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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모리스 마테를링크 作 '파랑새'의 ‘관계재’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재화...사랑보다 돈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행복도 낮은 경향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7월 31일 오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 대규모 사업장이 밀집한 서울 중구의 청계천 광교가 퇴근길을 서두르는 시민들로 분주하다. / 사진:연합뉴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이라고 봤다. 아침밥을 먹는 것은 출근하기 위해, 출근은 일을 하기 위해, 일은 돈은 벌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추구권은 헌법에도 명시된 권리다. 그러나 정작 ‘행복이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하기 쉽지 않다. 틸틸과 미틸이 파랑새를 찾으러 떠난 112년 전에도 그랬다.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1906년 6막 12장 분량의 희곡 [파랑새]를 썼다. 2년 후인 1908년 러시아 연극계의 거장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가 모스크바 예술극장에 이 작품을 올렸고, 대성공을 거뒀다. 연극이 성공하자 마테를링크는 이듬해인 1909년 프랑스에서 희곡집 [파랑새]를 펴냈다. 1911년 마테를링크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파랑새는 어느새 ‘행복의 상징’이 됐다. 찌루찌루와 미찌루로 알려진 [파랑새]의 주인공의 원이름은 ‘틸틸’과 ‘미틸’이다. 일본어판을 번역해 국내에 들여오면서 잘못 알려졌다.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 이브 밤이다. 공간적 배경은 소박한 시골 오두막집이다. 남매 틸틸과 미틸에게 빨간 두건을 입고 구부정한 자세로 지팡이를 쥔 자그마한 할머니가 찾아온다. 요술쟁이 할머니 베릴륀느다. 그녀는 온몸이 파란 파랑새를 찾고 있다. 아픈 어린 딸이 원한단다. 딸은 파랑새가 있으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할머니는 틸틸에게 마법의 모자를 씌워준다. 다이아몬드가 달린 초록색 모자다. 다이아몬드를 돌리면 사물 안에 있는 진짜 모습, 즉 요정을 볼 수 있다. 틸틸이 다아아몬드를 돌리자 개·고양이·물·우유·사탕·빵·빛·불·물로부터 요정들이 나온다. 틸틸과 미틸은 이들과 함께 파랑새를 찾아 떠난다.

마테를링크는 신비와 운명, 저승과 같은 환상의 세계를 작품 속에 자주 담았다. 그는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 저 너머에 있다고 믿었다. 틸틸과 미틸은 6개의 신비의 나라와 조우한다. 추억의 나라에서는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식사를 한다. 밤의 궁전에서는 전쟁, 질병, 유령, 어둠과 공포를 만난다. 숲속에서는 떡갈나무, 포플러, 보리수, 너도밤나무의 영혼과 당나귀, 수탉, 늑대들에게 공격을 당한다. 공동묘지를 거쳐 도달한 행복의 정원에서는 다양한 행복을 만난다. 끝으로 하늘궁전인 미래의 나라에서는 세상에 태어나기를 준비하는 아기들에게 둘러싸인다.

파랑새는 잘 잡히지 않는다. 추억의 나라에서 잡아온 파랑새는 까맣게 변한다. 밤의 궁전에서 잡아온 수십 마리의 파랑새는 모두 죽어버렸다. 행복이 그렇다. 잡힐 듯한데 생각보다 잘 잡히지 않는다.

행복은 돈에 비례하지 않아

경제학도 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전통경제학에서는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더 많이 소비할 수 있고, 그럴수록 삶이 더 윤택해지기 때문이다. 즉 물적생산력과 소비력이 커질수록 행복감이 커진다고 본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가. 우울해하다가 끝내 자살로 생을 끝내는 재벌가 자녀들이 있다. 무엇이든 다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가진 그들은 왜 행복하지 못했을까. 이스털린에 따르면 돈을 어느 수준까지 벌고 나면 그 이상은 행복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5000달러가 변곡점이 된다. 한국인은 연봉 1억원 내외에서 행복도가 꺾인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삶의 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월소득 600~700만원 때의 행복도가 7.2점으로 가장 높았다. 월 1000만원 이상 벌면 6.7점으로 만족도가 감소했다. 행동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 교수가 제시한 연소득 7만 5000달러(약 8100만원)과 비슷하다.

행복은 왜 돈에 비례하지 않을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기회비용이 생긴다. 이탈리아의 사회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는 이를 ‘관계재(Relational Property)’로 설명한다. 관계재란 인간관계, 즉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생기는 재화를 말한다. 서비스와 같은 무형의 재화로 혼자 있어서는 생성되지 않는다. 사랑과 우정은 사람들에게 만족감(효용)을 준다. 그런데 사랑은 상대가 있어야 한다. 우정도 상대가 있어야 한다. 사랑과 우정은 쌓기 위해서는 만나서 시간을 써야 한다.

고소득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과 나눠야 할 시간을 줄여야 한다. 바빠서 만나지 못할 수 있고 주요 행사 때도 빠져야 할지 모른다. 관계 맺기를 일정 부분 포기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한 만큼 소득은 늘어나고 지위는 높아지겠지만 관계재는 빈곤해진다. 즉 소득을 위해 시장에 참여하는 시간이 증가할수록 관계재의 생산은 줄어든다. 상품재와 관계재는 일정 부분 대체재 성격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관계는 행복에 큰 영향을 준다. 어려울 때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기쁠 때 내 마음처럼 축하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관계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한국인들의 관계재는 세계 평균에 못 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나은 삶의 지수 2017’을 보면 한국인은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7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조사대상 41개국 중 꼴찌다. 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돈은 사람에게 ‘너희가 없어도 난 혼자 살수 있어’와 같은 우쭐한 기분을 들게 한다”며 “하지만 사랑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그의 행복도는 낮은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관계재 세계 평균에 못 미쳐

다시 희곡으로 돌아가보자. 틸틸과 미틸은 행복의 정원에서 배가 불룩한 ‘소유하는 행복’을 만난다. 퉁퉁한 볼살을 지닌 ‘허영심이 충족되는 행복’도 만난다. 그러나 둘은 파랑새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파랑새가 어디 있는지는 ‘아주 작은 행복’들이 안다.

한 행복이 틸틸에 묻는다. “나를 모르겠어?” 틸틸이 답한다 “모르겠는데…. 너희를 본 적이 없어.” 행복이 말한다. “우리는 늘 네 곁에 있어! 언제나 너와 함께 먹고, 마시고, 잠들고, 깨어나고, 숨쉬면서 지내왔단 말이야.” 알고 보니 이 행복은 ‘집에 있는 행복’이다. 틸틸이 놀랜다. “우리집에 행복이 이렇게 많다고?” 건강하게 지내는 행복. 부모를 사랑하는 행복, 맑은 공기의 행복, 파란 하늘의 행복, 햇빛이 비치는 시간의 행복, 해질녘의 행복, 별을 바라보는 행복, 빗방울의 행복, 겨울난로의 행복, 천진난만한 생각의 행복…. 집에는 정말이지 셀 수 없는 행복이 있다.

잠에서 깬 틸틸와 미틸은 마침내 파랑새를 찾는다. 파랑새는 집안 새장에 있었다. 주 52시간 근무가 곧 시행됐다. 수입은 좀 줄어들겠지만 그대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어날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으로 관계재를 회복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1447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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