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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화장품 로드숍 돌파구는] 시들한 로드숍 ... 싱싱한 편집숍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화장품 큰손’ 중국인 관광객 감소에 고전...연평균 20% 성장한 H&B스토어

▎CJ올리브영은 지난해 매장 수가 1000개를 돌파했다. / 사진:허정연 기자
대학가가 방학을 맞은 7월 12일 서울 서대문구 이대역 인근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주로 2~3명 무리를 이룬 외국인 관광객들은 거리에 늘어선 화장품 로드숍을 들락거리기 바빴다. 홍콩 출신의 소피아(21)는 에뛰드하우스로 들어서며 “벌써 세번째 서울을 찾는데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브랜드가 많이 없어져 아쉽다”고 말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 거리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들이 선호하는 화장품 로드숍도 성황을 이뤄 ‘한 집 건너 두 집’이 화장품 가게였을 정도다. 지금은 좀 다르다. 썰렁한 분위기다. 이 거리에서 로드숍을 운영하는 한 가게 주인은 “한동안 중국어가 가능한 점원이 있었는데 지난해 말 나간 이후로 추가 채용을 안 하고 있다”며 “이제는 단체관광 온 중국인보다 동남아나 홍콩·대만 손님이 주를 이루다 보니 예전에 비해 매출도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대역 상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의 영향으로 한국을 찾는 중국인이 줄어들자 이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던 화장품 로드숍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에이블씨엔씨(어퓨·미샤)·에뛰드하우스·홀리카홀리카·토니모리·더페이스샵·잇츠한불 등 화장품 로드숍 운영업체 주요 6개사 중 잇츠한불을 제외한 5개사의 지난해 매출은 모두 전년 대비 하락했다. 미샤와 어퓨 등을 보유한 에이블씨엔씨는 1년 새 영업이익이 절반 넘게 줄었다. 토니모리는 4년 만에 처음으로 외형이 11.7% 감소한 데다 적자로 전환되는 어닝쇼크를 보였다. 토니모리는 지난해 1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의 로드숍 브랜드인 이니스프리와 에뛰드하우스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니스프리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5% 감소한 107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6420억원으로 16% 줄었다. 에뛰드하우스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6% 하락한 4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화장품 판매 호조세로 역대 최대 실적을 낸 LG생활건강도 로드숍 브랜드인 더페이스샵에서는 죽을 쒔다. 업계 1위 더페이스샵의 지난해 매출은 5674억원대로, 전년 대비 12.6% 감소해 업계에서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영업이익 역시 두자릿수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LG생활건강은 이런 상황을 우려한 듯 2015년 2000개의 육박하던 로드숍 수를 지난해부터 꾸준히 줄여나갔다.

주요 화장품 로드숍 운영회사 매출 줄고 적자 전환도


이들과 달리 올리브영·랄라블라·롭스 등 H&B(헬스앤뷰티) 스토어의 성장은 눈부셨다. 국내 드럭스토어 시장은 지난 5년간 연평균 22.5% 성장해 올해 시장 규모 2조원대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 H&B 매장 수는 약 1350개로 2년 전 700곳에서 크게 증가했다. 일명 ‘드럭스토어’로 불리는 H&B 스토어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등장한 유통채널로 의사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의약품에 건강식품·화장품 등을 함께 파는 소매형 잡화점을 말한다. H&B스토어는 다양한 제품을 브랜드와 상관없이 한 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강점이다. 자사 제품만을 진열하는 브랜드 로드숍과는 차별성이 있다.

국내 드럭스토어 업계 1위 CJ올리브영은 매출액이 2012년 3085억원에서 지난해 1조5000억원으로 뛰었다. 이는 경쟁 업체인 랄라블라·롭스·부츠 매출을 합친 것보다 5배나 많다. 1999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1호점으로 출발했던 올리브영의 매장 수는 2012년까지 270개에 그쳤지만 지난해 1000개를 돌파하며 5년 새 급성장했다. GS리테일은 올 초 기존 왓슨스에서 랄라블라로 브랜드명을 바꾸고 올리브영의 독주를 막기 위해 뛰어들었다. 현재 190여곳인 매장 수를 연내 3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랄라블라는 H&B 업계 최초로 택배 서비스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즉시 환급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랄라블라가 외형 성장에 드라이브를 건 이유는 H&B 시장의 빠른 성장세 때문이다. H&B 시장은 최근 3년 간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 H&B 시장점유율은 올리브영 64%, 랄라블라 15%, 롭스 8% 순이다. 여기에 이마트가 지난해 글로벌 H&B 스토어인 부츠를 국내에 선보이며 경쟁에 가세했다. 국내 11개 매장을 보유한 부츠는 최근 신촌 명물거리에 매장을 하나 더 추가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부츠 신촌점은 20여년 간 맥도날드가 있던 자리로 신촌 상권의 핵심으로 꼽힌다. 부츠 관계자는 “진출 초기 국내는 물론 해외 유명 브랜드를 보유해 고급화 전략을 내세웠지만 2030세대 유동인구 비중이 큰 신촌 진출을 통해 본격적으로 젊은 고객도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 진출 등 판로 개척 나선 로드숍 업계

H&B스토어에 밀린 화장품 로드숍도 반격에 나선다. 에뛰드하우스는 올 초 쿠웨이트·두바이 매장 오픈을 시작으로 중동시장을 비롯한 해외 시장 진출에 속력을 낸다. 이니스프리는 브랜드와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그린 라운지, 가상현실(VR) 존 등을 설치하고, 신제품을 꾸준히 선보여 상품 경쟁력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더페이스샵은 기존 브랜드숍에서 편집숍 형태인 ‘네이처컬렉션’으로 전환하는 데 주력한다. 네이처컬렉션은 LG생활건강의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를 모아서 판매하는 편집숍으로 음료와 건강기능식품도 함께 판매하는 헬스앤뷰티 스토어와 유사한 형태의 매장이다. 현재 전국에 169개 매장을 운영 중이며 이 중 더페이스샵에서 전환한 매장만 68개로 전체의 40%에 달한다.

에이블씨엔씨는 중국 시장 공략으로 돌파구를 연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미샤는 지난해 말 유상증자로 1063억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여기에 자체 보유자금을 더해 올해부터 2년 간 2289억원을 중국 시장 공략에 투자할 계획이다. 에이블씨엔씨 관계자는 “중국 현지에 진출해있었지만 경쟁사들에 비해 소극적이었다”며 “중국 시장이 갖고 있는 잠재력이 큰 만큼 올해 중국 현지 시장 공략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잇츠한불은 비효율 매장을 철수해 수익성 개선에 나선다. 홈플러스 내 잇츠스킨 매장 20여곳을 정리하고 다른 대형마트 내에서도 순차적인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 아울러 잇츠한불은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달팽이크림을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게 돼 매출 변동성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잇다. 후저우 공장의 연간 생산 가능 물량은 3500만개로, 매출 환산시 2000억원 규모다.

‘적과의 동침’을 감수한 곳도 있다. 에이블씨엔씨의 또 다른 브랜드 어퓨는 최근 신세계백화점의 뷰티편집숍인 시코르에 입점했다. 그동안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들이 H&B스토어를 경쟁 상대로 인식해 입점을 꺼려온 전례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시도다. 업계 관계자는 “로드숍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출혈경쟁도 마다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소 업체 단독으로는 판로를 다각화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자체 매장 수는 적지만 H&B스토어에 입점해 브랜드 인지도를 지속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니모리는 GS리테일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GS25 전용 색조화장품 브랜드 ‘러비버디’를 공동 론칭해 올 초부터 판매 중이다. 토니모리 관계자는 “편의점 입점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이외에도 온라인·홈쇼핑·해외성장채널 등 유통채널 다각화를 통해 전년 대비 2배 이상의 매출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1444호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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