 가격 때문만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며 “불합리한 주세 체계는 개편해야겠지만 결국 국산 맥주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1442호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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