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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 주최 제1회 휴브리스(오만) 포럼] 권력·성과·찬사가 오만 부른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조직 무너뜨리는 중요한 원인...리더 스스로 자기 검증해야

▎7월 17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회 휴브리스(오만) 포럼’에서 유진 새들러 스미스 영국 서리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전민규 기자
어느 날, 누군가 큰 성공을 이룬다. 성공한 리더는 점점 ‘자신이 유능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성공시켰다’는 위험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모든 결정권은 최고경영자에게 집중되고, 최고경영자가 없으면 되는 일이 없는 조직으로 변질된다. 이런 분위기가 조직에 형성되면 주변 사람들은 최고경영자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사실만 전달하고, 그 외의 것은 전부 차단된다. 아무런 견제나 검증 없이 주변의 의견을 무시하고 중대한 사안도 혼자 결정하게 된다. 당연히 ‘판단의 오류’가 스며들면서 조직의 경쟁력은 추락한다. 경영자의 경영적 판단을 오도하고, 조직을 몰락에 빠뜨리는 전형적인 ‘휴브리스(Hubris·오만)’의 패턴이다.

최근 경영계와 학계에서 ‘오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를 거치면서 조직을 무너뜨리는 원인으로 오만을 지목하는 연구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큰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조직을 파탄으로 이끈 의사결정 과정 속에 리더의 오만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SUV 시장의 팽창에 힘입어 급부상했던 미쓰비시 자동차는 호시절의 오만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바라보는 ‘현실 부정’ 증세로 자멸했다. 2000년엔 제품 결함을 조직적으로 은폐해온 사실이 발각되기까지 했다. 가깝게는 대한항공 오너가의 ‘갑질’ 사태 역시 오만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리더와 조직이 오만해지는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난 7월 17일 국내외 경영계와 학계 전문가들이 이를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포브스코리아가 개최한 ‘제1회 휴브리스(오만) 포럼’에서다. 이 포럼을 위해 ‘영국 오만학회’의 이사인 유진 새들러 스미스 영국 서리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방한해 주제 발표를 맡았다. 한국에도 소개된 [직관]이라는 책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박한선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조지선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전문연구원, 백대균 월드인더스트리얼매니지먼트인스튜트 대표 등이 강연을 이어갔다.

오만한 CEO는 과잉투자 경향 보여

전문가들은 오만이 발생하는 주요 요인으로 ‘성공’을 꼽았다. 스미스 교수는 리더의 권력, 최근의 성과, 이에 따른 주변에서의 찬사가 오만을 유발하는 내적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리더가 자신의 권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고 찬사를 받으면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쉽다”고 말했다. 리더를 억제할 외적인 장치가 없을 때도 오만이 발생한다. 이사회가 약하거나 직언을 해줄 사람이 없는 경우, 또는 규제가 효과적이지 못한 경우다. 박한선 연구원은 “오만은 조직 내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며 “성공에는 필연적으로 오만이 따라 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은 보통 주위의 피드백을 통해 문제를 고쳐나가는데, 성공 경험이 결합되면 조언을 걸러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지선 연구원은 나아가 심리학적 측면에서 권력과 성공, 오만의 관계를 풀어냈다. 그는 “긍정적·낙관적이고 추진력 있는 ‘접근 성향’의 사람은 리더가 될 가능성이 큰 부류인데, 이들이 성공을 바탕으로 권력을 잡으면 이 성향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다”며 “이것이 과도해져 억제하고 멈춰야 할 때도 그러지 못하는 ‘탈억제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적절한 자신감과 야망은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요소지만, 동시에 오만을 기르는 양분이 된다”고 설명했다.

리더의 오만은 조직에 큰 부작용을 부른다. 스미스 교수는 “오만은 리더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무모한 결정을 내리게 만들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부정적 결과를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인수·합병(M&A) 때 대상 기업의 가치를 과대평가해 바가지를 쓰거나, 지나친 사업 다각화로 과도한 문어발식 경영을 하는 것 등이다. 콜롬비아 대학에서 106개 M&A를 연구한 결과 CEO가 오만한 경우 더 과잉투자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더의 오만이 기업의 존속마저도 위협할 수 있다. 백대균 대표는 “오만한 경영인은 과거의 성공에 집착해 변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변하고 진화하려 않는 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오만에 빠진 리더는 성공의 기반이었던 ‘공감 능력’이 크게 저하된다”며 “오만은 본래 장점이었던 리더의 특징을 단점으로 바꿔놓고, 규범을 무시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공감 능력 키우고 다른 의견 경청해야

한 번 싹 튼 오만은 바로잡기 어렵다. 오만은 리더의 자질인 자신감·자존감·추진력 등과 외적으로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경영자 스스로가 오만을 방지하기 위한 활동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 연구원은 “자기인식이 오만을 방지하기 위한 모든 변화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백 대표는 좀 더 체계적으로 자기 검증을 해야 한다 주장했다. 그는 “리더 스스로 ‘내가 하는 일이 전부 다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자신을 검증해야 한다”며 “제도적인 체크시트(Check Sheet) 시스템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미스 교수는 “CEO는 외로운 직업이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고립된 채 생활하면 현실감각을 잃고 오만에 사로잡히기도 쉬워진다”며 “이를 예방하려면 CEO의 행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주변에서 주의 깊게 관찰하고 피드백을 해주면서 그를 현실로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더가 토홀더(Toeholder, 발가락을 잡는 사람이란 뜻으로 리더와 신뢰를 주고받으며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를 곁에 두는 것은 오만을 예방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장치다. CEO가 믿고 의지하면서 조언도 구할 수 있는 친구를 사귀거나 비공식적인 동료 경영자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오만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는 또한 “CEO의 말이나 행동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변화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 CEO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근원이 어디인지 등을 파악해서 알려주는 것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리더의 오만은 발생 전부터 희미한 신호로 나타난다. 일상적인 대화나 가벼운 농담부터 소셜미디어, 연설에 이르기까지 리더가 하는 말에서 오만의 조짐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영국 석유 업체 BP가 2010년 멕시코만 석유 유출 사태를 일으켰을 당시 CEO였던 존 브라운의 기존 연설을 분석한 결과 끈기·공격성·성취 등의 단어 빈도수가 평균 이상인 반면 소통·인간·관심 등의 단어는 평균 이하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조 연구원은 권력을 쥔 리더가 스스로를 억제할 수 있는 작은 습관을 강조했다. 의사결정을 조금 늦추거나, 의무적으로 다른 의견을 듣는 것 등이다. 그는 “오만은 조직적인 활동의 산물이고 추종자들이 받쳐줘 증폭되는 것”이라며 “내 의견을 부하직원이 모르게 한 채 의견을 모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지 않고 그 사람을 쳐다보면서 대화하면 사라진 ‘공감 시스템’을 다시 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 연구원은 “급격히 변하는 상황에서 성패는 한 개인의 내적 자질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 따른 우연의 산물이라는 점을 유념하면서 겸손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1444호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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