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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시어머니 화병 갈등 극복] 가족이 함께 쌓인 화를 들어주자 

 

후박사 이후경 정신과의사
면대면보다 전화·문자 등이 바람직...당사자에게 주변의 고통 알릴 필요도

▎사진:© gettyimagesbank
그녀는 지난 주말 가족모임 이후로 우울하다. 시어머니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10년 전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지낸다. 삼남매를 모두 교수와 의사로 키운 어머니, 시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힘들었던 시기를 불굴의 의지와 헌신으로 자식을 키운 어머니, 그러나 지배적인 성격 탓에 누구와도 함께 지내지 못하고 혼자 있다.

어머니 생신을 기념해 삼남매가 부부 동반으로 모였다. 막내인 그녀의 남편은 일을 핑계로 모임에 거의 빠진다. 이번에도 막내 며느리만 참석했음을 알게 된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더니 심지어 울기까지 했다. 평소 모임 때마다 어머니는 몇 시간씩 신세한탄을 늘어놓는다. 평생 감내했던 힘든 일로 화병이 생긴 탓이다. 그녀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했고, 같은 여성으로 마음도 아팠다. 그래서 말씀이라도 잘 들어드리려 했고, 그 날도 수십 번 넘게 들었던 한탄을 경청했다.

남편 대신 시어머니 신세한탄 듣다가…

그런데 그날은 머리가 좀 이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머니의 상태가 심했다.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악담을 하다가, 갑자기 어머니 기도로 자식·손자들이 모두 다 잘 될 거라는 덕담도 했다. 결론이야 항상 다 잘 될 거라는 말씀이지만, 말씀 도중의 악담은 정말 참기 어렵다. 기구한 삶으로 인한 화병이 한 인간을 저렇게 망가뜨린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병 때문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빠지는 어머니를 그녀도 더 이상 이해하고 싶지 않다. 20년 넘게 들었던 어머니의 신세 한탄을 더 이상 듣기 싫다. 매년 대여섯 번은 가족모임이 있는데, 앞으로는 남편처럼 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우울하다.

화병은 한(恨)이 쌓여 화(火)를 삭이지 못해 생긴 병이다. 한국 고유의 문화병으로, 정신장애 분류에 등재된 병이다. 가슴통증·우울증·신체증상으로 나타난다. 가슴에 돌덩이가 누르고, 명치에 불덩이가 뻗치고, 목안에 덩어리가 느껴진다. 우울·불안·분노보다 억울함·섭섭함·울화를 호소한다. 맥이 빠지고, 소화가 안 되고, 두통·불면·어지럼증으로 나타난다. 내향적·감성적·수용적인 사람이 잘 걸린다. 여성에서 주로 오지만, 취업에 거듭 낙방한 청년, 상사에 시달리는 직장인, 사업에 실패한 남성에서도 나타난다.

화병은 표현 안 하는 습관에서 온다. 수개월에서 수십 년에 걸쳐 발병한다. 참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에서 온다. 참는 게 미덕이던 한국 며느리에게 많았다. 남성주의 사회에서 여성에게, 권위주의 사회에서 약자에게 잘 생긴다. 나만 참으면 모두가 편해지는 환경에서 온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말한들 뾰족한 수가 없는 경우다. 가족을 위해 나 하나 희생하려 한다.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사회에서 온다. 불합리한 구조에서 억압당한 경우다. 겉으로 표현을 안 할 뿐이지,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는다.

화병은 우울증과 다르다. 화병은 멀쩡하게 생활한다. 표현 안 하는 습관 때문에, 상처는 계속 쌓인다. 우울증은 생활이 엉망이다. 마음을 보호하려 외부를 차단한 상태라, 더 이상 상처는 안 쌓인다. 화병은 감정과 사실이 명확하다. 섭섭한 원인이 있고, 화나는 대상도 있다. 우울증은 감정과 사실이 모호하다. 그냥 우울하고, 대상도 안 떠오른다. 화병은 히스테리와 다르다. 둘 다 신체증상을 동반한다. 실제 병이 없는데, 여기저기 아프다. 화병은 강렬한 고통을 호소하지만, 히스테리는 고통에 초연하다.

화병은 발작과 소진을 반복한다. 화가 밖으로 폭발하면 발작이 오고, 안으로 폭발하면 소진이 온다. 발작은 정신증과 유사하고, 소진은 중증 우울증에 가깝다. 화병은 치료가 어렵다. 일단 발병하면 오래 진행된 것이라 심각하다. 참는 사람과 함께 살면 편안하다. 모든 것을 받아주고. 힘든 일도 감수한다. 하지만 언젠가 가까운 사람에게 폭발한다. 화병은 예방이 중요하다. 무조건 참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 화병은 작은 상처가 오래 쌓여 생긴 병이다. 작은 것부터 표현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비폭력대화’란 게 있다. 비폭력은 마음속 폭력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비폭력대화는 평화로운 관계를 목적으로 한다. 내 욕구와 남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대화다. 감정·사실·의도·요청으로 구성된다. 감정(Affection)은 마음속 느낌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실(Fact)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다. 의도(Intention)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다. 요청(Request)은 평화를 위해 상대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순서는 중요치 않다. 모든 감정찌꺼기의 80%는 요청 안 하는 데서 온다.

자, 그녀에게 돌아가자. 탁월한 처방은 무엇인가? 첫째, 들어주자. 시어머니와 인연을 끊기는 어렵다. 쌓인 화를 들어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 돌아가면서 들어주자. 면대면보다 전화가 좋다. 발작은 막을 수 있다. 문자나 카톡도 좋다. 규칙적으로 소통해야 효과가 있다. 들어준다고 화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 “깨달음이 없는 경청(Listening)은 위험하다.” 함께 모여서 들어주자. 일대일보다 일대다가 좋다. 소진은 막을 수 있다. 자칫 과거 얘기를 반복하는 습관으로 굳어진다. 털어놓는다고 화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 “깨달음이 없는 정화(Catharsis)는 허망하다.”

기분 전환해주고 체력 강화 권유도

둘째, 무언가에 빠지게 하자. 시어머니는 표현할 대상이 필요하다. 중독이 되겠지만 고통에선 해방된다. 신앙이 중요하다. 어머니는 평생 기도로 자존감을 유지했다. 광신자가 되어도 괜찮다. 믿음은 희망을 가져온다. 운동이 중요하다. 화병은 여기저기 아프다. 체력 강화가 필요하다. 응어리가 풀리고, 통증이 사라진다. 매일 해야 효과가 있다. 기분 전환이 중요하다. 여행·노래·봉사 등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좋다. 기분이 좋아지면 부정감정이 사라진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에서 큰 상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셋째, 알리자. 시어머니는 화병에 대해 모른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까? 자신부터 돌아보도록 알리자. 화병의 원인은 남이 아니라 나의 선택이다. 평생 희생했지만 어떻게 하란 말인가? 과거는 그만 말하도록 알리자. 가족들이 충분히 알고 있다. 얼마나 더 알아줘야 하는가? 지금부터는 현재와 미래를 말해야 한다. 작은 거라도 참지 말고 표현하도록 알리자. 참았다 한꺼번에 표현하면 폭발한다. 반복되는 폭발로 숭고한 희생이 퇴색한다. 논어에 이런 말이 있다. “군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

※ 필자는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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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2호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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