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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사에 칼날 겨누는 공정위] 지주회사 만들라더니 지주회사라서 규제?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공정위, 자회사·손자회사 의무지분율 상향 검토…“제도와 부작용 구분해서 규제해야”

대기업 지주회사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수술대에 올랐다. 공정위는 자회사·손자회사의 의무지분율을 높이는 방안을 주요 내용으로 담은 지주회사 규제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주회사들이 설립 목적과 달리 배당 외 수익에 의존해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 사익 편취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경영 투명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지주회사가 이제는 ‘재벌개혁’의 이름으로 규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지주회사에 대한 정부 정책이 일관성 없이 지나치게 오락가락한다는 볼멘소리도 쏟아져 나온다.

지난 7월 6일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이하 특위)와 한국경쟁법학회는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방안 마련을 위한 2차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특위는 이 자리에서 6차에 걸쳐 진행된 기업집단법제에 대한 논의 내용과 결과를 발표했다. 특위는 “자·손자회사 의무지분율 상향, 부채비율 상향, 공시 강화, 공동손자회사 금지 등 지주회사를 통한 과도한 지배력 확대와 지주회사의 사익 편취 수단화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고, 그 결과 의무지분율 상향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지주회사가 손자회사를 세울 때 총수 일가가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지분 비율을 상향 조정해 적은 돈으로 손자회사를 세워 지배력을 확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지주사가 자회사·손자회사를 세울 때는 상장회사는 20%, 비상장은 40%의 지분을 보유해야 한다. 증손회사의 지분율은 100%인 경우에만 허용한다. 의무지분율이 상향되면 다시 수조원을 투자해 자회사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재계는 자금 확보를 위해 회사를 매각하거나 일부 지분을 정리하면 오히려 지배구조를 뒤흔들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 밖에도 공정위는 사업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만 손자회사를 만들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주사를 통한 사익 편취를 막기 위해 지주회사의 내부거래 공시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주회사에 대한 과세 특례 제도도 손을 볼 가능성이 있다. 법인세법에 따르면 자회사가 상장사일 경우 지분율이 20~40% 구간에서는 자회사 배당금의 80%, 지분율 40% 초과시에는 100%에 대해 익금불산입하고 있다. 비상장사는 40~80% 구간에서는 80%, 80% 초과 지분을 보유할 때는 100%에 대해 세제 혜택을 받는다. 익금불산입은 법인세법상 다른 법인으로부터 들어온 배당금을 수익으로 치지 않아 세제 혜택을 주는 제도를 말한다. 세제 혜택 구간을 높이거나, 익금불산입 비율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기업이 받는 세제 혜택을 줄일 수 있다.

지주회사 제도 ‘금지→부활→장려→규제’


지주회사는 주식으로 다른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회사를 말한다. 주식 보유 회사의 경영을 지휘·감독하고 이들로부터 배당금과 브랜드 사용료(로열티) 등을 받는다. 한국은 1986년대부터 지주회사의 설립·전환을 전면 금지해왔다. 대기업 독점 등을 우려해서다. 한 회사가 많은 자회사를 두면 경제력이 집중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자 당시 대다수 대기업들은 금지된 지주회사 체제 대신 순환출자 구조를 구축했다. ‘A회사→B회사→C회사→A회사’ 형태로 돌아가면서 지분 고리를 엮는 것이다. 기업 총수들은 이런 복잡한 지분 구조를 통해 적은 지분을 갖고도 전 계열사를 좌지우지했다. 당시 정부도 이를 용인했다. 기업의 ‘덩치’를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순환출자 구조에선 기업의 사업영역 확대와 외형 확장이 쉽다.

그러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순환출자 구조에서 한 계열사의 실적이 나빠지면 다른 계열사도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외환위기의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정부가 순화출자 해소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99년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지주사회사 체제를 부활시켰다.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재벌의 복잡한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었다. 지주회사 체제가 되면 기업 지배구조는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 식으로 지분 구조가 단순해진다. 한 회사에 문제가 생겨도 전체가 흔들리진 않는다. 법으로 지주회사 체제 안에서는 서로 지급보증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분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아 지분을 떼어 팔기도 쉽고 사서 붙이기도 쉽다. 그만큼 잘 안 되는 사업을 쉽게 정리할 수 있다. 또 대주주들이 누구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등 기업 경영을 보다 투명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강조됐다.

정부의 장려 속에 2003년 LG그룹을 시작으로 SK·두산 등 재계 전반으로 지주회사 전환이 잇따랐다. 지난 2006년 31개였던 지주사는 10년 만에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주회사 제도는 2007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제한 요건을 완화하며 또한 번 전기를 맞았다. 지주회사가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 지분을 상장회사는 30%에서 20%로, 비상장회사는 50%에서 40%로 축소했다. 지주회사의 부채비율도 종전 100% 이하에서 200% 이하로 완화했다.

아울러 자회사-손자회사 간 사업 관련성 요건을 폐지하고 100% 증손회사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현물출자로 지주회사를 설립하거나 전환하면 양도차익에 대한 법인세·양도소득세 과세를 주식 처분까지 늦췄다. 또 지주회사의 수입배당금과 관련해 법인세 감경 혜택 등도 줬다. 반대로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는 강화됐고, 2014년부터는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됐다. 이에 따라 금호아시아나·CJ·롯데 등 주요 대기업이 지주회사 체제로 속속 전환했다.

공정위 “지주회사 체제, 사익편취 용도로 변질”


이렇게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하던 정부가 최근 들어 지주회사를 향해 칼을 빼 든 건 소유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해 일부 조건을 부여해 도입한 지주회사가 변질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계열사로부터 배당금을 받기보다는 브랜드 수수료, 부동산 임대료, 경영컨설팅 수수료 등을 매개로 내부거래를 하면서 총수일가의 지갑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3일 공정위가 공개한 ‘지주회사 수익구조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주회사의 수익에서 브랜드 수수료, 부동산 임대료, 컨설팅 수수료 등 배당 외 수익(43.4%) 비중이 배당 수익(40.8%)보다 큰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배당 외 수익과 관련된 거래는 전부 수의계약이었고 소액 거래가 많아 대부분 이사회 의결도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공정위는 지주회사가 직접 출자부담을 지는 자회사보다는 손자회사·증손회사 등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봤다. 총수 일가가 대부분의 지분을 가진 지주회사가 자회사에 손자회사·증손회사까지 세워 내부거래로 과도한 이익을 얻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주회사의 자회사는 2006년 평균 9.8개에서 2015년 10.5개로 소폭 증가한 반면, 손자회사는 6개에서 16.5개로 늘었다. 공정위는 지주회사가 이렇게 손자회사 등을 늘린 후 내부거래로 손쉽게 부를 쌓았다고 보고 있다. 자회사·손자회사·증손회사와 내부거래 비중이 55%에 달했는데, 이는 전체 대기업 평균(14.1%)의 4배 수준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의 규제 추진을 두고 먼저 떠오른 논란은 지주회사가 받은 돈이 과도한지 여부다. 특히 브랜드 사용 거래는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렵고, 적정 가격을 산정하기가 까다롭다. 재계는 “적당한 수준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주회사가 브랜드 수수료 등 배당 외 수익을 올리는 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데 국내 기업만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발표했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브랜드 사용료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는 “해외 주요 대기업 집단의 브랜드 사용료율은 매출액 대비 0.1~2.0% 수준으로 국내의 브랜드 사용료율(0.007~0.75%)보다 높다”고 분석했다. 미국 크리스피크림도넛은 매출액의 2%, 메리어트 그룹은 5~6%를 브랜드 사용료로 지주회사에 지급한다. 일본 야후도 미국 야후에 총이익의 3%를 브랜드 사용료로 지급한다. 최근 지주사로 전환한 한 대기업 임원은 “별도로 영위하는 사업이 없는 게 지주회사라 당연히 내부거래 비중이 클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정상적 거래까지 부당 내부거래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판단하면 지주회사 체제의 존립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브랜드 로열티 수준 두고 논란

재계는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규제에 떠밀려 수조원을 들여 지주사 전환을 마쳤는데 이제 와서 ‘그것도 규제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전경련 주최로 열린 ‘기업과 혁신 생태계’ 특별대담에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재벌 개혁을 명분으로 기업 지배구조에 간섭하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지주사는 과거에 불법이어서 기업들이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순환출자라는 재주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며 “어렵게 만들어놨더니 다시 지주사로 전환하라면서 기업의 존폐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도와 부작용을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진보 경제학자는 “부작용을 규제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필요할 땐 특정 제도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만능 처방인 것처럼 선전하다가 갑자기 부작용이 있으니 규제하겠다고 나서면 정책의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순환출자’ ‘지주회사’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문제가 되는 편법이나 부작용을 막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444호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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