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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동떨어져 겉도는 중소기업 정책] 중소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 지원해야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최저임금보다 중기 간 거래지원 효과 클 듯… 수출·소비재 위주 중기 판로 지원은 헛심만

정부의 정책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다. 정책은 한정된 재원으로 최대 효용을 추구한다. 한정된 재원 탓에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효용은 누군가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소외된 현장의 불만은 커진다. 불만은 잠재우는 방법은 단순하다. 그에 맞는 새로운 정책을 만들면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소기업 정책이다. 중소기업 사업체는 300만 개가 넘는다. 그 숫자만큼 하는 일도 다양하고, 목소리도 크다. 더구나 언제부터인가 정치가 중소기업에 관심이 커졌다. 정치인은 현장의 목소리에 민감하다. 그러다 보니 큰 그림을 놓친다. 그 결과 중소기업 정책은 자꾸 늘어만 간다.

국내 중소기업 통계는 세계 최고 수준


정책의 양이 아니라 질을 높이기 위해 가장 유용한 방법은 통계를 활용하는 것이다. 통계는 숫자의 나열이라 건조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현장의 목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다. 한국의 중소기업 통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장 대표적인 중소기업 통계는 중소기업 실태조사다. 양도 많고, 질도 우수하다. 중소기업이 발달한 유럽을 봐도 이런 통계는 없다. 그러나 정작 통계를 만드는 정부는 그런 통계를 외면한다. 통계가 말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럼 중소기업 실태조사를 자세히 보자. 현재 중소기업 사업체 수는 약 360만개다. 이 중에 제조업은 41만개다. 여기서 종사자 5인 이상 제조업체는 13만개다. 이 13만 제조 중소기업의 총 매출은 626조원이다. 내수가 91.3%, 수출이 8.7%를 각각 차지한다. 내수를 100으로 놓고 봤을 때, 다른 기업에 납품하는 비중이 84.9%이다. 그 외 정부나 공공기관 판매가 5.4%, 일반 소비자 판매가 9.7%다. ‘다른 기업에 납품’(84.9%)은 32.8%의 대기업 납품과 52.1%의 중소기업 납품이 더해진 수치다. 즉, 제조 중소기업 대부분이 다른 기업에 납품 하는 것으로 먹고 산다. 업체 수로 봐도 그렇다. 제조 중소기업 중 47.3%가 소위 말하는 ‘납품 중소기업(통계상 용어는 수급기업)’이다. 제조 중소기업의 절반이 다른 기업과 납품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납품 중소기업(6만3725개)의 거래 상대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많다. 납품 중소기업의 총 납품 금액은 263조원이다. 이 중 중소기업 납품금액은 141조원으로 총 납품 금액의 53.7%이다. 나머지 122조원은 대기업 납품 금액으로, 총 납품 금액의 46.3%다. 제조 중소기업은 업체마다 평균 12.8개 기업과 거래한다. 거래 대상별로 나눴을 때 중소기업과 거래하는 제조 중소기업이 56.1%, 대기업 상대가 14.8%다. 나머지 29.1%는 중소기업과 대기업과 동시에 거래한다.

제조 중소기업의 높은 납품 비중은 정책에서 비롯했다. 1970년 대부터 한국은 경제개발을 추진하면서 산업정책을 활용했다. 산업정책의 핵심은 중화학공업과 수출이었다. 정부는 산업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계열화를 추진했다. 대기업이 최종재를 만들어 수출하고, 중소기업이 중간재를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는 시스템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할 분담은 정부의 정책 의지였다. 1975년 제정한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이 대표적인 정책 사례다. 한국이 경험한 성장을 볼 때 이러한 정책이 효과적으로 작동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덕에 한국 중소기업의 중화학공업 비중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동반성장 정책 체감도 낮아


한국 중소기업 하면 열악한 환경과 낮은 기술을 떠올린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중소기업이 발달한 유럽보다 한국 중소기업의 고도화 수준이 높다. 제조업은 기술 수준에 따라 첨단기술·고기술·중기술·저기술로 나눈다. 한국 제조 중소기업의 첨단기술과 고기술 비중은 각각 4.8%, 21.6%다. 유럽연합(EU) 23개국을 하나의 묶음으로 보면, 각각 3.0%, 9.5%이다. 우리 제조 중소기업은 높은 기술 수준을 요구하는 업종에 집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첨단기술 업종에서 일하는 종사자 비중도 한국(16.7%)이 EU 23개국(7.9%)의 두 배 수준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의 중소기업 정책은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자. 첫째, 그동안 우리가 줄곧 관심을 가져왔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이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의 시작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강조했다. 벌써 10여 년이 흘렀다. 비록 부르는 이름은 정부마다 달랐지만, 오늘까지도 동반성장은 아직도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에 대한 현장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

이는 정책이 아직도 대기업-중소기업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통계가 존재하는 제조업만 놓고 봤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제 대·중소기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다. 통계가 없는 종사자 5인 이하 28만개 제조 중소기업까지 더하면 중소기업 간 거래는 더 커질 것이다. 사실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1차 협력사는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먹고 살 만한’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이다. 대기업이 친인척이나 전직 임원을 내세운 그런 기업도 많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의 동반성장에 여기에 초점을 맞춰왔던 것이다.

그 부작용이 드러나는 대표적 사례가 현금성 결제다. 지난 10년 동안 대기업의 현금결제 비율은 매년 상승했다. 요즘 상위 30대 대기업은 현금 결제(81.7%)와 현금성 결제(16.9%)가 전체 결제의 98.6%에 달한다. 그런데 중소기업 실태조사를 보면, 제조 중소기업은 여전히 어음 결제가 23.6%이다. 1차 협력사는 현금을 받지만 2차, 3차 협력사는 어음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음 수취기일은 평균 33.3일, 결제기일은 평균 75.4일이다. 즉 제품을 납품하고 이를 현금화(회수)하는 데 적어도 3개월이 필요하다. 어음 수취기일이 30일 이상인 경우가 86%며, 결제기일이 60일 이상인 경우가 88.1%에 달한다.

85%가 B2B인데, 지원 사업은 전시회·페스티벌?

물론 중소-중소기업 동반성장은 쉽지 않다. 중·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은 그 식별이 쉽지 않고, 그래서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그렇다고 진정한 동반성장 나아가 선순환하는 시장경제를 위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문제다.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30인 미만 고용 사업주에 2조9780억원을 지원한다고 한다. 이 돈을 중·중소기업 간 결제에 투입해 점진적으로 현금결제 비율을 높인다면 효과는 최저임금 인상보다 더 분명할 것이다. 특히, 제조 중소기업의 91.1%가 2차 협력 이내에 있기에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정책의 효과는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둘째, 중소기업의 판로 지원이다. 중소기업 정책을 소개하는 기업마당 홈페이지에서 ‘어렵게’ 찾으면 ‘정책차림표’라는 게 있다. 여기에 소개된 중소기업 정책은 모두 1430개이다. 수출 지원은 302개로 가장 많다. 제조 중소기업의 판매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8.7%에 불과한데 정책은 수출 지원이 가장 많은 것이다.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그나마 대부분 수출 지원도 소비재 중심이다. 중화학공업과 고기술 업종의 중간재에 강점을 가진 우리 중소기업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우리 중소기업의 수출은 중화학 제품이 75%, 경공업 제품은 20%다. 내수 지원도 대부분 소비재 중심이다. 내수 지원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크게 나뉘는데 오프라인은 전시회, 페스티벌 등이다. 제조 중소기업의 내수 판매에서 기업 간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84.9%임을 고려하면 지원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조차 민망하다.

지원의 방식도 형식적인 게 많다. 중소기업 수출 지원의 대표적인 사업은 해외 유망 전시회 참여를 지원하는 시장개척 사업이다. 한국의 생산자와 외국의 생산자가 몇 시간의 만남을 통해 수출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현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만남 자체도 쉽지 않다. 물론 단기 성과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정치권을 만족시키기 위해 소비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한편, 정책이 너무 많은 것도 의아한 부분이다. 정책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의 정책 참여 수준은 낮다. 또 내수 침체로 납품이 부진한 중소기업은 뭔가 새로운 사업을 계속 요구한다. 정치는 이에 반응해 새로운 정책을 만들지만, 정책은 전시회 규모만 늘릴 뿐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산업화 이후의 그 무엇을 찾고 있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정책은 승자독식이라는 적폐를 낳았다. 적폐는 당연히 청산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다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정책의 중심이 근로자로 빠르게 이동하는 중이다. 정부의 정책 방향에 동의하지만, 정부의 높은 지지도가 정책의 혼란을 숨길 수는 없다.

산업화 시대의 중심이 대기업이었다면, 산업화 이후의 중심은 중소기업이다. 여기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1513만 명의 종사자를 포함한다. 어느덧 중소벤처기업부가 출범한 지 1년이다. 중소기업의 정책과 예산도 늘었다. 그러나 중소기업 정책은 현실을 외면하고 여전히 산업화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겉돈다. 예전처럼 관심을 두고 정책과 예산을 늘린다고 해도 중소기업 정책을 혁신하지 못한다면, 산업화 시대의 적폐를 고스란히 안고 가는 꼴이다. 중소기업은 기업의 성장과 근로자의 소득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정책의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1447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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