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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맥짚기] 경기 정점 우려에 주가 지지부진 

 

이종우 증시칼럼니스트
기업 실적 전망 나아졌지만 성장률 하락 우려… 은행·화학 업종 눈여겨볼 만

통화정책 변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8월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끝났다. 주목할 부분이 두 개 있었다. 첫 번째는 연준이 유례 없이 긍정적인 경기 전망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경제활동, 노동시장, 가계소비, 기업투자에 대해 ‘강한(strong)’이란 표현을 네 번이나 사용했다. 2분기 성장률과 7월 실업률이 각각 4.1%와 3.9%를 기록해 고성장-완전 고용을 달성한 게 전망에 힘을 실어준 요인이었다. 9월 금리 인상 확률은 90%로 높아졌다. 연준이 시장 전망과 어긋나게 정책을 편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9월 금리 인상은 확정적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인상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했지만 연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 중앙은행의 목표가 ‘경기 부양’에서 ‘통화가치 안정’으로 바뀐 것이다.

또 하나는 미·중 무역분쟁과 이에 따른 신흥국 불안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무역분쟁이 미국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 본 것 같은데 시장과 다른 시각이다. 이 차이는 두 개의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지나치게 부풀려진 무역분쟁의 영향이 조만간 제자리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와 달리 미국이 입는 피해가 크지 않다고 판단해 좀 더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는 건 부정적이다. 힘이 어느 쪽에 실리느냐에 따라 주가가 달라질 텐데, 시장이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 움직였다는 걸 감안하면 긍정적인 형태로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각국 통화정책 긴축으로 방향 틀기 시작

미국 이외에서도 금리를 조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도 그중 하나다.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0.1%를 넘었다. 2년 간 가로막혔던 고점을 돌파한 건데 일본은행이 장기금리를 0% 내외에서 고정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철회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작동한 결과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영국이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올렸다. 아직 동조하는 곳은 없지만 유럽은행도 금리 인상을 마냥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중국은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 적정 수준의 유동성 흡수를 통해 금융시장 안정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응할 것임을 밝혔다.

우리도 변화가 진행 중이다. 시장에서는 국내 경기가 좋지 않아 올해 중 금리 인상이 어렵다는 전망이 대다수이지만 한국은행의 판단은 다르다. 7월 27일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조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7월 금통위에서도 몇몇 위원들이 금리 인상을 지지했다. 통화정책 여력을 확보하고 부동산과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행에서 소수 의견이 나오고 몇 달 후에 그 의견에 따라 금리를 조정하는 형태를 보였음을 감안할 때 연내 금리 인상이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왜 여러 나라들이 금융정책 방향을 수정하겠다고 나선 걸까? 무엇보다 경기가 장기간 확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6월에 경기가 바닥을 쳤으니까 지금까지 111개월째 확장이 지속된 셈이 된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일본은 70개월째 경기 확장을 이어오고 있다. 사상 최장이었던 2000년대 중반의 73개월과 맞먹는 다. 독일 역시 113개월로 통일 이후 최장이며, 영국은 대처 상 때 기록했던 150개월에 이어 두 번째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7월까지 64개월째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경제 상황을 놓고 비관적 전망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큰 틀이 바뀐 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성장률이 낮은 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지난 9년 간 평균 성장률은 1.8%로 1990년대 확장기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 등 어떤 나라도 과거 확장 때의 성장률을 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성장률이 과거보다 못하지만 기간이 이를 압도해 금리 인상에 따른 거부감이 사라진 것이다.

당장에는 금융정책을 바꾸더라도 주가가 하락하지 않을 것이다. 경기 확장 기대가 금리 인상에 따른 영향보다 크기 때문이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의 격차가 1%포인트 이상 벌어져 있는 것도 금리 정책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요인이다. 두 금리가 비슷해지는 시점에 투자자들이 금리 수준에 대해 부담을 느끼면서 주가가 하락했던 경험이 아직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 불안 요인을 무난히 소화하고 있지만 금리를 올리는 나라가 늘어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올 연말이 금리와 관련해 시장의 모습이 바뀌는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전망한다.

시장이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 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도 종합주가지수는 2300선에 묶여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다. 시가총액의 60% 가까운 기업이 2분기 실적 발표를 마쳤는데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4%와 12% 늘었다. 시장의 예상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익의 질적인 면도 개선됐다. 고질적으로 나타나던 반도체 편중 현상이 2분기에는 완화돼 반도체를 제외하고 계산하든 넣고 계산하든 상관없이 비슷한 이익증가율을 기록했다. 다른 업종이 반도체의 빈 공간을 메웠기 때문인데 은행의 역할이 컸다. 2분기 실적은 다른 기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석 달 간 5% 이상 줄었던 3분기 이익 전망이 하락을 멈췄다. 올해 전체 이익도 지난해에 비해 14.2%가 늘어날 걸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주가인데 2분기 이익이 기대에 부합했고 3분기 이후 실적 전망도 나쁘지 않았지만 힘을 쓰지 못했다. 실적과 주가가 따로 움직인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경기 정점에 대한 우려가 너무 빨리 제기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부터 여러 곳에서 국내 경제를 걱정하는 소리가 나왔다.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부분이 더 크게 보일 수 있는 형태가 된 것이다. 성장률도 그중 하나다. 2분기 국내 성장률이 2.9%로 예상치(3.0%)에 미달했다. 예상과 실제 사이에 차이가 크지 않아 평소 같았으면 관심이 없었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현재보다 앞으로 경제가 시장의 발목을 잡았다.

‘주가→경제지표→기업 실적’ 순으로 움직여

주가와 경기, 기업 실적은 ‘주가→경제지표→기업 실적’ 순으로 움직인다. 지금 기업 실적이 괜찮아도 경제 전망이 나쁘면 앞으로 이익이 줄어드는 걸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시장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데 당분간 종합주가지수가 지지부진한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2분기 실적만으로 시장을 판단하기 힘들다. 현재 실적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종목을 선택하는 수단 정도로 역할을 낮춰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은행과 화학 업종을 눈여겨봤으면 한다. 둘 다 2분기 실적이 괜찮지만 주가는 오르지 못했거나 실적 발표 이전에 상승을 끝내고 크게 하락했다. 3분기 이후 성적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은행은 이익 구조가 달라졌기 때문에 이익이 갑자기 줄어드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2분기에 은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이익이 6000억원 이상 늘었다. 시장 대비 초과 수익을 내는 데 문제가 되지 않을 규모다.

1447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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