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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에 희비 엇갈린 키즈산업] ICT 콘텐트·키즈카페는 ‘맑음’ 일반 완구·소매점은 ‘흐림’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온·오프라인 상반된 수익구조 영향…“자체 경쟁력 강화 더 신경 써야” 목소리도

▎국내 한 키즈카페에서 아이들이 자그마한 기차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다. 키즈카페 시장은 해마다 급성장하면서 국내 키즈산업의 핵심 분야 중 하나로 떠올랐다.
선진국에 이어 국내에까지 휘몰아친 극단적인 저출산 추세에 산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각 가정의 아이들, 그리고 아이를 둔 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키즈(kids)산업’은 과거보다 급격히 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저출산이 키즈산업에 ‘득’ 아닌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우려는 이미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키즈산업 규모는 2002년 8조원에서 2007년 19조원, 2012년 27조원, 2015년 38조원 등으로 급성장을 거듭했다. 지난해엔 40조원이 넘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15년 이후로는 예년보다 성장세가 둔화된 기미가 다소 보인다는 측면에서 저출산 여파가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다는 추론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성장세가 유지 되고 있는 이유는 저출산이 ‘하나만 낳더라도 되레 더 귀하게 여겨 잘 키우려 하는 아이’라는 의미의 ‘골드 키즈’ 증가와 핵가족화 및 맞벌이 부부 급증에 따른 아이 돌봄 서비스 수요 증대 등의 원동력으로 기능해서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그런가 하면 키즈산업 중에서도 ‘저출산에도 잘 되는 분야’와 ‘저출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잘 안 되고 있는 분야’가 따로 있어 이처럼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잘 안 되는 분야가 늘어나면서, 전체적으로 성장은 하되 성장세는 다소 더뎌진 최근의 통계로 수렴하게 됐다는 논리다.

국내 키즈산업 규모 40조원 넘어


실제로 같은 키즈산업이더라도 분야별로 조금씩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분위기다. 잘 되는 대표적인 분야로는 최신 정보통신기술(ICT) 접목 콘텐트와 플랫폼, 키즈카페나 중소 규모 테마파크 같은 시설물 등이 꼽힌다. 글로벌 사례에서부터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서비스 기업 ‘유튜브’는 2015년 아이들을 위한 영상 콘텐트 제공 플랫폼 ‘유튜브 키즈’를 출시, 지금까지 35개국에서 11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누적 조회 수만 300억회를 넘어섰다. 지난해 5월 한국에서도 출시돼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애초 유튜브 측은 스마트폰 전성시대에 세계 부모들이 육아 과정에서 아이가 재밌어 하는 영상을 보여주고 가르치기와 놀아주기를 간편하게 병행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음을 파악, 이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일종의 아이 돌봄 서비스 대체재로 부각된 것이다.

경쟁 기업에 자극 받은 미국 ICT 공룡 아마존도 올 들어 인공지능(AI) 스피커 ‘에코닷’의 키즈 에디션을 출시하면서 신규 수요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AI 스피커는 오디오북과 질의·응답 기능을 제공하며, 아이가 심심할 땐 게임을 해보자고 제안하는 등 친구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국내 ICT 기업들 역시 키즈산업에 가세했다. 포털 업체 네이버는 유아용 단어 학습 콘텐트 ‘파파고 키즈’와 음성 인식 AI를 적용한 키즈폰 ‘아키’를 출시했고, 카카오는 AI 스피커 ‘카카오 미니’에 유명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아이 이름을 부르며 칭찬해주는 기능을 추가했다. 이동통신 업체들도 적극적이다. KT는 최근 선보인 ‘키즈랜드’ 서비스를 통해 아이들을 위한 무료 영상 채널을 제공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U+tv 아이들나라’에 유튜브 키즈를 지난해 3분기부터 탑재, 올해 1분기까지 가입자가 분기당 전년 동기에 비해 15% 이상씩 증가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십수년 동안 지속된 저출산 추세에 통상 키즈산업 수요 자체가 줄어든 것으로 해석됨에도 아이들을 위한 ICT 콘텐트·플랫폼 분야가 이처럼 호황인 이유는 뭘까.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이용자의 전체 이용횟수가 곧 수요가 되는 ICT 환경 특유의 무한한 파급력 때문”으로 분석했다. 예를 들어 제조업 등 웬만한 오프라인 산업에선 소비자의 절대숫자가 줄면 줄수록 수요도 자연히 줄어든다. 하지만 온라인에선 소비자의 절대숫자가 줄었더라도 조회 수와 같은 이용횟수가 급증하면서 해당 서비스의 수익성 강화로 이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대표적 ICT 서비스인 IPTV(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 제공되는 쌍방향 TV 서비스)의 경우 영유아 가정의 시청 시간이 일반 가정에 비해 20% 정도 긴 것으로 알려져 소비자 유인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인터넷 방송 사업자인 CJ E&M의 크리에이터 전문 채널 ‘다이아(DIA) TV’는 최근 4년 간 키즈 분야의 누적 조회 수 비중이 전체의 34.5%에 달하면서 증권가로부터 “수익성 강화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오프라인에서도 잘 되는 분야는 따로 있다. 선진국들에서 유행해 국내로도 유입된 키즈카페와 중소형 테마파크다. 객단가(소비자 1인당의 평균 매입액)가 올라서다. 국산 애니메이션 ‘최강 전사 미니특공대’를 소재로 한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큐브스튜디오의 박상훈 대표는 “저출산으로 아이들 수가 줄었어도 고객들이 아이 한 명에게 쓰는 비용은 되레 늘었다”며 “객단가가 과거 6000원에서 최근 1만1000원으로 두 배 가까운 수준이 됐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하남에 있는 이 테마파크 1호점의 월매출은 평균 1억5000만원 이상일 만큼 인기다. 키즈카페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성업을 이루고 있다.

키즈카페·테마파크 성업 비결은 객단가 상승

이와 달리 고전하는 키즈산업 분야도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일반 완구와 관련 유통업이 대표적이다. 이 또한 글로벌 사례에서부터 극명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덴마크의 세계적 완구 기업인 레고(동명의 블록 제품들로 유명)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7.7% 감소한 58억 달러에 그쳤으며, 순이익은 무려 17%나 감소했다. 주요 시장인 북미와 유럽에서 매출과 순이익이 급감한 게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레고로서는 ‘오픈 이노베이션(기업이 연구·개발(R&D)과 상품화 과정에서 외부 기술이나 지식을 적극 활용하는 경영 전략)’으로 불황에도 선방을 했던 과거 성과가 무색해졌다. ‘모노폴리’ 보드게임으로 유명한 하스브로, ‘바비’ 인형으로 잘 알려진 마텔과 같은 미국의 초대형 완구 기업들도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5% 감소하는 등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완구 유통업 쪽은 하향세가 한층 심각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부모들이 아이 손을 잡고 함께 방문해 완구를 고를 수 있는 소매점’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미국의 토이저러스는 지난해 9월 막대한 부채 압박을 견디지 못해 현지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 세계적 화제가 됐다. 이어 올 들어서는 미국은 물론 영국과 호주 등 세계에 있던 수천개의 매장 문을 닫았다. 이런 분위기는 국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2007년부터 국내에 자리잡은 토이저러스 매장 전체의 전년 대비 평균 매출 증가율이 2013년 5.2%에서 2016년 1.1%로 눈에 띄게 하락했다. 단, 이들 매장은 롯데마트가 2026년까지 라이선스 계약을 하고 운영 중이라 당장에 문을 닫을 일은 없다.

국산 완구 쪽도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던 1세대 기업들이 잇따라 외국 자본에 팔리거나, 실적 부진 늪에 빠지면서 위기 신호음을 내고 있다. 국내 1위 완구 업체였던 손오공은 2016년 마텔에 지분 12%가량을 넘기면서 최대주주 자리를 내줬다. 손오공은 지난해 매출이 1041억원으로 전년 대비 19.5% 감소했고 11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적자 전환했다.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캐릭터 완구 ‘또봇’을 개발한 영실업도 2012년 홍콩계 사모펀드 HCP에 인수된 후 2015년 홍콩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에 재매각됐다. 올해 현재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 가입사의 80% 이상은 종업원 10인 미만 영세 기업인 상황에서 업계의 분위기 반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이들의 대부분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감소했다.

다만 이 같은 오프라인 완구 및 관련 유통업의 침체가 국내 외 저출산의 영향 때문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수요 감소의 원인이 저출산뿐 아니라 다른 데도 있으며, 이것이 저출산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다. 박상현 리딩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주요 소비층인 3~12세 아이들이 선호하는 완구가 변화한 것, 즉 아이들의 소비 패턴이 변화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ICT 기반의 콘텐트·플랫폼이 잘 되고 있는 것과 연관이 깊다. 스마트폰 전성시대에 아이들에게 인기인 완구는 스마트폰으로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나 동영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단적으로 아이들이 레고 조립보다 유튜브에 올라온 콘텐트 시청에 훨씬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실제 국제구호개발단체 굿네이버스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 초등학생 1579명의 87%가량은 스마트폰을 보유했고, 이들 중 90.5%는 음악 감상, 영상 시청, 게임과 SNS 이용에 스마트폰을 쓴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또 평균적으로 평일 4시간, 주말 4.4시간을 스마트폰과 함께 보내 성인(평균 4.3시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여기에 요즘 아이들은 6세만 넘으면 일반 완구보다 스마트폰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도 있었다. 아울러 이들의 부모 세대도 스마트폰 쇼핑에 익숙해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에서 아이용 완구를 고르고 구매하는 쪽을 선호한다. 더구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하는 쪽이 오프라인 구매 때보다 훨씬 저렴하다. 오프라인 완구 및 유통업의 쇠락에는 저출산 외에도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수입 완구가 국내 완구시장 60% 차지

그러나 일각에선 국내 산업계가 자체 경쟁력 강화에 소홀했기에 저출산과 스마트폰의 ‘침공’에 그만큼 더 고전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외부 요인이 작용했지만 내부 요인도 컸다는 것이다. 완구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지난해 1조5000억원 규모였던 국내 완구시장의 60%는 수입 완구가 차지했다”며 “이 기간 완구 수입액이 전년 대비 99% 증가한 9000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달리 지난해 국산 완구의 수출액은 960억원에 불과했다. 저출산과 스마트폰에 완구 전반이 수요를 뺏겼다는 분석에도 수입 완구를 찾는 수요는 오히려 늘었는데, 단순히 저출산과 스마트폰을 핑계 삼기보다는 그사이 국산 완구에 대한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떨어지면서 경쟁력을 잃은 게 아닌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업계 한 관계자는 “2003년 처음 등장해 선풍적 인기를 모은 ‘뽀로로(국내 기업 아이코닉스와 오콘 등이 공동기획·제작한 유아용 애니메이션의 대표 캐릭터)’ 같은 킬러콘텐트가 2010년대 들어선 거의 나오지 않으면서 과거 인기 캐릭터를 ‘재탕’한 완구나 (시장에) 나오다보니 점차 외면을 받은 것”이라며 “완구 매장들도 특색 있는 구성 등으로 차별화하거나 소비자가 납득하기 힘들었던 마진(중간 이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업계 전반의 경쟁력 강화 노력이 한층 치열한 고민 속에 더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1443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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