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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상투 잡았다고?” 생각의 틀을 바꿔라 

 

서명수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
프레이밍 효과와 ‘이솝과 배부른 정치인’ … 주식 현금화로 할 일 상상하면 매도 쉬워져

사람들을 선동해 많은 피해를 끼친 어떤 정치가가 공공의 재판에 회부됐다. 그를 사형에 처할 것인가, 아니면 살려둘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할 때 이솝이 나서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강을 건너던 여우 한 마리가 깊은 도랑에 빠졌습니다. 여우는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았으나 허사였습니다. 기진맥진해 꼼짝도 못하는 그의 몸에는 거머리까지 달라붙었습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고슴도치가 여우를 발견했습니다. 고슴도치는 여우를 측은히 여겨 자기가 거머리라도 떼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우는 완강히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슴도치가 물었습니다.” 왜 안 된다는 거요?“ 여우가 대답했습니다.” 이것들은 이미 배불리 먹었을 것이다. 더 이상 많은 피를 빨아먹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거머리들을 떼어버린다면, 굶주린 또 다른 거머리가 와서 내 남은 피를 모두 빨아먹을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이솝이 힘주어 덧붙였다. “이것들은 당신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자는 더 이상 당신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유하니까요. 그러나 만일 그를 죽여버린다면 여전히 굶주린 다른 자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들은 계속 당신들을 착취할 것입니다.”


▎사진:© gettyimagesbank
사람들을 착취하는 정치인은 없어져야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의 빈자리를 다른 굶주린 정치인이 메울 것이므로 이미 배가 부른 그를 살려두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이 우화는 특정 사안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걸 보여준다. 이를 ‘프레이밍 효과’라고 한다. 질문이나 문제 제시 방법, 즉 프레임(틀)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나 판단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생각의 프레임에 따라 판단과 선택 달라져

원래 프레이밍이라는 것은 사진 용어로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이 찍히는 대상을 파인더에 적절히 배치해 화면을 구성하는 작업이다. 어떻게 파인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사진의 느낌과 구성이 달라지는 것처럼, 프레이밍 효과란 사람들이 판단을 내릴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프레임에 따라 이를 이해하고 결론을 내린다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동일한 사건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유리컵에 물이 반 정도 차 있어도 “반 밖에 남지 않았네”라고도, 아니면 “반이나 남았구나”라는 두 가지 시각이 엇갈리게 마련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병원에서 환자의 수술 생존율이 70%인 경우 의사가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은 두 가지다. 첫째는 사망률이 30%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성공률이 70%라는 답변이다. 둘 모두 결과는 같지만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해석이 정반대로 바뀔 수 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은 두 번째 답변이다. 두 가지 답변의 차이는 ‘산다’와 ‘죽는다’다. 첫 번째에선 사람이 죽고, 두 번째에선 산다. 생존한다는 것은 같지만 첫 번째에서는 죽을 수 있다는 것이 강조되고 두 번째에선 살릴 수 있다는 것이 강조된다. 사람들은 이익이 주는 기쁨보다는 되도록 손실의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사망률 30%라는 표현은 치료법으로 인한 손실을 떠올리게 하고, 생존률 70%는 치료법이 주는 이익을 강조해 안전한 방법이란 인식을 갖게 한다. 의사 입장에선 같은 결과지만 생존률을 내세우는 것이 유리하다. 이것이 프레이밍 효과다.

자동차를 살 때 판매원으로부터 여러 가지 할인 옵션을 제시받게 된다. 3300만원짜리 풀 옵션 자동차를 300만원 할인받아 살 수 있는 경우와 2700만원짜리 자동차에 300만원의 옵션을 달아 3000만원으로 하는 경우 어느 쪽이 더 비싸다고 느껴질까. 두 조건 모두 최종적으로 내야 하는 금액은 동일하다. 그러나 첫 번째 제안이 더 저렴하게 느껴진다. 할인이란 말이 절약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같은 가격이라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프레이밍 효과와 함께 살펴봐야 할 것이 ‘정박효과(Anchoring Effect)’다. 어떤 상황이나 사물의 가치를 판단해야 하는데 적당히 비교할 만한 수치가 없을 경우 주어진 정보 내에서 제멋대로 판단하게 된다. 이 때 주어진 정보는 타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일종의 닻(Anchor)으로 작용해 판단 기준이 된다. 이게 바로 정박효과로 행동경제학자들이 주장한 이론이다.

주식투자에서 정박효과가 최고가에 나타나면 매우 위험하다. 싸다고 생각해 곧 폭락할 주식에 꽂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 전 2만원 하던 주식이 1만원으로 떨어졌을 때 2만원이 닻으로 작용한다면 앞뒤 재지 않고 매수에 가담하게 된다. 주가 급락의 원인이 실적 악화나 불투명한 사업 전망인데도 2만원이 강력한 닻으로 작용해 기대 수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식을 샀을 경우 이미 2만원에 닻을 내렸기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높은 가격을 기대하며 무작정 보유하게 된다.

보통 투자자들은 현재 시장 가격이 강력한 닻 구실을 해 이를 기준으로 미래를 진단한다. 따라서 현재의 시장 가격이 미래 시세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령 오늘 주가가 올랐다면 미래에도 오르리란 기대로 주식을 산다. 반대로 오늘 내렸다면 미래에도 내릴 것으로 판단해 보유 주식을 처분한다. 일반 투자자들이 주가가 올랐으니까 주식을 사고 내렸으니까 파는 일이 왜 무한히 반복되는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주가가 정상궤도를 벗어나 급등과 급락을 거듭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정박효과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프레이밍 효과를 이용하면 정박효과 때문에 생기는 오류를 막을 수 있다. 주식을 샀는데 예상치 못한 악재가 터져 주식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주식을 매도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닻으로 작용하는 매수가격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 매수가격 이하로는 절대 팔고 싶지 않다. 들고 있으면 오를 수 있는 주식을 팔면 바보 짓이다. 그래서 회복이 불가능한 주식을 마냥 들고 있게 된다.

묻지마 투자 부르는 ‘정박효과’

이럴 때 프레이밍 효과는 도움을 줄 수 있다. 주식을 처분함으로써 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프레이밍 효과를 이용해 현금화한 주식을 수익으로 느껴지게 하면 매도를 결정하는 게 수월해 진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투자에서 빨리 손을 떼게 되면서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다.

자산관리를 할 때도 투자 대상 하나하나의 수익률을 분석하는 것보다 포트폴리오 전체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별 투자 대상의 수익률을 건별로 계산하는 것은 프레이밍이 개별 투자처에 설정돼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은 대부분 이 같은 개별 프레임을 갖고 있다. 그런데 프레임을 바꿔 전체 포트폴리오의 수익률로 전환하면, 더 편안한 마음으로 투자할 수 있다. 개별 투자처보다 전체 포트폴리오가 변동성도 낮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1447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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