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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압박에 은행권 희망퇴직 나서나]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꼴?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올 들어 은행원 3100여 명 짐싸 … 신규채용 규모는 희망퇴직자보다 적을 듯

KEB하나은행은 7월 말 만 40세·근속기간 만 15년 이상인 임직원을 대상으로 준정년 특별퇴직 신청을 받았다. 접수·심사한 결과 관리자급 직원 27명, 책임자급 181명, 행원급 66명 등 총 274명을 퇴직시키로 했다. 이번 희망퇴직자들의 퇴직금은 특별퇴직 관리자 27개월치, 책임자·행원급은 최대 33개월치 급여다. KB국민은행은 해마다 400명가량에 이르는 임금피크제 대상자를 중심으로 희망퇴직 접수를 받고 있다. 올해 시행 계획은 아직 미정이다. 다만 현재까지 노사 간 조정 등을 통해 200~300명 규모가 희망퇴직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H농협은행도 하반기에 희망퇴직을 실시한다는 원칙만 세워둔 상태로, 구체적인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다.

은행들의 희망퇴직 움직임은 금융당국이 희망퇴직을 독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5월 은행장들과 만나 “청년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부는 은행권 희망퇴직 확대를 일자리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정부는 ‘2018년 경제정책 방향’에도 산업·수출입·기업은행 등 금융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명예퇴직을 활성화해 신규채용 확대를 유도한다는 계획을 담았다. 최 원장은 은행장과 만남을 갖기 전 기자간담회에서 “희망퇴직 대상자에게 퇴직금을 많이 주면 10명이 퇴직할 때 젊은 사람 7명을 채용할 수 있다”며 “은행들이 눈치 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희망퇴직을 하고 퇴직금을 올려주는 것도 적극적으로 하도록 권장하겠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신규채용 3000명 웃돌 듯


정부의 희망퇴직 독려로 은행들은 지난해 연말부터 올 7월까지 우리은행 1020명, 신한은행 700여 명, 농협은행 530여 명, KB국민은행 400명, KEB하나은행 481명 등 5개 은행에서 3131여 명이 희망퇴직으로 짐을 쌌다. 그런 가운데 이들 5개 은행은 지난해 2175명을 신규채용했다. 올 하반기에는 은행들의 신규채용은 3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은행권에서는 퇴직자 규모는 지난해 수준 또는 그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희망퇴직은 은행의 인력구조나 대상자 범위와 보상 조건 등에 대해서 노사 간 공감대가 우선돼야 한다”면서도 “은행별로 퇴직자가 적어도 지난해보다는 많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신규채용에는 찬성하지만 현재 은행 영업구조로는 대규모 채용은 부담이라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고객들은 갈수록 은행창구와 같은 대면 채널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자동화기기(ATM) 등 비대면 채널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에 은행들은 인건비 등 운영비 절감을 위해 지점 통폐합과 직원 감축 등을 통해 조직 슬림화와 경영 효율성 강화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올 1분기 기준으로 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기업·씨티·SC제일은행 등 국내 8개 시중은행의 영업점 수는 총 5737곳으로 1년 전에 비해 228곳(3.8%) 줄었다. 반대로 디지털 금융 이용자는 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년 1분기 국내 인터넷뱅킹서비스 이용현황’에 따르면 올해 1~3월 일평균 인터넷 뱅킹 이용건수는 사상 처음 1억건을 넘어섰다. 이용 금액도 53조6533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은행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일자리를 늘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신규 채용을 늘리는 것은 맞으나 고용 확대를 고민하지 않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면 결국 제자리일 뿐”이라며 “희망퇴직을 늘려 청년채용을 늘리라고 하는 것은 강제적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정부가 앞장서서 묵인하고 권장하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노조는 최근 만 55세인 은행권 임금 피크제 시행 연령과 만 60세인 정년을 각 3년씩 늘려야 한다며 2년 만에 총파업을 예고했다. 이들은 8월 7일 총파업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93%가 찬성해 9월 중 파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은행들의 실적도 좋아 희망퇴직 조건은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들은 올 상반기 최대 실적을 냈다. 금리 상승으로 은행 수익의 핵심인 이자이익이 증가한 덕이다. 우리은행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조2369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1조984억원)보다 18.8% 늘었다. 자회사 실적까지 포함한 당기순이익은 1조3059억원에 달한다. KEB하나은행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조1933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19.5% 증가했다. 신한은행은 1조2718억원, KB국민은행은 1조3533억원을 벌어들였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아직까지 공문이 내려온 건 없지만 퇴직대상자로 꼽히는 임금피크제 대상자와 예정자들의 퇴직인원 수, 퇴직금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며 “회사 실적이 좋은 만큼 퇴직조건도 좋으면 신청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희망퇴직 선택 기회 확대 차원”

희망퇴직을 놓고 은행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희망퇴직은 자율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최 위원장은 “최근의 채용 확대도 은행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며 “(희망퇴직) 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자발적으로 할 일임을 확인했다”고 말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일자리인 금융권에서 일자리를 많이 제공해 주면 우리 사회와 경제에 더 큰 편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과거 외환위기 당시 은행권이 공적자금의 도움으로 회생한 만큼 청년실업 문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1447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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