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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남북경협의 허와 실] 북한 비즈니스 ‘약속의 땅’ 아니다 

 

조진희 삼정KPMG 대북비즈니스지원센터 수석연구원
미·중·일 기업에 자본력·기술력 밀려…전문 인력 양성하고 구체적 플랜 세워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함께 남북관계와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급변하면서 한반도는 봄을 맞이했다. 4월 27일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그동안 단절되고 경색됐던 남북관계는 철도·도로 연결, 산림협력, 체육행사, 이산가족 상봉 등 교류·협력을 서서히 심화시켜가고 있다. 또 6월 12일에 개최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으로 은둔의 국가를 자처했던 북한은 국제사회에 화려하게 등장하면서 선대가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모색 중이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국 시진핑 주석과 3번을 만나고 북중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아직까지 북·미 간에는 북한의 안전보장과 북핵 해결을 위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북한의 핵 폐기를 향한 제스처가 가시화되지 않고 대북제재는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바라보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앞으로 북핵 문제 해결이 가시화된다면 미지의 미개척 시장인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 활용한 개발사업 경험 적어


다만 정부와 기업들은 ‘대북 투자’가 한국에만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북한의 가장 큰 ‘파트너’는 중국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대외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에는 24.8%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일본과의 무역이 끊기고, 2010년 우리 정부의 5·24 조치가 시행되면서부터 대중 의존도는 가파르게 상승해 2016년에는 92.5%를 기록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거세질수록 북한의 대중 의존도는 더욱 심화됐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동참에 대한 압박으로 주춤한 상황이지만, 중국은 북한과 무역 뿐만이 아니라 훈춘·단동 등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인프라, 임·가공, 관광 등의 사업을 추진해왔다. 14억 인구로부터 나오는 대륙의 자본 조달력도 무시할 수 없다. 러시아 역시 나진항 개·보수 사업과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북 투자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접경국의 지리적 이점과 동맹국이라는 우호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초기 시장에 대한 주도권을 선점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북한 사업에서 중국과 러시아 기업에 밀린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앞으로 미국과 일본 기업과의 경쟁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세계 시장에서 원천 기술력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기업이 뛰어들게 된다면 우리 기업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의 자본 조달력에도 한계가 있다. 북한의 경제 개발에는 막대한 돈이 든다. 통일부에 따르면 남북교류협력기금 총 예산은 1조6182억원이다. 이 가운데 남북경협을 위해 조성된 기금은 개성공단 운영대출금과 기반조성금 311억원 등을 포함해 3445억원이다. 지난 3월 말까지 경협기반조성, 개성공단, 남북사회문화교류 등 총 374건에 465억원이 지출됐다. 산업은행은 최근 연구에서 북한의 경제를 통일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10년 간 최소 705조원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북한과 경제협력이 성사될 경우 앞으로 10년 간 최소 27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에는 남북협력기금뿐만 아니라, 인접국 공적개발원조(ODA)를 적극 활용하고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세계은행(WB) 등 국제금융기구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자본 조달 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북한 개발을 위한 막대한 재원을 모두 남북협력기금으로만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이런 다자개발은행(MDB)를 활용한 개발사업 및 ODA 활용을 통한 개발사업에 참여한 사례는 많지 않다. 이와 달리 다른 선진국의 개도국 개발사업 사례들을 살펴보면 ODA 및 국제금융기구와의 성공 케이스가 많다. 특히 일본의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는 동남아·중남미·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 국가에 양자 간 ODA를 통해 협력사업을 추진해 대상국 인프라를 건설하고 그와 관련한 개발사업권을 확보하며 투자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독일의 지멘스 역시 독일국제협력공사(GIZ)와 개도국 개발협력 사업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자국 기업이 강점을 보유한 분야를 중심으로 개도국 역량 개발, 도시개발 마스터 플랜 수립, 지식공유워크샵 등을 지원하며 해당 수원국 정부와 네트워크를 구축해 사업을 성공시켰다. 국제사회와의 개발사업 경험 부족은 자칫하면 북한 개발에서 소외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제기구와 함께 북한 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역량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들의 준비도 필요하다. 먼저 장밋빛 전망으로만 접근하기보다는 냉정한 사업 검토가 필수적이다. 대북 사업은 기회만큼이나 많은 위험이 존재한다. 대북 투자를 경험했던 많은 실패 사례가 보여주듯이, 투자를 집행하기 전에 신중한 사업 검토가 필요하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전제함은 물론, 북한의 정치·산업·제도 등 다방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 요인에 대한 면밀한 파악이 병행돼야 한다. 지금은 정치 리스크가 남북관계 회복에 따라 점차 완화되고 있지만 투자·노동·조세·토지와 관련한 규제 측면에서의 불확실성은 남아있다. 북한의 ‘북남경제협력법’과 ‘외국인투자법’ 등에 기초해 정치·경제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통해 투자 가능 여부, 토지 이용 권한, 분쟁 해결 절차 등 구체적인 리스크를 따져봐야 한다. 리스크 점검과 함께 투자비 회수 방안을 단계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북한 ‘북남경제협력법’ ‘외국인투자법’도 검토해야

북한 경제의 문이 언제 어떻게 열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문이 열렸을 때를 대비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남들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북한 투자를 위해 관련 전문 인력을 미리 육성해야 하고, 어느 지역, 어느 부분에 투자를 집행할 것인지, 투자를 위한 자본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이보다 앞서 정부와 민간 투자자의 상호협력 하에 한국이 앞으로 경제협력과 개발사업 진행에서 최적의 파트너라는 신뢰를 북한 당국에 심어주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기업과 투자자들 역시 지금부터라도 북한에서의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고 과거의 경험, 북한의 현재 상황, 내가 가진 자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 및 진출 전략을 사전에 수립할 필요가 있다.

1443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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