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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영세 수제맥주] 규제 풀자 수입·대기업 맥주만 ‘건배’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유통은 대기업에, 가격은 수입 맥주에 밀려…“준비 없이 나선 업계·정부 모두의 잘못” 비판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두 차례의 규제 완화로 성장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후 시장도 커졌다. 그러나 국내 소규모 수제맥주 업계는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규제 완화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와서다. 판로가 확대되면서 가격 경쟁력이 있는 수입산 맥주가 물밀 듯 들어왔다. 국내 유통 업체도 자본력을 앞세워 맥주시장에 뛰어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수입 맥주와 대규모 유통 업체에 막혀 막상 정책 목표인 소규모 수제맥주 양조장은 성장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여론에 밀려 졸속행정을 한 정부와 시장 구조와 자신의 실력은 따져보지 않고 무턱대고 규제 완화만 요구한 업계 모두의 책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수제맥주 활성화 위해 두 차례 법 개정


국내 수제맥주 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2014년 주세법이 개정되면서다. 당시 정부는 소규모 맥주제조업체들이 일반 손님에게 포장 판매를 하거나 다른 사업자에게 도·소매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방문객을 대상으로 주점 안에서 판매하는 것만 허용됐지만, 개정안으로 외부 유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들이 갖춰야 하는 술 저장조의 용량 규격도 100㎘에서 50㎘로 완화됐다. 맥주 출고량에 관계 없이 중소 규모 이하 업체에 일괄 적용하던 과세표준도 낮췄다. 연간 3000㎘ 이하를 출고하거나 새로 면허를 받은 중소 업체의 경우, 그 해에 처음 출고한 300㎘에 대해서는 통상가격의 70%를 과세표준으로 정하도록 했다. 연간 출고량이 300㎘ 안팎 수준인 소규모 제조 업체에는 주류 가격의 80%로 계산하던 과세표준을 60%로 낮추도록 했다. 중소 규모 맥주 업자의 시장 진입을 확대하고 세금 부담을 덜어 경영난 개선에 도움을 주려는 취지였다.

여기에 올해 4월 또 한 번 주세법이 바뀌면서 수제맥주 열풍이 더 뜨거워졌다. 지난 개정 후에도 수제맥주는 제조장과 영업장에서만 일반에 판매할 수 있었지만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수퍼마켓·편의점·대형마트에서도 유통이 허용됐다. 또 소규모 주류제조면허를 따려면 식품위생법에 따른 식품 접객업 영업허가·신고가 필요했지만, 이번 개정안에서는 삭제됐다. 제조시설 기준도 완화된다. 기존에는 5~75㎘ 미만으로 제한해 연간 생산량이 900㎘에 그쳤지만 상한 기준을 120㎘로 늘려 최대 1440㎘의 수제맥주 생산이 가능해졌다. 과세표준을 변경해 세금 부담도 덜었다. 소규모 맥주 제조자의 과세표준은 제조원가에 제조원가의 10%를 더하고, 이 금액에 ‘적용률’을 곱해 정한다. 적용률은 출고 수량 100㎘ 이하 40%, 100㎘~300㎘는 60%, 300㎘ 초과는 80%였다. 개정안은 출고 수량을 높여 200㎘ 이하 40%, 200㎘~ 500㎘는 60%, 500㎘ 초과 80%로 바꿨다.

법 개정 덕에 수제맥주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2012년 59개였던 국내 수제맥주 양조장 수는 2014년 54개로 줄었지만, 주세법 개정 이후인 2015년에는 72개로 급증했다. 이후 꾸준히 증가하며 2017년에는 전국 95개 이상의 양조장이 운영 중이다. 수제맥주 업체도 2015년 5만1248곳, 2016년 7만433곳, 2017년 8만3718곳으로 늘어났다. 수제맥주 프랜차이즈도 등장했다. 이들은 전국 유통망을 구축해 각 지역 영업점에 수제맥주를 공급하고, 지역 양조장과 함께 공동 개발한 수제맥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2018년 6월 기준 전국 수제맥주 프랜차이즈 매장 수는 약 500여개로 추산된다.

하지만 막상 정책 수혜층인 소규모 수제맥주 제조자들의 체감경기는 지표로 보는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서울 이태원에서 수제맥주 업체를 운영 중인 A씨는 “규제가 풀리면서 언론에서는 대박이라도 난 것처럼 얘기하는데, 일부 업체의 얘기거나 프랜차이즈의 홍보성 내용인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는 수제맥주 업체들이 기대보다 걱정이 더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의 규제 완화에도 소규모 수제맥주 업체들의 경쟁력 제고에 한계가 있다고 토로한다. 유통 역량은 대규모 식음료·유통 대기업에 밀리고, 가격 경쟁력에선 수입맥주에 밀려 정책 효과의 훈풍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당장은 제반 시설이 미비해서 문제다. 소규모 양조장의 수제맥주가 대형마트·편의점 등에 들어가려면 납품량을 맞출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소매점용 병이나 캔을 저장할 대형창고, 운반을 위한 냉장차량 등이 다수 있어야 한다. 소매점 진출을 위해선 수제맥주를 병이나 캔 제품으로 만들고 이를 저장하고 운반할 대형창고와 냉장차량이 필요하다. 소규모 맥주제조 업체가 납품하는 종합주류도매상도 냉장차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팔 수 있게’ 길은 열어줬지만, 막상 당사자는 ‘팔 준비’가 되지 않았던 셈이다.

여기에 주세법의 맹점을 이용해 ‘가성비’를 앞세운 수입 맥주가 대형마트·편의점 등 소매점을 장악했다. 수제맥주 업체들은 제품이 잘 팔려도 원가 규모가 적을수록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데다 홍보비용 등 판매관리비도 세금으로 잡혀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실익은 적다고 토로한다. 최근 서울 시내 몇몇 영업점에서 판매를 시작한 수제맥주의 가격은 한 잔에 6000원~1만원에 달한다. 최근 편의점에서 수입맥주 4캔을 1만원에 판매하는 것을 감안하면 2~4배에 가까운 가격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수제맥주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과 수입 맥주에 밀려 소규모 수제맥주 업체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며 “업체들 사이에선 수제맥주 시장이 대기업 자본에 잠식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의 빈 자리는 막강한 유통망을 갖춘 식음료·유통 계열의 대기업이 차지하는 모습이다. 수제맥주의 일반 소매점 판매가 가능하게 되면서 신세계·롯데 등에서 만든 수제맥주가 자사의 대형마트 등에 유통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주세법이 개정된 이후 소규모 수제맥주 업계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대기업들은 새 브랜드를 만들어 새롭게 수제맥주 시장에 뛰어들거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수제맥주 업체를 자사 유통채널에 진출시키면서 빠르게 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 일부 맥주 업체는 아예 자체 맥주를 개발하기보다 해외 맥주 수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수한 품질의 수제맥주 업체를 성장시키는 동시에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제품 선택권을 부여한다는 당초의 정책 목표와는 거리가 멀어진 셈이다.

과표구간 재조정 필요?

맥주 업계에서는 수입 맥주나 대기업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추가적인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교육세와 연계돼 있는 세율은 현실적으로 손을 대기 어렵다. 이에 따라 과표구간을 재차 조정해 실질 세율을 줄이는 방식이 제기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추가적인 규제 완화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류 업계 관계자는 “두 차례 규제를 풀었는데 부작용만 나타났다는 건 그만큼 정부의 검토가 미흡했던 것”이라며 “시장 구조나 자신들의 실력은 꼼꼼하게 보지 않은 채 규제만 풀면 다 되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 업계의 잘못도 크다”고 비판했다. 향후에도 무턱대고 규제를 풀기보다 다양한 각도로 치밀하게 분석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수제맥주 정책이 지지를 받은 건 ‘다양한 맛’과 ‘싼 값’이라는 소비자 편익과 부합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인데, 어설픈 정책으로 이런 것이 어긋나게 되면 되레 역효과만 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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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2호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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