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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성장률 목표 그 후] 저성장? 안정상태 도달로 볼 수도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3%선에서 낮추자 논란...“복지지출 확대도 성장률에 간접적 영향” 주장도

정부가 7월 18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9%로 낮추자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의 앞자리가 바뀌긴 했지만 불과 0.1%포인트 차이로 한국 경제는 천국과 지옥을 오갈 만큼 큰 변화를 겪게 되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1730조원대였다.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을 제외하면 우리 경제가 최고 효율을 발휘해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성장률을 3%대로 높게 잡았던 곳은 없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최초로 2%대로 내려 잡았고, 민간경제연구소들도 2.5~2.8% 정도로 봤다.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최근 들어 꺾인 것도 아니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3.1% 성장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성장 이유로 민간소비가 완만한 회복세(2.6%)를 보였고, 건설투자(7.5%)와 설비투자(14.6%)가 큰 폭으로 늘어난 점을 꼽았다. 2012년 1분기 이후 지난해 4분기까지 한국 경제가 전년 동기 대비 3% 이상 성장한 분기는 10번으로 절반이 안 됐다. 저성장 기조는 이미 오래 전 시작됐고, 사실상 경제가 안정상태에 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이상을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기적적인 성장을 바라는 사람들: 우리는 여전히 ‘한강의 기적’이란 말을 쓰고 있듯 ‘기적’이 기적처럼 이어지기를 바란다. 한강의 기적이란 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경제가 크게 성장하면서 나온 ‘라인강의 기적’을 모방한 말이다. 그런데 독일의 경제성장률이 얼마나 높았길래 ‘기적’이란 말이 나왔을까? 1948년부터 1972년 오일쇼크 전까지 독일은 연평균 5.7% 성장했다. 같은 기간 일본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8.2%였다. 한국은 1953년 이후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가장 좋았던 기간의 평균이 7%대였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이 중 가장 고성장 했던 일본조차 ‘기적’이라기보단 전쟁으로 자본이 파괴된 국가가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경제학과에서도 교과서로 많이 쓰는 ‘거시경제학’ 책에서 일본과 독일의 전후 경험은 전쟁으로 자본이 파괴되면서 급격한 생산량 감소가 온 이후 평균에 도달하기 위해 높은 성장이 뒤따르는 것이라며 ‘기적’이라는 양국의 경제성장도 경제성장 모형 내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이 2000년 이후 연평균 9.3%씩 경제성장을 이뤄냈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이를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만, 이런 수치들을 의심하고 있을 뿐이다. 2000년대 이후 평균 경제성장률을 보면 미국은 2%, 일본은 0.9%였다.

다양한 경제성장률: 기본적으로 경제가 3% 성장했다는 건 지난해보다 올해 GDP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GDP는 3가지 측면에서 산출할 수 있다. 첫째, 지출을 전부 더하는 지출국민소득이다. 가계소비+기업투자+정부지출+순수출이 GDP다. 가계소비는 일반 최종소비자들의 소비, 투자는 기업이 구매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순수출은 수출에서 수입을 뺀 것이다. 둘째, 생산을 전부 더하는 생산국민소득이 있다. 최종생산물의 가치를 다 더한 값이다. 셋째, 모든 소득을 다 더하는 분배국민소득이 있다. 생산활동에 참가한 생산요소에 대해 지급되는 소득의 총액을 말한다. 국민소득 삼면등가의 원칙이라는 말은 이 세 가지 방법으로 구한 국민소득이 모두 같다는 얘기다. GDP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명목과 실질 GDP로도 나뉜다. 명목 GDP는 현재 재화의 가격에 생산량을 곱한 것으로 만약 모든 가격이 전년보다 두 배씩 올랐다면 GDP도 두 배가 된다. 이와 달리 실질 GDP는 재화와 용역의 생산량을 측정하되 가격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기준연도를 설정해 생산가치를 불변가격으로 측정한다. 실질 GDP가 경제를 좀 더 잘 설명한다.


명목이든 실질이든 GDP는 실제 통계수치지만 잠재 GDP는 한 나라가 갖고 있는 모든 생산요소를 가동해 인플레이션 없이 순수하게 달성할 수 있는 가상의 성장률이다. 실제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을 웃돌면 경기 과열이고, 밑돌면 경기 침체라고 한다. 다만 잠재성장률은 공식적인 통계는 아니고 여러 가지를 고려한 전망치기 때문에 추정하는 곳마다 다소 다르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대략 2.5~2.9% 정도다. 한국은행은 2.8~2.9%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집필자 개인의 의견임을 전재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000년대 초반 5% 내외에서 2010년대 들어 3% 초중반으로 하락한 데 이어 2016~2020년 중에는 2.8~2.9%일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 두 가지를 꼽았다. 우선 생산성의 하락이다. 여전히 서비스업 발전이 미흡하고, 규제 등으로 경제 생산성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자본축적의 약화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자본축적도가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서 추가 상승이 어려워졌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불확실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시작되면 그 여파로 당분간 경제성장률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 미즈호종합연구소는 올 4월 무역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한국 GDP가 약 1.1%포인트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분쟁 당사국인 미국의 -0.9%보다 0.2%포인트나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제성장률에 집착하는 이유: 미국 정부는 지난 10여 년 간 연평균 2%대 성장을 해왔지만 목표는 항상 3%였다. 분기별로는 지난해 3분기에 이어 올해 2분기에도 전년 대비 성장률 3%를 넘겼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제경제위원장은 7월 18일 경제 방송사 CNBC가 주최한 ‘알파 콘퍼런스’에서 “2분기 경제성장률 3%를 달성하고 몇 분기 동안은 4%에 이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2008년 이후 달러를 찍어내면서까지 경제성장 3% 달성에 집착해왔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성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6.5%라는 경제성장률 목표를 놓지 않고 있다. 중국의 민간 경제연구소인 화샤공급경제학연구원은 이렇게 성장하면 2025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수 있고, 현재 중국의 군사력도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역대 정부들도 하나같이 경제성장률에 집착해왔다. 사실 경제성장률 특히 잠재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방법은 비교적 명확하다. 하지만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인구가 늘어나 노동인구가 증가하거나, 저축 등 자본축적이 늘어나거나,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노동 효율성이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IMF는 지난 2014년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한국이 잠재경제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여성과 청년의 노동참가율을 높이고, 규제를 완화해야 하며, 서비스업 생산성도 높일 것을 주문했다. 특히 노동 보호 정책을 축소하고 구조조정을 더 광범위하게 실시하라는 충고도 했는데, 경제는 성장할지 모르지만 경제 구성원 특히 가계의 삶의 질에는 좋을 것 없는 처방이다.

전통적 해결책 외에 성장의 질에 초점을 맞추자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5월 현대경제연구원은 ‘분배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과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과 신흥국 9곳의 소득재분배지수를 비교했다. 보고서는 소득재분배지수가 0.01포인트 올라가면 경제성장률이 0.10%포인트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미국·덴마크·스웨덴 등 10개국은 소득과 분배 모두 좋아졌는데 이런 경우 소득재분배 지수 1포인트가 올라가면 경제는 0.15%포인트 성장했다. 한 마디로 GDP에는 잡히지 않는 실업급여나 세금감면 등도 경제성장에 간접적으로나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다.

1444호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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