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걱정스러운 한국 경제의 ‘방수능력’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1994년인가 하룻밤에 두 번씩 자다가 깨어 찬물로 샤워하고 다시 잠을 청했던 끔찍한 경험은 다시 현실이 됐다. 더구나 국내외에서 들려오는 여러 뉴스는 더위에 짜증을 더한다. 이 더위에 자주 찾게 되는 것은 역시 물이다.

물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적인 존재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의 몸은 70%가, 물고기는 약 8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물은 항온성이 높아 생명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비열(specific heat capacity)’이란 물질 1g의 온도를 1도 올리는 데 요구되는 열 에너지로서, 물의 비열은 모래의 5배 이상이다. 열을 가하면 모래에 비해 물의 온도는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듯 항온성이 강한 물이 우리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처럼 뜨거운 날씨에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고, 엄동설한에도 몸이 잘 얼지 않는다. 물은 특히 식물의 광합성에 관여해 농작물 또는 이를 먹고사는 가축에게도 필수적인 요소다.

이런 물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애초부터 컸다. 예를 들어 기원전 6세기경에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탈레스는 물이 우주 만물의 기본 원소로서, 모든 물질은 물이 형태를 달리한 것뿐이라는 일원론(一元論)을 주장했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옛 중국의 오행설(쇠·물·나무·불·흙)과 인도의 5원소설(물·불·흙·바람·에테르) 등 세상의 기본 요소에 관한 고대사상에서 물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물은 신격화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태초에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os)와 땅의 여신 가이아(Gaea)가 결혼해 아들 여섯과 딸 여섯을 낳았는데 이들이 바로 거인족인 티탄 남매다. 이들 중 맏이가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Oceanos)다. 오케아노스는 그의 누이인 테티스(Tethys)와 결혼해 강의 신 3000 형제, 강의 요정 3000 자매를 낳아 실로 모든 ‘물’의 조상이 됐다. 이에 걸맞게 그의 이름은 오늘날 영어에 바다의 총칭인 오션(ocean·대양)이라는 단어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물’ 부부는 이후 지혜의 여신 메티스(Metis)와 행운의 여신 티케(Tyche)도 낳았다. 이는 물이 인간에게 지혜와 행운을 가져다 주는 존재이며, 물을 잘 쓸 수 있기 위해서 지혜와 행운이 필요하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 같다.

물은 또 인류 문명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해왔다. 고대 인류의 4대 문명, 즉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문명은 모두 큰 강을 기반으로 탄생한 것이다. 물이 인류 문명의 배양지가 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도 나라 이름이 물과 관련이 있는 주요국도 있다. 인구 순이나 국토면적 순으로 1,2위를 다투는 중국·인도·러시아가 대표적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중국의 이름은 ‘차이나’다. 중국을 처음 통일했던 ‘진(秦)’나라의 이름이 서방에 전해지면서 지금처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옥편을 찾아보면 이 한자는 벼의 품종을 뜻한다고도 되어 있다. 당연히 벼는 물이 없이는 살 수 없다. 인도의 영어식 이름 ‘인디아’는 지금의 인더스 강이 당시에는 산스크리트어로 ‘큰 강’을 뜻하는 ‘신두(Shindu)’로 불린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이를 당시 세계 문명의 중심이었던 페르시아에서 지리서를 편찬할 때 ‘힌두(Hindu)’라고 기록했고, 이것이 그리스·로마·스페인을 거치며 변형돼 지금의 이름으로 정착됐다는 것이다. ‘러시아’라는 이름은 ‘루스(Rus)’족에서 나왔는데 이는 돈 강, 드네프르 강 등을 배로 다니며 교역으로 먹고 살던 사람들의 명칭으로 원래 뜻은 ‘노 젓는 이’이다.

그런데 이렇듯 인류에게 생명과 갖은 혜택을 주는 물은 동시에 고통과 재앙을 가져다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거의 매년 당하는 수해는 말할 것도 없고 물은 세균의 배양원도 되기 때문이다. 더러운 물은 수인성 전염병 등 온갖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모든 나라의 고민이기도 했다. 물론 이를 잘 대처한 군대와 그러지 못한 군대의 승패는 갈렸다. 예컨대 19세기 중반 크림전쟁에서 영국군은 물이 잘 새지 않는 획기적인 코트를 보급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모직 코트의 원단은 존 에머리라는 사람이 개발한 것으로서 그는 이 원단에 특허를 받고 회사 이름도 이에 걸맞게 ‘아쿠아스쿠텀(Aquascutum, 라틴어로 물(아쿠아) 방패(스쿠텀)를 뜻함)’으로 바꾸었다. 이 회사는 지금도 명품 브랜드로 활약하고 있다. 2차대전 중에는 아프리카 전선에서 식수 관리에 실패한 롬멜의 독일 군대가 집단으로 이질에 걸려 전투력을 상실한 결과 결국 패배했다.

물이나 습기를 잘 막지 못하면 기계식 기기는 물론 고가의 IT 기기 등도 고장 나고 못쓰게 되는 피해도 있다. 컴퓨터 메인프레임 등 정밀기기가 들어 있는 방에 예외없이 정교한 제습기가 하루 종일 돌아가고 있는 이유다. 시계 등 상당수 휴대용 기기는 그 자체에 방수기능을 넣어 물로 인한 피해를 막고 있다. 방수(防水), 영어로 워터프룹(waterproof) 능력에는 ‘IPX’ 0에서 9까지 등급이 있어 등급이 올라갈수록 방수 능력도 커진다. 물론 ‘완벽한 방수’란 아주 고가의 장비 이외에는 없으며 아주 좋은 방수기능을 가진 기기라도 ‘수심 몇 이하에서 몇 분까지’ 이상은 버티지 못한다. 아파트, 고층 상가 등 신축 건물에서 완공 후 시공사가 하자보수로 가장 골머리를 앓는 것은 ‘방수’가 깨지는 것이고, 이를 잘못 해결하면 바로 부실 공사의 원흉으로 낙인 찍히기도 한다. 그런데 현장에 물어 보면 방수가 깨지는 경우는 부실 시공보다는 설계 용량보다 훨씬 많은 물이 사용돼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는 답변이 돌아왔었다.

조직에도 방수와 비슷한 개념이 있다. 필자가 모 회사의 평사원 시절 새로 부임한 임원이 업무 파악이 잘 안된 상태에서 ‘잘못된’ 지시를 내려 ‘안 좋은’ 결과가 예상될 때에는 조직이 제2, 제3의 대비책을 만들어 대응하는 것을 보았다. 같이 일하던 선배는 이를 워터프룹에 빗대어 ‘풀프룹(foolproof)’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 임원이 그런 지시를 계속 내리면 조직이 더 이상 대응하지 못했다. ‘조직의 방수’가 깨진 것이다.

올해 초 최저임금이 크게 오른 데 이어 내년에도 10% 이상의 인상이 예고돼 있다. 이 때문인지 고용·투자·소비까지 우리 경제의 여러 지표에서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올해 말로 갈수록 ‘근로시간 단축’ 정책 시행의 부작용이 가세한다면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또 내년에는 중산층 이상의 세부담을 가중시키는 세제개편이 예정돼 있다. 그러나 정부가 아직까지 최저임금의 지속적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정책기조를 바꿀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필자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최저임금이 ‘균형임금’이상으로 오르면 그만큼 실업이 발생한다고 쓰여 있다. 실업은 당연히 소비와 투자의 부진으로 이어진다. 현 정부의 정책기조는 이런 기존 경제학 이론에서 벗어나 ‘다른’ 시도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런 실험적 정책이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혹시 한국 경제의 ‘방수능력’이 이를 감당하기에는 이미 한계에 온 것이 아닌가 정말 걱정스럽다.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1447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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